예쁜 '꿈담교실'이 새들에게는 '죽음의 건물'.."교육감님 새 충돌을 막아주세요"

강한들 기자 2022. 9. 15.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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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상천초 4학년 3반 학생들이 학교 중앙현관에서 서명을 받을 때 걸어뒀던 ‘비닐 새’의 모습. 서한솔 교사 제공

알록달록한 색종이로 만든 날개, 폐비닐로 만든 몸통, 노란 부리. 서울 노원구 상천초등학교 4학년 3반에는 “억울한” 새 모형이 있다. 비닐 새는 파란 머리띠도 두르고 있다. 금방이라도 팔뚝질을 할 것 같은 새의 머리띠에는 “새 충돌을 줄이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상천초의 ‘버드세이버’ 어린이들은 “만약 제가 새였다면 사람들을 싫어할 것 같다”며 “갑자기 부딪혀서 하늘로 떠나면 얼마나 억울하겠냐”고 했다.

상천초등학교 1층에 있는 ‘꿈을 담은 교실(꿈담교실)’은 유리창이 많아 새들이 날다 부딪칠 가능성이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꿈담교실’은 낡은 교실을 창의적·감성적으로 고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꿈담교실 사업 이후 폐쇄적이었던 중앙 현관에 나무가 생겼고, 교장실은 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열린 공간’으로 변신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가 새들에게는 좋지 않았다. 유리창을 인지하지 못하는 새들이 충돌해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천초 ‘버드세이버’ 김가린양, 김영우군, 국은별양과 서한솔 교사를 지난 8일 상천초 4학년3반 교실에서 만났다.

‘버드세이버’ 로 활동하는 김가린양(왼쪽), 김영우군(가운데), 국은별양이 지난 8일 서울 노원구 상천초 4학년 3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꿈담 교실’에서 문제를 먼저 포착한 것은 서 교사였다. 새 충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서 교사는 학교 근처 동부간선도로 인근에 올해 완공된 방음벽에 조류 충돌 저감 조치가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의 꿈담교실도 마찬가지였다. 서 교사는 ‘민주시민 교육’의 하나로 학교 새 충돌과 관련한 수업을 기획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사회 현안 중심 교과융합 프로젝트’ 지원도 받아 국립생태원 객원 연구원을 강사로 섭외했다. 학생들은 왜 유리창에 새가 충돌하는지, 해결책은 무엇인지 배웠다.

학생들은 원래 예뻤던 꿈담교실이 더는 예쁘게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국은별양은 “새는 유리창이 보이지 않고, 안이 어두우면 사물이 비쳐서 충돌해버린다”며 “수업을 들은 이후 나한텐 예쁜 곳이지만 새들한테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수업을 계기로 어린이들은 새가 충돌하던 장면을 떠올리고, 이유를 알게 됐다. 김영우군은 “친척과 놀러 갈 때 방음벽 밑에서 새가 죽어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새가 죽어있으니까 슬펐고, ‘왜 여기 떨어져 있지?’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가린양은 “학교 급식실 유리에 참새가 충돌해 머리에서 피가 나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그때는 안타깝고 슬펐지만, 왜 유리에 충돌했는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김양은 학교에서 새가 충돌해 죽은 사진을 찍어 “사망한 새를 발견했다”며 학급 홈페이지에 공유하기도 했다.

서 교사는 학생들의 교육과정과 프로젝트를 촘촘하게 엮었다. ‘공공기관’에 대해서 배우는 단원에서는 관련 기관인 노원구청과 서울시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 충돌과 관련한 조례를 찾아보기도 했다. 서울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 학생들은 화를 냈다고 한다. 서 교사는 “서울시청이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이라는 것을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어떤 어린이가 ‘다 유리로 만들어졌는데, 저기서 새가 많이 죽을 것 같다’고 외쳤다”고 말했다. 5학년 학생들에게 새 충돌 문제를 알리는 발표도 했다. 김영우군은 “한 학년 높은 5학년도 새가 이런 문제로 충돌을 한다고 하니 신기해했고, 문제를 알렸다는 게 뿌듯했다”고 말했다.

‘제안하는 글쓰기’ 시간에는 새 충돌의 원인은 무엇인지,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를 주제로 글을 썼다. 앞으로 꿈담교실을 지을 때 생태 전문가도 참여하고, 조류 충돌 저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해 새 충돌을 막아달라는 내용을 담았다.

상천초 4학년 3반 학생들은 지난 7월 시민들의 서명을 받기 시작해, 지난 8일까지 약 1600명의 서명을 받았다. 서명 페이지 갈무리

상천초 4학년3반 학생들은 이 글로 서명 페이지를 만들었다. 올해 7월부터 지난 8일까지 시민 약 1600명의 서명을 받았다. 김영우군은 “많은 사람이 의견에 동의한다고 댓글도 남겨서, 글을 적느라 힘들었던 마음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오는 28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이 상천초를 방문하면 학생들은 서명운동 결과를 서울시교육청에 전달할 계획이다. 김가린양은 조 교육감에게 “꿈담 교실을 만들 때 생태 전문가가 참여하고, 5X10 스티커(높이 5㎝, 폭 10㎝ 간격의 조류가 투명 창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점 스티커)를 붙이는 규칙을 만들어달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상천초 ‘버드세이버’ 국은별양(왼쪽), 김영우군(가운데), 김가린양이 지난 8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노원구 상천초등학교 4학년 3반 한 학생이 쓴 글. 서한솔 교사 제공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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