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배우고 손수 설거지.. 99세 종교인의 거룩한 늙음 ['장수 박사' 박상철의 홀리 에이징]

조용철 2022. 9. 15.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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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헬스
(6) 어느 사제의 백수연
韓 천주교 최고령 윤공희 대주교
100세 1년 앞둔 축하식 모습 인상적
사제·의사 등 조력자에 감사 전하고
"현재는 하나님 사랑에 맡기자" 답사
건강비결이 궁금해 수녀에 물었더니
하루세끼식사 챙기고 삼십분씩 산책
그릇 정리도 직접 도우신다 귀띔
장수를 꿈꾸는 이들의 '진정한 귀감'
박상철 전남대 의대 연구석좌교수
한국 천주교 생존 주교 가운데 최고령자인 광주대교구 윤공희 빅토리노 대주교가 지난달 27일 오후 광주 서구 염주동성당에서 백수(白壽·99세) 감사미사를 주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이듦을 축하하는 잔치 중에 하이라이트는 백살잔치이다. 백살을 살아낸 분들이 극히 적었던 시절에는 이를 축하하는 잔치는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행사였다. 따라서 명칭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한 시대를 살았다는 의미의 기수연(期壽宴), 오래 살았다는 의미에서 영수연(永壽宴), 백살까지 살았다는 상수연(上壽宴) 등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백살잔치보다 더 널리 열린 잔치는 백살에서 한 살 적은 아흔아홉살을 축하하는 백수연(白壽宴)이다. 일백 백(百)자에서 획을 하나 뺀 흰 백(白)자를 사용하는 잔치이다. 백살이 되기 직전 해에 백수를 맞은 분들을 축하하는 뜻이 있지만 혹시나 한 해를 이기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을 수 있어 미리 축하한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집안어르신들의 생일잔치를 반드시 생신날이나 그 이전에 축하하여야 한다는 불문률이 있다. 축하도 중요하지만 만에 하나 불상사를 우려해 미리 축하한다는 간절함을 담은 소중한 풍습이다. 전통적인 백수연 잔치는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장수를 축하하고 염원하는 매우 드물지만 뜻깊은 자리였다. 이런 자리에서 주인공들의 건강하고 당당한 모습은 참석한 모든 하객들에게 생명의 거룩함을 새롭게 깨닫게 한다.

지난 8월 27일 천주교 광주대교구 윤공희 대주교의 백수연(白壽宴)에 초대받았다. 일반적으로 70세에 정년하는 신부들과 수녀들이 봉사와 헌신의 생활을 마치고 은퇴하여 가족도 없이 익숙지 않은 일상생활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껴왔던 차였다. 백수를 맞은 대주교에 대한 축하의 염원은 물론이지만 초고령 성직자의 삶과 모습이 궁금하기만 하였다.

윤공희 대주교는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가장 장수한 사제이기에 더욱 궁금하였다. 윤 대주교는 1924년 출생하여 영아세례 받고 1950년 사제서품, 1963년 주교수품 그리고 1973년에 광주대교구 대주교가 되었다. 특히 광주 오월혁명을 맞아 당당하게 군부에 맞서 시민들의 사면을 요구하고 교회와 시민사회를 꿋꿋하게 지켜내어 정신적인 지주가 된 분으로 널리 칭송을 받아온 분이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백수연 행사는 낮 12시에 광주대교구청에서 축하식사로 시작하여, 오후 2시부터 염주동성당에서 감사미사를 올리고 3시부터 축하식을 하는 순서였다. 축하 현장으로 미소를 지으며 들어서는 윤 대주교가 참석한 분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이 분이 정말 백수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축하를 위해 찾아온 수많은 사제들과 수십명의 주교들로 가득한 성당에서 미사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과 백수를 맞은 윤 대주교가 직접 집전한 미사에 참여한 점은 천주교도인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고 감동이었다.

정작 놀랄 일은 축하식 때 벌어졌다. 선물 증정에 이어 사제와 신도대표들의 축사가 있었다. 모두 준비해온 원고를 읽으며 윤 대주교와 얽혔던 추억과 에피소드를 열거하며 송축하였다. 김희중 광주대교구장의 축사가 특별하였다. 천주교 사제들의 경우 윤 대주교처럼 장수한 분이 거의 없어 특별한 사례인지라 교황청에 백수연축하 메시지를 보내주도록 요청하였는데 교황청에서 "99세이지 100살이 아직 안되어 축하 메시지를 내년에 보내겠다"는 내용의 답신을 받았다는 말씀이었다. 외국에는 99세를 축하하는 특별한 행사가 없기도 하지만, 이러한 답신을 받고 내년에 다시 축하연을 하자는 김 대주교의 제안에 모두 환호와 큰 박수로 화답하였다. 성가대와 어린이 합창단이 축하의 노래를 부를 때 윤 대주교는 대좌에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손뼉을 치며 밝은 표정으로 즐거워하였다.

이어 백수를 맞은 윤 대주교가 어떤 말씀을 답사로 할까 귀를 기울였다. 준비된 원고를 개의치 않고 장내를 둘러 보면서 참석한 사제들과 하객들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감사를 표하였다. 특히 건강에 도움을 주었던 전남대병원 의사들은 한사람한사람 실명을 거론하며 생명의 은인이라며 고마움을 표하였다. 인생을 회고하는 말씀 도중에는 힘들었던 사목활동과 신도들과 나눈 시대적 고통을 언급하면서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으로 살아왔음을 강조하며 감사하였다. 답사를 매듭지으면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을 인용하였을 때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들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총에 감사하며 삽시다. 우리의 과거는 하나님의 자비에 맡기고 우리의 미래는 하나님의 섭리에 따릅시다. 그리고 우리의 현재는 하나님의 사랑에 맡기고 살아갑시다"

백수의 나이에 미사를 직접 집전하고 하객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답사하는 윤 대주교는 완벽한 장수인의 표상이었다. 윤 대주교의 생활습관이 궁금하여 수행수녀에게 물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매일 세끼 꼬박 드시며, 하루 삼십분 정도 묵주기도하며 정원을 산책하고, 이층에 위치한 서재에 하루에도 서너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독서에 침잠하며 보내는 일과였다. 그러나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윤 대주교가 식사 때마다 음식 설거지며 그릇정리 등을 하여 시중드는 수녀를 편하게 해준다는 사실이었다. 윤 대주교의 섬세한 배려심에 수행수녀는 감사와 감동을 표현하였다. 뿐만아니라 근자에는 피아노를 배우겠다는 뜻을 세워 새로 피아노를 장만하였다고 들었다.

거룩한 늙음의 삼대생활강령인 "하자, 주자, 배우자"의 원칙을 윤 대주교는 백수가 되도록 몸소 실천하며 생활하였다. 공적으로는 평생을 사회에 헌신하고 세상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며 살아왔으며,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건강과 인지능력을 온전하게 유지하며 따뜻한 감성과 배려의 마음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며 살아온 윤 대주교의 모습은 거룩한 늙음의 표상이 아닐 수 없다. 백수연을 맞은 윤 대주교의 건강장수를 충심으로 축하하며 행복한 삶이 끝없이 이어지라는 장락미앙(長樂未央)을 향유하여 장수인의 귀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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