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섬처럼 겨우 살아가고 있다" 홍수에 잠긴 파키스탄의 절규
“우리는 지금 섬에서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파키스탄은 올해 역대 최악의 홍수를 경험했다.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우기에 전례 없는 비가 쏟아지면서 국토의 3분의 1 이상이 물에 잠겼고, 지난 석 달간 약 1500명이 사망했다. 파키스탄 국가재난관리청(NDMA)에 따르면 이번 홍수로 1만2000km가 넘는 도로와 390개의 다리, 176만채의 주택이 손상됐다. 한순간에 집을 잃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된 주민들은 3300만명이 넘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파키스탄 홍수를 최고 수준의 비상사태로 설정했다.
비는 그쳤지만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1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파키스탄 남부 신드주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지역 중 하나인 다두 지구에선 이번 홍수로 약 300개의 마을이 완전히 물에 잠겼다. 수만명의 주민들은 인근 마을과 도시로 이주했지만 일부는 당국의 피난 권유를 무시한 채 물에 잠기지 않은 지역에 임시 천막을 짓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가족이나 소지품을 옮기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가축이나 냉장고, 양철 지붕 등 귀중품이 도둑맞을까 봐 함부로 거처를 옮길 수도 없다. 당국에 따르면 홍수로 고인 물이 빠져나갈 때까진 3~6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들의 생활 조건은 비참하다. 고립된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건너가기 위해선 나무 모터보트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물이 썩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다두 지구는 물에 잠긴 이후 장마와 폭염이 번갈아 찾아와 말라리아, 뎅기열, 수인성 질병이 사방에 만연해 있다. 당국이 사람들이 감전되지 않도록 해당 지역으로 가는 전력을 차단해 주민들은 매일 밤 새카만 어둠을 버텨야 하는 상황이다. 우물이 파괴된 마을에선 식수도 구할 수 없어 옷이나 접시를 씻는 데 썼던 소금물을 마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말라리아나 장티푸스에 걸린 주민들도 적지 않다.
단순히 음식을 조달하는 것조차 주민들에겐 도전이다. 신드주의 와도 코사 마을에선 홍수 이후 채솟값이 세 배로 뛰었다. 다른 마을에 있는 시장에 들르기 위해 배를 대여할 여유는 없다. 파이즈 알리(18)가 며칠에 한 번씩 악취가 나는 물속으로 뛰어드는 이유다. 알리는 물에 잠기지 않은 조히 마을에서 열리는 시장에 가기 위해 머리만 겨우 내밀고 20분씩 헤엄친다. 호수 표면을 가로질러 수영하는 물뱀들도 틈틈이 감시해야 한다. 그는 물의 깊이가 자기 키보다 약 2피트(약 61cm)나 더 깊다며 “(시장에) 갈 때마다 항상 두렵다”고 털어놓았다.
주민 대부분은 국제구호단체나 정부로부터 원조를 거의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가끔 지역 비영리 단체에서 쌀이나 차를 실은 배를 보내주지만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다. 와도 코사 마을에 사는 목화 농부 알리 나와즈(59)는 “우리는 버려졌고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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