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각수 前주일대사 "지금이 한일관계 개선 적기.. 앞으론 더 어려워"
니시노 준야 "수출규제 철회 등 일본 측 노력도 필요"
(서귀포=뉴스1) 노민호 기자 = 한일 양국 전문가들이 한일정상회담의 조기 개최 등을 통해 양국관계 개선을 적극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고 나섰다.
한일 양국의 향후 정치일정 등을 감안할 때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지금보다 더 장기화될 경우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신각수 전 주일본대사는 15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제주)에서 열린 제17회 '제주포럼' 중 '한일관계 전환: 역사적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가' 세션에 참석, 향후 한일관계와 관련해 "한일 모두 서구와 달리 상향식보다는 하향식 의사결정으로 이뤄지는 게 많다. 최근 양국은 외교부와 외무성보다 대통령실과 총리관저가 외교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며 "한일정상회담의 조기 개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 전 대사는 "양국 정상이 하루빨리 만나서 문제점을 인식하고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 등에 관한) 해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수년간 한일관계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최악'이란 평을 들을 정도로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지난 2018년 10월 일본 전범기업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에 반발한 일본 정부는 이듬해 7월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발동했고, 이후 양국 간 고위급 접촉도 거의 중단되다시피 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는 올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지속적으로 밝혀온 상황.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 또한 우리나라와의 관계 개선 필요성 자체에 대해선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그 해법을 둘러싼 한일 양국의 '간극'은 여전히 좁혀지고 있지 않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평이다.
신 전 대사는 "일본 측이 한일정상회담을 꺼리는 건 회담을 한 뒤 (한국 내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조치가 이뤄지면 일본 내각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우리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모두 해결됐다며 자국 기업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피해배상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해왔다. 해당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 측과의 배상 협의에 응하지 않았던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사이 피해자 측은 해당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압류, 현금화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왔다. 전문가들은 실제로 이들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가 이뤄질 경우 악화된 한일관계를 되돌리긴 더욱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 전 대사는 이날 세션에서 △대위변제를 통한 현금화 동결과 △국회 입법을 통한 정책 연속성 확보를 강제동원 피해배상 관련 한일 갈등을 풀 수 있는 해법으로 제시했다.
신 전 대사는 "어렵더라도 초당적 합의를 통한 국회 입법으로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처하는 걸 도모하지 않으면 강제동원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 재발하게 돼 있다"며 "여기엔 일본의 협조도 필요하다. 한국 정부가 뒤로 빠져있으면 일본은 절대로 따라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의 더욱 적극적인 해법 마련과 함께 일본의 협조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신 전 대사는 이날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적기는 지금밖에 없다"며 "이를 놓치면 앞으론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세션에 함께한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일본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 교수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선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니시노 교수 또한 한일정상회담 개최가 양국 관계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한국 정부가 국내 여론을 설득할 공간을 만들기 위한 일본 측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철회할 필요가 있단 것이다.
니시노 교수는 양국 정부의 '노력'을 전제로 이달 유엔총회보다는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인도네시아 발리)나 내년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일본 히로시마)가 한일정상회담 개최의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그러나 이를 놓치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2024년 4월에 총선을 치르는 우리나라와 같은 해 9월 자민당 총재 경선을 예정하고 있는 일본의 정치일정을 고려할 때 늦어도 내년 상반기까진 양국관계 개선의 확실한 '모멘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단 얘기다.
n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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