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신권 안 써도 재계약 가능"..'갑'으로 위상 달라진 세입자

이가람 2022. 9. 15.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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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벽면에 급매물을 안내하는 인쇄지가 붙어있다. [김호영 기자]
최근 서울 아파트 임대차시장에서 재계약 비중은 늘어나고 있지만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비중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상승 기조와 집값 고점 인식이 겹치면서 전셋값이 떨어지자 세입자에게 유리한 계약 환경이 형성된 것으로 풀이된다.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갱신권을 쓰지 않기로 협의하거나, 보증금을 일부분 반환해 주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기준 7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계약 신고 건수는 총 1만7967건이다. 신규·갱신계약 여부가 확인된 거래는 총 9908건이다. 이 가운데 갱신계약이 5116건(51.6%)을 차지했다. 처음으로 갱신계약이 신규계약을 추월했다.

반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은 줄었다. 지난 7월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갱신계약은 3277건(64%)으로 집계됐다. 지난 1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비중이 70%에 육박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축소된 것이다.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로 세입자를 들이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세입자가 귀한 몸이 된 영향으로 분석된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해 기존 세입자를 잡아두는 편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자 전세보다 월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이유다. 직방이 임대·임차인에게 선호하는 주택 거래 유형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43%가 월세를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20년 10월(21.3%)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임대인의 경우 46.5%, 임차인의 경우 42.6%가 월세를 선호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2020년에는 각각 42.2%와 17.9%였다.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 세입자가 갑이고 집주인이 을이 돼 임대차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맞지 않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작년까지만 해도 전세물건이 없어 세입자들이 집주인에게 맞추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조건을 제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매매가격 하락분 수준의 보증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하거나, 전세 시세가 내린 부분에 대한 은행 이자를 지원해 달라고 제안하고 있다. 서울의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세입자로 거주 중인 A씨(40대)는 전용면적 84m² 기준 전세 시세가 5000만원 이상 하락했다며 재계약 시 이를 돌려줄 수 있는지 집주인에게 물어봤다. 집주인이 거절하면 보다 저렴한 전셋집을 구해 나갈 계획이다. 대단지 아파트라 전세물건이 넉넉한 데다가 여의치 않을 시에는 월세를 얻으면 된다.

특히 갭투자로 아파트를 산 집주인들이 대다수 세입자의 요구에 응하고 있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내주는 것이나 여유자금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세입자에게 계약 기간을 2년이 아닌 4년 이상으로 설정하자고 읍소하는 집주인도 있다. 그만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야 하는 시점이 뒤로 미뤄진다는 점은 세입자에게 이득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당분간은 금리가 지속적으로 오르고 전세매물 소진 속도가 느릴 것으로 전망된다"며 "갭투자로 주택을 매입한 임대인들이 임차인이 전세로 오래 거주할수록 변수를 줄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가람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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