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최대작 '다다익선' 3년 수술 마치고 재가동

노형석 2022. 9. 1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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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오후 2시 국립미술관 과천관서 점등식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3년간의 복원작업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갔다.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가동 기념식이 열리고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화려한 레이저쇼와 함께 불을 맑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와아! 와아!”

관객의 힘찬 함성과 함께 거대한 탑에서 요지경 영상들이 빛을 내며 쏟아져 나왔다. 34년 전 비디오아트 거장 백남준(1932~2006)이 만든 세계 곳곳 건물과 사람들의 꿈틀거리는 이미지들이었다. 탑 아래에선 춤꾼들의 율동 속에 갖가지 빛깔의 레이저 조명이 천장을 향해 빗살처럼 솟아올랐다.

백남준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남긴 생애 최대 규모의 작품이자 미술관의 얼굴로 꼽히는 거대 영상탑 <다다익선>이 다시 불을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3년여 동안 벌여온 <다다익선>의 보존·복원 사업을 끝내고 15일 오후 2시40분 과천관에서 공식 점등식을 열었다.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창작그룹 노니, 봄랩의 예술가들이 기념 퍼포먼스를 펼친 가운데 열린 이날 점등식에는 윤범모 관장과 <다다익선>의 구조물을 설계한 김원 건축가, 고인의 테크니션(기술자)을 맡은 이정성씨 등이 참석해 작품의 재가동을 축하했다.

<다다익선>은 1986~88년 백남준이 김원 건축가와 협업해 만든 작품이다. 서울올림픽 개막 이틀 전인 1988년 9월15일 제막 완공식을 열고 처음 공개됐다. 1986년 건립한 과천관 들머리 구역의 나선형 공간 특성에 맞춰 개천절 날짜 10월3일을 상징하는 1003개의 크고 작은 티브이(TV) 브라운관 모니터(CRT)들을 집적시켜 언뜻 경천사터 13층 석탑을 연상시키는 불탑 모양으로 제작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3년간의 복원작업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갔다.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가동 기념식이 열리고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화려한 레이저쇼와 함께 불을 맑히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1988년 최초 제막 당시의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84년 6월 한국 도착 당시 언론과 회견하는 백남준. 옆에 있는 이는 부인 구보다 시게코. 백남준의 조수 폴 게린이 찍은 당시 도착 동영상 <한국으로의 여행>의 일부다. 이 동영상은 <다다익선>의 재가동을 맞아 아카이브 전에 국내 처음 공개 상영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높이 18.5m로 백남준 작품 중 최대 규모를 지닌 이 거대한 영상 설치물은 한국의 전통 건축물과 동서양의 건축과 사람들이 1000개가 넘는 모니터 안에서 출몰하면서 탑의 형상 속에서 하나가 되는 융합의 세계를 나타낸 기념비적 작품이다. 2003년 낡은 기존 티브이 모니터를 삼성전자 제작품으로 전면 교체하는 등 대수술을 받은 뒤로 지난 30년 동안 숱하게 교체와 수리를 되풀이해왔다. 그러다 2018년 2~3월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점검 결과 `계속 가동할 경우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누전상태’란 판정을 받고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한겨레>가 2018년 4월 가동중단 사실을 특종보도한 뒤 철거냐, 보존이냐로 미술계에서 뜨거운 논란이 빚어졌고, 이듬해 9월 윤범모 관장이 장기간의 보존수복 작업을 통해 다시 가동시키겠다고 공식 발표하면서 논란은 잦아들었다. 미술관은 국내·외 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거쳐 ‘작품의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되 불가피한 경우 일부 대체 가능한 디스플레이 기술을 도입한다’는 방침에 따라 `보존·복원 3개년 계획’을 세우고 모니터 수리와 교체 작업을 지속해왔다.

15일 오후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 퍼포먼스 현장. 흰옷을 입은 춤꾼들이 영상탑 작품 주위를 돌며 빛을 흩뿌리는 몸짓을 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미술관 쪽은 보존·복원 과정에서 1003대 브라운관(CRT) 모니터 및 전원부 등을 정밀진단한 뒤 중고 모니터 및 부품 등을 수소문해 손상된 모니터 737대를 수리·교체했다. 특히 더 이상 쓰기 어려운 상단 6인치와 10인치 브라운관 모니터 266대는 기술 검토를 거쳐 외형을 유지하면서 평면 디스플레이(LCD) 투사 방식의 신제품을 제작해 바꿔 넣었다. 과열을 막기 위해 냉각설비를 갖추는 등 보존환경을 개선했고, <다다익선>에 상영되는 8개 영상 작품을 디지털로 변환, 복원해 영구 보존할 수 있게 했다. 이런 보존 처리 작업은 지난해 연말까지 사실상 마무리됐으며, 지난 1월17일부터 여섯달간 <다다익선>을 시험 가동하면서 가동 시간별 작품 노후화 정도 등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앞으로의 운영방안과 중장기 보존방향 등을 마련 중이라고 미술관 쪽은 설명했다.

1988년 당시 <다다익선> 구조물 조립 공사 장면.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에 소장된 사진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34살이 된 <다다익선>은 모니터 등 핵심부품 생산이 중단되고 기기 노후화가 가속돼 앞으로도 계속 수리, 교체 작업을 하며 연명해야 할 운명이다. 미술관 쪽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일단 가동 시간을 주 4일, 하루 2시간으로 제한하고 계속 상태를 점검하기로 했다. 미술관 쪽은 “지난 3년간의 <다다익선> 보존·복원 과정을 담은 백서를 내년에 발간해 배포할 예정인데, 전세계 각지에 흩어진 백남준 영상작품의 보존에 교과서와도 같은 전범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3년간의 복원작업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갔다. 15일 오후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재가동 기념식이 열리고 백남준 작가의 <다다익선>이 화려한 레이저쇼와 함께 불을 맑히고 있다. 노형석 기자
15일 오후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 퍼포먼스 현장. 흰옷을 입은 춤꾼들이 영상탑 작품 주위를 돌며 빛을 흩뿌리는 몸짓을 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15일 오후 열린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식에서 윤범모 관장이 백남준의 작품 테크니션(기술자)이었던 이정성씨에게 감사장을 준 뒤 기념사진을 찍고있다. 노형석 기자

<다다익선> 재가동을 기념한 전시도 마련됐다. 백남준이 작품 설치를 구상한 시점부터 현재 보존 재가동 상황까지 쌓인 아카이브 200여점과 관계자들의 구술 인터뷰로 구성된 기념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도 15일부터 내년 2월26일까지 과천관에서 열린다. 단연 눈길을 모으는 출품작은 고인의 조수 폴 게린이 촬영한 백남준의 `금의환향’을 다룬 영상물 <한국으로의 여행(Trip to Korea)>이다. 1984년 1월1일 위성영상쇼 <굿모닝 미스터오웰>로 세계적 선풍을 일으킨 백남준이 그해 6월 김포공항에 도착해 34년 만에 고국 땅을 밟으면서 취재진과 팬들에게 인사하고 마중 나온 가족들과 선친의 산소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한국 활동의 서막을 상징적으로 알리는 이 작품은 2007년 백남준 1주기 전 ‘부퍼탈의 추억’에서 선보인 뒤로 15년 만에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전시에는 이 영상물 외에도 <다다익선>과 관련된 소장 자료 200여점과 조수 폴 게린, 건축가 김원, 테크니션 이정성 등 연관 인사들의 증언을 담은 인터뷰 영상, 음악인 장영규 등 동시대 작가들이 고인의 아카이브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나온다.

미술관은 오는 11월에도 1990년대 한국 현대미술과의 상호 관계를 조망한 대형 기획전 `백남준 효과’를 과천관에서 시작하며 예술가의 발자취를 조망하는 국제심포지엄 `나의 백남준’도 열 예정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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