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글의 '것'이 참 거시기하다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그 학생은 매일 왔다. 매일 저녁 아홉 시쯤 되면 와서는 꼭 한구석에 마치 자기가 정해 논 자리라는 듯이 그 자리에 가 앉아서 홍차 한 잔 마시고는 두 시간가량 앉아서는 정해 놓고 영숙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바라보았다).
세상에 다른 아무 존재도 없이, 오직 영숙이만 있다는 듯이 그 두 눈은 영숙이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바라보았다). 애정과 욕망과 정열에 가득 찬 눈이었다. 그런데 영숙이는 첫날부터 이 시선이 반가운 것을 감각한 것이다⇒ 감각했다).
어떤 때는 너무도 선이 변치 않고 한 곳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모습이) 어째 남의 주의를 사게 되지 않을까 하여 염려되는 때도 있었으나 그가 용기를 내어 그 학생 쪽으로 돌릴 때 잠시라도 그 시선이 딴 데로 옮겨진 것을 발견할 때는 어째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들었다). (주요섭, 〈아네모네의 마담〉 중에서)
이 소설을 쓴 작가 주요섭(1902~1972)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에서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는 작품활동 초기에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층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려냈다. 이후 애틋한 애정 이야기를 소박하게 서술했고, 광복 후에는 다시 사회적인 현실 인식을 보여줬다.
한 문단에 ‘것’이 다섯 군데 들어갔다. 괄호 속처럼 빼고 쓰거나 대체하는 편이 낫다. 인용 문단의 ‘것’은 두 종류로 나뉜다. 네 개는 문장 끝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으면서 붙었다. 이런 문투는 1920년대 들어 유행했다고 한다. 〈모국어를 위한 불편한 미시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공부한 문인들이 쓰면서 널리 퍼졌다.
이 사족 문투는 문인들이 만들어서인지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다음은 어느 활자매체에 실린 글의 한 문장이다. 위의 대안처럼 사족 ‘것이다’를 쳐내야 한다. 침대에 들기 위해 이를 닦고 있는데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 ‘것’은 ‘모습’으로 대체됐다. 왜 이런 ‘것’을 바꿔야 하나? 설명은 일찍이 프랑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1821~1880)가 내놓았다. 플로베르는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 없다”며 작가는 대상을 적확히 가리키는 단어를 찾아내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노력은 일반인도 기울여야 한다. 이 지침은 ‘일물일어(一物一語)’ 또는 ‘일사일언(一事一言)’이라고도 공유된다. 쉽게 풀어서 말하면, “것으로 대충 때우지 말고 알맞은 낱말을 쓰라”가 된다.
‘것’이 활용되는 여덟 가지 용례
‘것’의 용례는 여덟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적합한 명사가 있는데도 그 대신 ‘것’을 쓴 경우다. 그렇게 대충 쓴 ‘것’을 적합한 명사로 대체해야 글이 구체적이고 정확해진다. 둘째, 주어를 서술하는 부분에 주어와 같은 명사가 반복되는 결과를 피하기 위한 선택으로 ‘것’이 쓰인다. 이 경우 ‘것’이 불가피해 보이지만, 다른 대안이 있는 사례도 있다.
셋째, 부연하거나 강조하기 위해 문장을 ‘것이다’로 마치는 경우가 있다. 넷째, 도치 문장에서 쓰인다. 다섯째, 추측하는 문장에도 ‘것이다’가 쓰인다. 여섯째, 당위에도 쓰인다. 일곱째, 예정이나 의지, 계획을 서술할 때 문장을 ‘것이다’로 끝낸다. 여덟째 문인들이 일본어투를 모방한 ‘것이다’는 이미 다룬 바 있다. 각 활용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대안이 있을지, 있다면 어떤 대안이 선택 가능할지 생각해보자.
첫째 유형의 다음 문장에서 ‘것’을 대신할 다른 명사를 떠올려보자.
[원문1] 기존의 거시경제 수단의 기본 틀을 흔드는 재정의 화폐화 대신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 확대에 협조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더 현실적이다.
[대안1] 기존의 거시경제 수단의 기본 틀을 흔드는 재정의 화폐화 대신 중앙은행이 정부의 재정 확대에 협조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방식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더 현실적이다.
둘째 유형에 속하는 문장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이 문장에서 ‘것’은 앞의 ‘일’을 지칭하고, 필요하다. 그러나 비생물 주어를 쓰는 방식으로 이를 대체할 수도 있다.
[원문2] 프로이트가 유물론적 의학에 경도된 당시 의학에 반기를 들고 정신분석학을 수립한 일 역시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섬세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대안2] 프로이트가 유물론적 의학에 경도된 당시 의학에 반기를 들고 정신분석학을 수립한 일 역시 새로운 시대정신에 대한 섬세한 인식을 바탕으로 했다.
설명하거나 강조하는 ‘것이다’로 끝나는 셋째 유형의 문장의 대안을 생각해보자.
[원문3] 뜻은 있는데, 발표하고 싶은 의식은 있는데 말이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 옛날부터 ‘이루 측량할 수 없다’느니 ‘불가명상’이니 ‘언어절’이니 하는 말이 따로 발달되어오는 것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생략해도 무방하다.
[대안3] 뜻은 있는데, 발표하고 싶은 의식은 있는데 말이 없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래 옛날부터 ‘이루 측량할 수 없다’느니 ‘불가명상’이니 ‘언어절’이니 하는 말이 따로 발달되어왔다.
다섯째, 도치하는 문장에 쓰이는 ‘것’은 바꾸거나 지울 필요가 없다.
[도치문] 이 도시 사람들이 건물을 이렇게 칠한 것은 17세기에 이곳에서 돌던 전염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종교적 염원에서였다.
[원문4] 이 도시 사람들은 17세기에 이곳에서 돌던 전염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종교적 염원에서 건물을 이렇게 칠했다.
추측하는 문장의 ‘것이다’는 대부분 대체 가능하다.
[원문5] 미국 보스턴 사무실에 앉아서 전 세계의 경제를 꿰뚫어볼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역시 톱다운 방식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 대한민국 서울의 개인투자자인 필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성공하기는 더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안5] 미국 보스턴 사무실에 앉아서 전 세계의 경제를 꿰뚫어보리라고 여겨지지만 그 역시 톱다운 방식이 쉽지 않은 듯하다. 그러니 대한민국 서울의 개인투자자인 필자가 톱다운 방식으로 성공하기는 더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불가결한 ‘것’이지만, 꼭 필요한 곳에 쓰자
당위를 나타내는 데에 쓰인 일곱째 ‘것이다’는 다음과 같이 생략 가능하다.
[원문6] 정부 여당이 지금처럼 ‘발본색원’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자극적인 말잔치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대안6] 정부 여당이 지금처럼 ‘발본색원’이니 ‘패가망신’이니 하는 자극적인 말잔치로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에 부딪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정이나 의지, 계획을 서술하는 ‘것이다’는 대체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러나 대안처럼 바꿔서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원문7] 주요 대학은 내년부터 정시 선발 비중을 높일 것이다.
[대안7] 주요 대학은 내년부터 정시 선발 비중을 높이려고 한다.
‘것’은 우리 말과 글에서 불가결한 요소이고, 두루 자주 쓰인다. 다만, 한 글에서 너무 많이 썼다면 그중 상당수를 지우거나 대체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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