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총장 선거'가 서울대 개혁 저해한다

기자 2022. 9. 1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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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차기 총장 선출하는 절차 진행

2011년 법인화로 이사회 도입

편법 선거에 따른 폐해는 여전

정치 과정 변질돼 부작용 심각

지지자 요구 절충에 전전긍긍

도약은커녕 위상 후퇴할 우려

임기가 곧 끝나는 오세정 서울대 총장의 후임을 선출하는 과정이 시작됐다. 앞서 서울대는 15년 만에 처음으로 중장기 발전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중장기 계획에는 서울대가 가진 문제점을 스스로 지적하고 인정하는 반성의 내용도 담겨 있다. 새로 선출될 서울대 총장은 서울대를 개혁해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으로 발돋움하게 하고, 국가적으로는 경제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할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개혁과 혁신에 대한 이 같은 기대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개혁을 가로막는 총장선거 제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울대는 지난 2011년 대학의 자율성을 높여 세계적 수준의 연구와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법인화를 시행했다. 법인화에 따라 대학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으로 이사회를 설치했고, 총장의 권한을 확대해 연구와 교육에 필요한 개혁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단행했다. 당시 서울대는 국립대학으로서 재정과 조직·인사 등의 대학 운영에 있어 교육부의 지시와 통제를 받으면서도, 총장은 교수들이 직접 선출하는 모순된 거버넌스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서울대 법인화는 법적 제도와 현실이 충돌하는 이러한 왜곡된 운영체제를 개선할 기회였다.

중세 이후 대학의 역사를 보면, 학문 연구자들이 국왕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어 설립한 대학(칼리지)에서는 교수들이 직접 선거를 통해 총·학장을 선출했다. 교수 조합의 성격을 가진 이들 대학에서 교수들은 연구자일 뿐만 아니라 대학의 재정에 대해서도 직접 책임을 지는 조합원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여러 칼리지가 이 같은 역사를 가진 사례다.

그 반면, 하버드대와 같이 법인이 대학 운영의 최고 결정 권한을 가진 대학에서는 법인 이사회가 총장추천위원회 등의 추천을 받아 총장을 임명한다. 하버드대는 총장 임기가 시작되기 2∼3년 전부터 후보를 물색하고 이들에 대한 심사 과정을 시작하며, 선출된 총장은 대개 10년 이상 재임하며 장기적 안목에서 대학 발전의 비전과 계획을 추진한다. 한편, 공공재원으로 운영되는 미국의 주립대들은 주지사가 최고 의사결정권자로 총장의 선임권을 가지는데, 대부분 자문위원회의 추천에 따른다.

법인화한 서울대의 경우, 총장추천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이사회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거친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으로서 일견 적절한 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법인화 이후에도 간접선거를 통해 총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있다. 단과대학의 규모에 따른 교수 평가단을 비롯해 직원 등 교내 이익집단이 정책평가라는 형식을 빌려 투표를 한다. 이는 서울대 법인화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편법이다. 이로 인해 총장에 응모하려는 교수들은 몇 년씩 ‘표밭’을 일궈야 하고, 교내 이해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해 줄 후보자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행태를 취해 왔다.

결과적으로, 서울대 총장 후보 추천 과정이 대학 발전에 관한 비전과 계획을 실천할 최적임자를 선정하는 숙의(熟議) 과정이 아니라, 이해관계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치 과정이 됐다. 이 과정을 통해 선출된 총장은 서울대의 장기적인 발전을 도모하지 못하고 지지자들의 다양한 요구를 절충하다가 임기를 마친다. 실제로 서울대 구성원의 50% 이상이 서울대가 세계 일류 대학으로 발전하기는커녕 현재의 위상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끊임없는 기술적 발전으로 세계는 숨 쉴 틈 없이 변화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 경제는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생산 잠재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세계를 선도할 융합적 인재를 배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루아침에 경쟁에 낙오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서울대가 개혁을 통해 세계 최우수 대학으로 발전하는 것은 단순히 서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립대학으로서의 국가적 소명이기도 하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기득권에 집착하는 집단이기주의를 버리고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에 함께 발 벗고 나서야 한다. 그 첫 번째 과제는 개혁을 가로막는 총장 선거 제도의 폐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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