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입자를 잡아라".. '역월세' 준비하는 집주인들
대출 여력 없는 '영끌족' 위험.. "역월세 확산될 수 있어"
대구에서 3년차 신축 아파트를 보유 중인 A씨는 곧 만기가 돌아오는 세입자가 전셋값을 2억원 낮춰달라고 해 고민이 커지고 있다. 세입자는 전세가격을 낮춰주지 않을 경우 이사를 나가겠다고 통보한 상황이다. A씨는 대출을 받기 어려운데다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고 판단해 어떻게든 현 세입자를 잡고 싶다. 주변에서는 세입자에게 2억원에 해당하는 월세를 지급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전국의 아파트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면서 집주인들이 ‘역월세’를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3년 전 일부 지역에서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동반 내리막을 보이면서 나타났던 현상이 재현된 것이다.
15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주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은 전주대비 0.16% 하락했다. 내림폭도 전주(-0.15%)에 비해 확대됐다. 전국 176개 시군구 중 하락 지역은 139곳에서 143곳으로 늘었다. 매매가격 하락 영향으로 전세 가격도 하향 조정되고 있는 것인데, 같은 시기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17% 떨어져 한국부동산원 조사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전세가격이 하락하면서 세입자가 ‘갑’이 되는 세입자 우위 시장이 펼쳐지고 있다. 공급과 수요의 우위를 살펴볼 수 있는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을 보면 전세의 경우 지난달 29일(한국부동산원) 기준 90.2로 2019년 11월 11일(88.3) 이후 가장 낮았다. 수급동향은 0에 가까울수록 공급우위,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 우위로 볼 수 있는데, 지금은 공급우위의 분위기가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처럼 전세가격이 하락하는 세입자 우위시장에서는 ‘역월세’가 번질 가능성이 크다. 임대료 상승기에 전세가격 상승분 만큼 세입자에게 월세를 더 받는 ‘반전세’와 정반대의 현상으로 보면 된다. 가령 세입자가 만기가 도래해 전세가격을 1억원을 낮춰달라고 할 경우 집주인이 30만~35만원 수준의 월세를 세입자에게 내주는 격이다.
특히 2020~2021년 집값 급등기에 ‘영끌’ 투자자가 많았던 터라 집주인이 낮아진 전세금만큼 차액을 내줄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받는 전세금 반환 대출도 주택담보대출의 일환이라 강화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적용받기 때문이다. 역월세가 늘어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거래가 위축될 경우 나중에 보증금을 올릴 수 있는 전세거래가 매매보다 더욱 탄력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전셋값은 더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 “역월세는 전셋값이 떨어져 역전세난이 심해질 때 주로 나타나는데 지금도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했다.
‘역월세’는 주로 현 세입자와 집주인 사이에서 계약을 갱신하는 때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3년 전인 2019년 서울 송파구에서 9510가구에 이르는 헬리오시티가 입주할 때 송파구는 물론 강동구, 광진구, 중구 등 전셋값 하락이 일시에 하락하면서 역월세가 단기적으로 확산된 적이 있었다.
최근에는 매매·전세의 하락폭이 큰 세종, 대구 등 지방과 인천 송도, 수원 영통 등에서 역월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세종의 경우 올해 들어 이달 5일까지 전세가격이 9.87% 하락했고, 대구는 5.89%, 인천 연수구는 8.37%, 수원 영통구는 6.88% 떨어졌다.
세종시 새롬동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전세가격이 대부분 1억~2억원 대로 떨어져 전세 보증금을 내줘야 하는 집주인이 상당수”라면서 “집주인이 여력이 없다고 확인될 경우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을 가장 먼저 안내하지만, 역월세와 같은 방법으로 집주인과 합의를 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인천시 송도동의 한 공인중개소 대표는 “일부 아파트의 경우 전세가격이 반토막이 나기도 해서 집주인은 물론 세입자들도 돈을 못 돌려받을까 우려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세입자가 굳이 이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역월세를 받아 해결하려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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