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45주년..99세 원정대장의 또렷한 기억

심병일 2022. 9. 15. 11: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1977년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 원정대의 김영도 대장


"여기가 정상이다.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네팔 현지 시각 낮 12시 50분. 에베레스트(해발 8,848m) 정상에서 캠프2(6,450m)로 전해진 고상돈의 가슴 벅찬 음성이다. 베이스캠프(5,400m)에서 긴장감 속에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대원들도 모두들 '와아'를 외치며 환호했다. 한국은 세계 8번째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오른 국가가 됐다. 당시 국민적 자긍심을 갖게 한 대사건이었다.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고상돈(1977년 9월 15일)


18명의 '77원정대'는 네팔 현지서 박정희 대통령의 축전을 받았고, 귀국 후에도 대대적인 환영이 이어졌다. 서울 시내서 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대원들은 체육훈장을 받았다. 서울 국립현충원을 방문해 순국선열에 참배도 했다. 등정 기념 사진전도 열렸다.


오늘 9월 15일. 77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등정 45주년이 되는 날이다. 산악인들은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열고 있다.

한국 산악의 위대한 역사 창조를 당시 현장에서 진두지휘했던 김영도 원정대장(이하 김 대장)을 최근 KBS가 만났다. 1924년생, 우리 나이 99세.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또렷한 기억력에 놀랐다. 에베레스트 원정을 기획하게 된 계기, 고상돈이 정상 등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배경, 그리고 산에 대한 철학까지. 다음은 김 대장과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당시 어떤 이유로 기획됐나요?

1971년 민주공화당 국회의원으로서 선전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전국에 산장과 대피소 설치 사업을 추진하다가 국민적 사업이 필요하다 해서 우연히 에베레스트 초등 기획을 하게 됐다. 나는 산을 좋아했지만, 서울 근교만 다닌 사람이었다.

.입산 허가를 받는 과정이 힘들었다면서요.

1971년 네팔 정부에 입산 허가를 신청했는데 2년 후인 1973년에 허가한다고 연락이 왔다. 그런데 입산 허가 연도가 한참 뒤인 1977년이었다. 시기는 눈이 많이 쌓여 등정하기 힘든 가을이었다. 프랑스 원정대 측이 1974년 입산 허가와 바꾸자고 제안했는데 우리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거절했다. 프랑스 원정대는 1974년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섰다가 5명이 사망하는 등 결국 실패했다.
*전국에서 선발된 원정대원들은 수차례 합동훈련을 했다. 그러다 1976년 2월 설악산에서 눈사태로 3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에베레스트 관문 텐징-힐러리 공항(루클라)까지는 어떻게 이동했나요?

태국 방콕을 거쳐 네팔로 들어갔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카트만두에서 루클라까지 380km쯤을 한 달 가까이 걸어갔다. 비용 문제가 아니었고 순차적으로 고도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에베레스트에 대한 정보는 주로 외국책을 통해 습득했다.

.여러 대원 중 정상 공격조로 고상돈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1차 정상 공격조는 박상렬과 셰르파 1명이었다. 그런데 박상렬이 8,700m 지점에서 산소 문제로 컨디션이 바닥났고, 결국 포기하고 하산했다. 애초 베이스캠프에서 셰르파들의 의견도 들어봤는데 정상 공격 대원으로 박상렬과 고상돈이 추천됐다. 두 사람이 등반 기술과 체력이 가장 뛰어났다. 그래서 박상렬이 실패한 후 2차로 고상돈이 셰르파 펨바 노르부와 함께 올라갔다.
*77원정대의 국민적 영웅이 박상렬에서 고상돈으로 바뀐 배경을 알 수 있다. 김 대장은 1차에서 박상렬이 성공했다 하더라도 고상돈을 뒤이어 올려보내려 했다. 정상에 눈이 1m쯤 쌓여있어 고상돈이 실제로 밟은 해발 높이는 8,849m라는 말도 있다. 고상돈은 2년 후인 1979년 5월 북미 최고봉인 알래스카 드날리(Denali, 해발 6,194m)를 한국 최초로 정복했다. 하지만 하산 과정에서 추락해 숨졌다. 고향인 제주에 영면해 있다.

77원정대.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김영도 원정대장, 뒷줄 바로 뒤가 고상돈 대원


.귀국 후 카퍼레이드 환영 행사를 받았습니다.

귀국 직전에 서울서 카퍼레이드가 있을 거라고 들었다. 조용히 들어가고 싶었는데 응했다. 한국에 오니까 난리가 나 있었다. 청와대 가서 훈장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과 독대했을 때는 곧바로 남극대륙 진출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 대장과 고상돈은 체육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받았다.

.산에 대한 철학은 무엇입니까?

후배들에게 산악인으로서 어떻게 살 것이냐를 생각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저는 사람을 둘로 나눠봅니다. 산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 그리고 산에 가는 사람을 다시 책을 읽는 사람과 안 읽는 사람, 또 책을 읽는 사람을 다시 나눕니다. 글을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으로요.
*김 대장은 '나의 에베레스트', '서재의 등산가' 등 여러 책을 썼고, 등산 관련 외국 서적들도 번역했다. 인터뷰하는 날도 배낭에 집필 중인 원고가 들어있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100세, 건강 비결은 무엇인가요?

원래 건강 체질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 유도를 하고 철봉도 좋아했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세속적인 생각을 안 한다. '뭘 잘 먹고, 편하게 사는 데'에 별로 신경을 안 쓴다. 그리고 집에서 자주 글을 쓴다.

한국 에베레스트 초등의 산증인 김영도 원정대장은 43년 전 먼저 떠난 고상돈 대원의 기일에 맞춰 매년 5월 제주를 찾는다.

심병일 기자 (sbis@kbs.co.kr)

Copyright © K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 학습 포함)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