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도 어려운데 "폐팀이 뭔말?"..난해한 '회사어 사전'

박수지 2022. 9. 15. 10:4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올해 초 중소기업에 입사한 김아무개(28)씨는 사내 메일을 주고받다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보고 수차례 검색을 했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명일·작일 등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자체 노력으로 많이 없어진 표현들인데, 보수적인 회사일수록 한자어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을 '문서의 격'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과도한 한자어 남용은) 격과는 관련 없는 고정관념이니 일상적인 용어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작일, 유첨, 불출 등 여전히 회사 공문에
국립국어원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게 좋아"
게티이미지뱅크

올해 초 중소기업에 입사한 김아무개(28)씨는 사내 메일을 주고받다가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을 보고 수차례 검색을 했다. ‘금일’이 오늘을 가리킨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지만, ‘작일’이나 ‘명일’은 김씨가 처음 보는 표현이었다. 김씨는 “일상적으로 ‘어제’와 ‘내일’이라고 쓰는 표현을 왜 꼭 회사 안에서만 이렇게 써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신입이니까 상사들이 쓰는 말을 따라서 쓰고 있다”고 했다.

최근 ‘심심한 사과’라는 표현을 지루한 사과로 오해하는 사례가 문해력 논란으로 불거졌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작일이나 명일처럼 공공기관 등의 공문서에서도 퇴출된 표현을 일반 기업에서 공문 등에 ‘회사어’로 여전히 쓰고 있어 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직장인 ㄱ씨는 30여개 거래처에 ‘폐사의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한 납품가 변경을….’이라는 문구를 공문에 포함했다가 2곳으로부터 “회사를 왜 접느냐, 미수금을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지난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본인이 속한 회사를 낮춰 부르는 표현인 ‘폐사’(弊社)를 거래처 쪽에선 ‘폐업’과 비슷한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ㄱ씨가 “상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고 남기자, 댓글에선 ‘폐사’의 뜻을 아는 게 상식인지 여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표현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대기업 직장인 3년차인 박아무개(30)씨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지금은 ‘우리 팀’대신 ‘폐팀’이라는 말까지 쓰다 보니 어색한지도 못 느끼게 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 업무 메일 보낼 때 익일, 명일, 작일 썼다가 옛날 사람 취급받았다”, “일부러 작일 같은 표현은 절대 안 쓰고 꿋꿋이 어제라고 쓴다”는 등의 반응도 있다.

온라인에선 젊은층이 낯설어 하는 이러한 표현들을 ‘회사어’로 명명하고, 신입사원들이 익혀야 할 상식으로 ‘회사어 사전’이라는 글이 공유되기도 한다. 작일과 명일을 비롯해 익일(이튿날), 차주(다음주) 등 ‘시제’와 관련된 표현은 알아둬야 할 1순위 표현이다. ‘송부’(보내다), ‘유첨’(붙임), ‘불출’(내어주다) 등의 한자어 표현도 있다. 유첨은 풀어 쓰면 ‘붙임이 있음’이라는 중복 표현으로, 사전적으로 ‘첨부’가 맞는 말인데도 업무 용어로 자주 쓰인다. 상신·품의·기안 등 회사 보고 및 결재 절차 등과 관련된 어휘도 습득 대상이다. 입말로 자주 쓰는 ‘긴급히’나 ‘빨리’ 대신 업무 메일 등에는 ‘지급히’라는 낱말도 신입사원들은 익혀야 할 새로운 낱말이다.

국립국어원은 어려운 한자어를 쉬운 표현으로 다듬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는 “명일·작일 등은 정부나 공공기관에서도 자체 노력으로 많이 없어진 표현들인데, 보수적인 회사일수록 한자어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을 ‘문서의 격’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며 “(과도한 한자어 남용은) 격과는 관련 없는 고정관념이니 일상적인 용어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