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No.18' 깨어날까..등번호만 5차례 바꾼 김민혁 이야기[SPO 인터뷰]
-두산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동주의 배번 18번
-은퇴 후 투수들의 차지에서 올해 김민혁에게
-“벌써 6번째 등번호…이젠 보여드려야죠”
[스포티비뉴스=잠실, 고봉준 기자]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닻을 올린 두산 베어스에는 두 개의 영구결번이 자리하고 있다. KBO리그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기록된 고(故) 김영신의 54번과 영원한 불사조로 칭송받는 박철순의 21번이다.
그러나 두산에서 영구결번 못지않은 존재감을 지닌 등번호가 있다. 바로 18번이다. 2000년대 두산의 화력을 상징했던 김동주가 줄곧 달고 뛴 백넘버다.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3루수로 평가받는 김동주는 1998년 OB 베어스에서 데뷔한 뒤 2014년 두산에서 은퇴할 때까지 줄곧 같은 유니폼만 입었다. 이 기간 타이론 우즈를 비롯해 심정수, 심재학, 홍성흔 등과 막강한 타선을 이끄는 한편, 국가대표에서도 4번타자로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현역 마무리가 좋지 못했다. 여러 문제로 ‘불명예스럽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니폼을 벗었고, 당연하게 여겨졌던 영구결번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김동주의 18번은 여러 주인을 거쳤다. 이듬해 성영훈을 시작으로 2016년 김강률과 2017년 조승수 등 계속해 우완투수들이 18번을 달았다가 2018년부터는 다시 우완투수 박소준(개명 전 박종기)이 18번을 백넘버로 택했다.
그러나 두산 특유의 묵직함을 상징하는 18번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 투수들이 18번을 달고 뛸 때 성적이 좋지 못했다. 2015년 성영훈은 2군에서만 머물렀고, 김강률 역시 2016년에는 부상이 겹치면서 25경기 2패 4홀드로 그쳐야 했다. 조승수와 박소준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던 18번의 존재감은 올해 들어서야 제 주인을 찾은 느낌이다. 이번에는 투수가 아닌 김동주와 비슷한 스타일의 거포 내야수가 18번을 달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입단 8년차 김민혁이다.
올 시즌 LG 트윈스와 마지막 맞대결이 있던 14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민혁은 “원래 어렸을 때부터 주로 달던 백넘버가 10번과 20번 그리고 18번이었다”면서 “사실 지난해 (박)소준이 형한테 18번을 받기로 했는데 형이 1년을 더 달고 싶다고 해서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올 시즌을 앞두고 이 등번호를 드디어 받게 됐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민혁은 프로 입단 후 연례행사처럼 등번호를 바꿔왔다. 데뷔 직후 신인 시절에는 68번을 달았다가 92번과 48번을 차례로 품었고, 44번을 거쳐 지난해 전역 복귀 후에는 20번을 달고 뛰었다. 현역 복무 시기(2019~2020년)를 제외하면 거의 매년 백넘버를 바꾼 셈이다.
이렇게 8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백넘버를 안게 된 김민혁도 18번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김민혁은 “김동주 선배님의 등번호라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선배님께서 보여주신 레전드로서의 면모는 잘 알고 있다. 팬들도 같은 생각이시리라고 본다”면서 “나 역시 선배님의 뒤를 따라 18번을 달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어릴 적 핸드볼을 하다가 광주대성초 신경호 감독과 양윤희 코치의 제안으로 야구공을 쥐게 된 김민혁은 또래보다 한 뼘 이상은 큰 덩치를 앞세워 유망주로 성장했다. 광주동성중 때까지 포수와 투수, 3루수를 보다가 광주동성고 진학 후 본격적으로 전문 내야수로 활약했고, 2015년도 KBO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두산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김민혁에게 꽃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장타력만큼은 으뜸이라는 평가가 늘 뒤따랐지만, 1군에서만큼은 좀처럼 꽃을 피우지 못했다. 그나마 데뷔 초창기 얻었던 좌완투수 전문 대타라는 타이틀도 희미해졌다.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김민혁은 “안 그래도 최근 (김태형) 감독님께서 갑자기 외야 수비 훈련을 시키셨다. 자리가 없는 나로선 ‘알겠습니다’하고 바로 외야로 달려나갔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어 “남은 시즌은 대타로서라도 존재감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대타라는 것이 여러 불펜투수를 파악하고 있어야 해서 쉽지 않더라.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날 이른 오후부터 2시간 남짓 그라운드에서 구슬땀을 흘린 김민혁은 끝으로 “지금은 내야 글러브와 1루수 미트뿐이 없는데 감독님께서 원하시면 외야 글러브도 사야 할 것 같다”는 농담 반, 진담 반 끝인사와 함께 클럽하우스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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