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의 그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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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육아의 빈 곳
고급 육아용품은 그 집의 경제력을 가늠하게 한다. 마치 한강뷰 아파트에 혼자 사는 연예인의 일상을 구경하는 것처럼 육아 예능과 육아 인플루언서를 염탐하는 건 조금은 부럽고, 대부분 서럽다. 과시적인 측면이 강한 소셜미디어에서는 40만원 넘는 아기의자에 앉아 이유식 먹는 아이 사진이 흔하다. 물론 자랑하려고 비싼 육아용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닐 거다. 아이에게 예쁘고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니까…. 그래도 구입 전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릴 생각을 한 번은 했을 거다.
최근에는 5성급 호텔에서 돌잔치를 하는 사례가 늘었다. 돌잔치는 뷔페가 ‘국룰’이었는데, 방역지침에 따르다 보니 고급 호텔에서 소규모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비싼 호텔과 좋은 음식, 사진, 의복 등을 합치면 금액이 몇 달치 영어유치원비에 이른다. 몇 년 전이었다면 럭셔리한 돌잔치 소리를 들었겠지만, 지금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고급 호텔 돌잔치가 ‘국룰’이 되는 추세다.
비싼 육아용품이 아이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부모의 허영을 채우기도 한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자신을 실체화하는 것은 집 안 곳곳에서 목격되는 육아용품이다. 육아에 전념하면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한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은 자연스레 상실된다. 여기에 육아로 인한 피로까지 겹치면 공허함이 커진다. 마음의 빈 곳은 아이가 채운다. 그리고 잃어버린 사회적 지위와 성취감이 아이 위에 겹쳐진다. 아이 주변에는 부모가 과시하고 싶은 것들이 쌓여간다. 부모의 이 허영이 형의 말처럼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기회를 주는 것이라면 마냥 나무랄 수만 없을 거다.
아이들은 한곳으로 모인다. 이제는 비싼 곳으로 모인다. 아이에게는 안 비싼 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나 역시 아이가 유치원에 갈 때가 되면 영어유치원을 진지하게 고민할 것이다. 놀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일 테니.
EDITOR 조진혁
➋ 소망과 현실, 순서 바꾸기
그런 면에서 소셜미디어는 원초아와 초자아에게는 놀이터이고 자아에게는 악몽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상상과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하다.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셀피들 중에 필터를 거치지 않은 이미지는 과연 몇 %나 될까? 그들이 올리는 감정은 과연 얼마나 그들의 실제 일상을 반영할까? 여기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싶은 방식으로, 그 내용조차 얼마든지 수정하거나 심지어 창작해서 올려놓을 수 있는 세상이다.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미래의 내가 지금보다 더 대단한 존재가 될 것이라 꿈꾸는 것이 허영심의 본질이라면, 허영은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 혹은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라는 믿음, 자존감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내 성취는 조금 과장하고, 내 실수나 결함은 줄이거나 숨긴다. 더구나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하는 소망 역시 성장을 향한 욕구의 기반이다. 언제나 문제는 그게 어느 정도냐에 달려 있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이 소셜미디어 속에서 허영심은 선을 넘기 쉽다.
자기가 원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격차가 클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자아의 기능이 강한 사람들은 불가능한 것은 포기하고 가능한 목표를 찾는다. 하지만 초자아와 원초아의 기능이 강한 사람들은 소망과 현실의 순서를 바꾼다. 자기가 소망하는 것을 실제로 가졌다고 자랑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실제로 했다고 주장하는 거다. 일단 명문대생이라 치고 나중에 실제로 대학생이 되면 된다고 주장하던 <기생충>의 기우처럼 그건 사기나 거짓말이 아니라 계획의 일환인 거다. 협찬이나 광고를 받은 것처럼 보이려 게시물에 ‘#광고’ 해시태그를 올리는 행위는 이런 심리적 과정의 수많은 결과물 중 하나다.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어? 그냥 인플루언서라 치고 인플루언서에게 들어올 법한 협찬을 받은 것처럼 살아. 그러다 보면 실제로 유명해지고 누군가 협찬을 요청할 수도 있지 않겠니?
영화 <캐치미이프유캔>은 소셜미디어 시대에 다시 볼 만한 명작이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뉴욕 양키스가 이기는 이유가 줄무늬 유니폼에 있다고 말한다. 상대 팀이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보는 순간 그 명문구단 이미지에 주눅이 들어 실력 발휘를 못 하고, 그러다 보면 실제로 진다는 거다.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힘은 현실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에 대한 기대다. 그중에는 진짜도 있지만 가짜도 많다. 가상화폐나 NFT 같은 신생 가치들 역시 상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상상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면 현실이 된다.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을 거품이라 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WORDS 장근영(심리학자)
➌ 착한 소비에 대한 윤리와 모순
어느새 브랜드에게 ‘착한 기업 마케팅’은 패션이 되었다. 한때 모두가 (믿을 수 없겠지만) 조거 팬츠, 어글리 슈즈, 롱 패딩을 입고 다닌 것처럼, 각자의 특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없더라도 너도나도 입기 시작한 옷이 바로 ‘착한 브랜드’ ‘개념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인 셈이다. 소비자들이 스스로를 ‘착한 소비자’로 칭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브랜드는 애타는 구애자처럼 ‘착한 브랜드’의 역할을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사실 그 반대의 순서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 먼저 구애를 했든 간에 브랜드의 생태계는 이미 그렇게 돼버렸다.
일부 브랜드의 문제는, 소비자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뭐든 한다는 것이다. 설사 그것이 실제 브랜드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할지라도, 딱히 공익적인 가치에 깊게 관심이 있거나 진정하게 그 문제를 염려하지 않더라도 그렇다. 친환경을 내세우지만 사실 알고 보면 친환경이 아닌 활동을 의미하는 그린 워싱(Green Washing)은 그 단적인 예다. 지난해 이니스프리가 내놓은 ‘페이퍼 보틀 리미티드 에디션’은 종이로 된 포장지에 “안녕, 나는 종이 병이야(Hello, I am Paper Bottle)”라고 적혀 있었지만 실제로 한 겹 안에는 플라스틱 병이 숨겨져 있었다. 브랜드의 의도는 플라스틱 병의 분리수거를 쉽게 하려고 잘 벗길 수 있는 종이 포장지를 만든 것이라고 밝혔지만, 홍보 문구처럼 실제 종이 병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사랑이 배신당한 느낌을 받는다. H&M이나 자라 같은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Let’s close the loop(재활용 의류 수거 프로그램)’ 같은 캠페인의 이면을 보면 실제로는 바다 오염의 주범인 미세 플라스틱 섬유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것처럼. 영리한 소비자들은 이를 빠르게 발견해냈다. 나이·국적·이름까지 속인 건 아닐지라도, 사랑받기 위한 이런 일부분의 거짓말은 자칫 들통났을 때 완전히 애정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반면 착한 소비자들은 또 어떠한가? 스타벅스의 리유저블 컵 행사에서 긴 줄을 기다려 그 컵에 담긴 음료를 구매한 사람들은,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또 다른 플라스틱을 구매한 셈이었다. 더 모순적인 풍경이 있다면, 내연기관차를 타고 한 시간을 운전해 스타벅스에서 음료를 산 뒤 SNS에 올린 인증사진을 뿌듯해하는 것일 텐데, 어쩌면 그는 다시 한 시간을 운전해 집에 돌아가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거기서 나온 플라스틱 용기들을 대충 버리고 잠들지도 모른다. 어쨌든 리유저블 컵은 인증했고, 분리수거는 성가시니까. 웬만한 지방 도시 하나 인구수만큼의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들이야말로, 착한 소비자의 트렌드를 이끈다고 봐야 한다. 더더욱 택배가 일상화된 코로나 시대에 유튜브의 언패킹 영상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 유기농, 친환경, 공정무역 제품들이 하나하나 택배 박스에서 나올 때마다 궁금해진다. 그 많은 비닐 포장지들, 플라스틱 완충재들, 박스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한겨울에 굳이 비행기 타고 온 유기농 망고는 안 먹어도 큰 문제 없지 않을까?
그렇다 해도 온라인 쇼핑을 아예 그만두거나 커피를 끊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건조한 삶에 너무 가혹한 일이다. 우리가 매일 직면하는 문제는 ‘잘 모른다는 것’이다. 최근 나는 축산업이 일으키는 환경오염을 생각해서 우유의 대체재로 떠오른 아몬드 우유가, 결국 몇 년 후 그 아몬드 재배에 들어가는 막대한 양의 물과 살충제로 인해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착한 소비’는 어떻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무지한 상태에서도 가능한 착한 소비의 방식이란 일단 소비를 줄이는 것. 우리는 윤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는 모순된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 누구도 완벽히 착한 소비자도, 착한 브랜드도 아닐 수 있기에.
WORDS 이나라(건축 디자이너)
➍ 아이돌 신과 팬덤 문화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욕망의 층위가 숨어 있다. 다운로드 시대를 넘어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간 지금이지만 여전히 아티스트의 상업적 성공을 나타내는 지표인 음악 차트는 실물 음반의 판매량을 중요한 인기 척도로 삼는다. 그런 의미에서 팬들은 - 비록 일반인들에게 비이성적인 행위로 보일지라도 - CD를 적극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통해 아티스트의 성공을 위해 가장 합리적이고 전략적인 기여를 한다. 동시에 이를 통해 얻은 아티스트의 성공은 그들의 열성적인 ‘팬질’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만족감과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집단으로서 팬덤의 영향력은 음악 산업을 넘어 사회 전 영역에 걸쳐 드러나 있다. 아이돌이 주도하는 캠페인이나 기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물론, 팬덤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정치적인 조직이 되어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방탄소년단의 팬덤인 아미의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하지만 팬덤의 욕망은 기본적으로 아티스트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추종에 기반을 두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욕망은 종종 모순적이고 배타적인 것이기 쉽다. 그 안에는 인류애와 인간혐오가 공존하고, 박애주의와 이기적 팬심이 교차한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팬덤은 여전히 기본적으로 창작자나 아티스트에게 종속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양날의 검과 같은 팬덤의 힘을 산업의 긍정적인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결국 팬덤의 집단지성보다는 이 문화를 이끌어가는 기획자와 창작자, 그리고 아티스트들이 비전과 방향성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WORDS 김영대(대중음악평론가)
EDITOR : 조진혁, 정소진 | CONTRIBUTING EDITOR : 양보연 | PHOTOGRAPHY :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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