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 레트로 넘어선 '올드'한 감수성 [시네마 프리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주크박스 뮤지컬이라는 수식어를 단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감독 최국희)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받을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뮤지컬 장르는 SF 영화와 더불어 한국 영화는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할리우드의 전유물로 여겨져왔기 때문이다. 그간 '구미호 가족'(2006) '삼거리 극장'(2006) 등의 뮤지컬 영화가 나오긴 했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성공 전례가 없는 상황에서 나온 '인생은 아름다워'는 류승룡과 염정아라는 톱 배우를 기용하고 신중현, 최백호, 이문세, 이승철 등 유명 가수들의 히트곡들로 넘버를 구성하는 대중친화적 전략으로 장르의 낯섦을 극복해보려 했다.
지난 13일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인생은 아름다워'는 코미디와 감동 드라마를 오가는 류승룡, 염정아의 연기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추억의 대중가요들의 등장 역시 반갑다. 하지만 30~40년 전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고리타분한 남편과 아내의 관계 설정, 평이하고 통속적인 스토리가 몰입을 깨며 아쉬움을 준다.
영화는 무심한 공무원 남편 진봉(류승룡 분)과 그로부터 매일 구박받는 주부 세연(염정아 분) 부부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느 날 세연은 말기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다. 아내가 시한부 판정을 받자 진봉은 절망하면서도 습관적으로 아내에게 짜증을 낸다. 다 마르지 않았다며 바닥에 셔츠를 툭 던져버리고, 화장실에 휴지를 제때 갈아놓지 않았다며 면박을 준다. 아내의 생일인지도 모르고 고3인 아들의 수능 전까지 미역국을 끓이지 말라고 했는데 끓였다며 역정을 낸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우울한 세연은 늘 해왔던 일들을 하면서도 울적한 마음을 어쩌지 못한다. 그러던 중 그는 버킷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고, 우연히 어린 시절 첫사랑과 찍은 사진을 발견하면서 '첫사랑 찾기'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는다. 세연의 버킷 리스트 1번은 '사랑 받기'다. 어린 시절 자신을 좋아해줬던 첫사랑 정우 오빠(옹성우 분)를 찾아 사랑 받았던 시절을 기억하고 싶어진 것.
세연은 무턱대고 남편에게 첫사랑 찾기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진봉은 짜증을 내며 이를 거절하지만 백화점에서 명품 쇼핑을 하고 이혼장을 내미는 세연에게 항복, 아내와 함께 그녀가 어린 시절을 보낸 목포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내건 가장 강력한 코드는 '레트로'다. 영화는 진봉과 세연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30여년간 이어져온 그들의 역사를 훑는다. 그 시절의 촌스러운 의상을 입고 보편적이면서도 귀여운 연애담을 보여주는 류승룡 염정아의 코미디 연기가 영화의 백미다. 이문세의 '조조할인'이나 '알 수 없는 인생',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신중현의 '미인', 최백호의 '부산에 가면', 이승철의 '안녕이라고 말하지마', 이적의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다행이다', 유희열의 '뜨거운 안녕' 등 멀게는 70년대부터 가깝게는 2010년대까지 '국민 가요'라고 부를만한 곡들을 부르며 노래에 맞춰 춤까지 추는 배우들의 모습이 새롭다. 80년대와 90년대 분위기를 살린 레트로한 풍경과 배우들의 귀여운 연기, 상황에 맞게 등장하는 '국민가요'를 따라가다 보면 영화에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구닥다리 캐릭터와 관계 설정으로 그나마 있는 장점들을 갉아먹어버린다. 처음부터 시대착오적이었던 남편의 캐릭터는 끝까지 시대착오적 콘셉트를 유지한다. 영화 내내 사사건건 아내를 무시하던 그는 마지막에 가서야 아내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데, 여기에는 '사죄'가 빠져있다. 아내는 난생 처음 받아보는 선물에 기뻐할 뿐이고, 남편은 단 한 번의 선물로 평생 동안 이어온 무관심과 박대에 대한 면죄부를 받는다. 영화는 길고 아름답게 부연설명을 덧붙여가며 무뚝뚝하고 무심했던 남편이 마음 속으로는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에필로그는 통조림 반찬을 먹고 화장실에서 다 쓴 휴지심을 보며 죽은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는 남편의 모습을 처량한 듯 그리는데 얄팍하고 시대착오적인 묘사가 실소를 자아낸다. 80년대나 90년대 주말드라마에서 볼 법한 설정들이다.
장단점이 분명한 영화다. 배우들의 매력적인 연기와 귀에 익은 노래들은 분명 대중적으로 '어필'이 될만한 장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깃층이라고 알려진 4050 관객들에게도 이들 부부의 서사는 다소 '올드'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같은 인물의 서로 다른 시절을 연기한 염정아와 박세완이 보여준 의외의 싱크로율이 흥미롭다. 러닝타임 122분. 오는 28일 개봉.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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