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춤출 때, 나는 춤춘다
[[휴심정] 월간 풍경소리]
# 삼박사일 여행이 몸으로는 고단했나 보다.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다. 늦은 아침 먹고 책상머리에 앉으니 효선이 더 쉬라고 말하다가, “맞아, 당신은 그게 쉬는 거지?” 한다. 누구는 밭에서 풀들하고 노는 게 쉬는 거고 누구는 책상에서 책하고 노는 게 쉬는 거다. 일과 쉼이 하나라면 제법 아닌가?
# 엊그제 종주 목사가 건네준 책에서 한 농부의 지혜를 읽고 정신이 번쩍 든다. 목사가 오늘 달이 밝다고 말하니 농부가 “아니지요, 목사님. 하늘이 맑은 거지요” 하더란다. 맞다. 달이 스스로 밝은 게 아니라 하늘이 맑은 거다. 엄정 사슴농장 자매들과 점심 먹고 뜰에 앉아 있는데 짙은 녹음 속 죽은 나뭇가지들이 눈길을 끈다. 우리 좀 보라고, 겉으로는 숲 안에 있지만 속으로는 숲에서 떨어졌다고. 별리(別離), 곧 죽음이라고.
# 스티븐 바첼러의 <The Art of Solitude> 번역 시작. 제목을 <독거(獨居) 예술>이라 했다. 혼자 먹는 밥을 두고 ‘혼밥’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독거인들이 많은 세상이다. 구산(九山) 스님 밑에서 명상수련을 했다는 미국인 환속 승려의 경험담이 어차피 혼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귀띔이라도 된다면 하나의 보람이겠다. “독거는 한유한 이들의 사치품이 아니다. 인간으로 존재하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차원이다.”
# 오전에 와온 바다 한 바퀴 돌아 걷는다. 장로 내외와 함께 여수 돌산 갈릴리교회 예배 참석. 김순현 목사를 오랜만에 만난다. 찬송 부르는데 “나의 생명 드리니 주여 받아주소서”라는 노랫말에 동의가 되지 않는다. 생명 앞에 어찌 “나의”라는 접두사를 붙인단 말인가? 굳이 ‘나’와 ‘생명’이라는 두 말을 연결한다면 “나의 생명”이 아니라 “생명의 나”가 맞다.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닌 것을 누구에게 드린단 말인가? 하지만, 여기까지가 종교다.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다면 종교인으로 하여금 종교의 경계를 넘어 교주의 가르침이 괜한 말로 들리는 지경까지 들어가게 하는 것이겠다. 오후 3시, 토마복음 읽기. 처음 보는 얼굴들이 몇 있다. 효선은 구례에 와서 옛 친구들을 재미있게 만나나 보다.
# 오늘 옮긴 몽테뉴의 말이다. “내가 춤출 때, 나는 춤춘다. 내가 잘 때, 나는 잔다. 내가 아름다운 과수원을 산책할 때 간혹 다른 데서 일어나는 일에 생각이 붙잡혀 있지만 나는 그것을 다시 내 걸음으로, 과수원으로, 독거의 달콤함으로, 그리하여 나 자신에게로 데려온다.” 불교 선승(禪僧)들한테서 자주 들어 귀에 익은 말이다.
글 아무개 관옥 이현주 목사
*이 시리즈는 전남 순천 사랑어린학교장 김민해 목사가 발간하는 <월간 풍경소리>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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