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이 다 아는 이런 아파트가 있답니다

이경미 2022. 9. 15.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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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용 기자의 남양주 별내 위스테이 협동조합 아파트 거주기
체육관·창작소·협동상회 품앗이, '문고리 문화' 등 서로 들여다보고 돌봐주는 공동체


2022년 8월28일 위스테이별내 아파트 입구에서 주민들이 ‘최우수 협동조합’ 현판식을 열고 있다.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은 기획재정부가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10주년 기념으로 연 ‘2022 베스트 협동조합 어워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숨졌다. 8%대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늘리는 일이 시급도 최근 정부는 전년 대비 5조6천억원이나 되는 관련 예산을 깎았다. 세계 열 번째 부자 나라에서도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라는 집 문제는 여전히 국민적 스트레스다. 자산화의 욕망에 짓눌린 한국의 부동산은 늘 ‘사는 곳’이 아닌 ‘사는 것’으로만 취급됐다. 기본적인 주거복지는 물론 다양한 주거 대안도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다. 부담 가능한 수준의 금액으로 오랫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은 우리 모두에게 요원하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이 공급하고 운영하는 임대주택인 사회주택은 수년간 하나의 주거 대안으로 논의됐다. 20세기 초부터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공동주택을 공급한 경험이 있는 유럽과 달리, 협동조합이 짓는 사회주택은 우리에겐 생소하다. 비싼 민간임대와 공급량이 충분치 않은 공공임대 사이에서 저렴한 임대료와 안정적 주거, 공동체성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주목받았지만 아직은 소규모로 이뤄진다.

우리 부부가 ‘위스테이’ 관련 소식을 접한 것도 그런 와중이었다. 협동조합 관련 일을 하는 후배가 아파트 규모의 사회주택이 지어진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 나는 놀랍기도 했지만 회의적이었다. ‘공동체 아파트? 그게 되겠어?’라고 생각했다. 1천 명 넘는 대규모 아파트 거주 인원이 어떻게 공동체를 이룬다는 말인가. 협동조합이 짓는 공동주택은 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아파트 규모의 마을공동체는 위스테이가 처음이었다. 위스테이 입주민은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조합원이 되고, 조합이 소유한 아파트에 다시 임차인으로 입주한다. 일종의 간접소유 방식이다. 아파트 가격 상승에 따른 부동산 자산 효과는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조합이 존속하는 한, 계속 거주할 수 있다.

8월31일 위스테이 주민과 아이들이 동네텃밭에 김장용 배추 모종을 심고 있는 모습.

아파트 공동체가 되겠어?

나 역시 평소 협동조합이나 주거공동체에 관심이 많았고 유의미한 주거 대안이라 여겼지만 이런 대규모 공동체가 가능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 주민끼리 서로 귀찮게 하고 간섭하다가 사이가 틀어질 것만 같았다. 게다가 경기도 남양주 별내동이라니.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었다. 철든 뒤로 나는 줄곧 서울의 동작구와 은평구에서 살았다.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의 창립총회가 열린 2017년 당시 우리 부부의 회사는 각각 서울의 중구와 마포구에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협동조합형 뉴스테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위스테이를 선정함에 따라, 위스테이는 별내동과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두 곳에 짓기로 예정됐다. 지축동이 상대적으로 가까웠지만, 입주 시기(2022년 2월)가 우리와는 맞지 않았다. 별내는 2020년 7월 입주 예정이었다. 남양주까지 꼭 가야 할까. 함께 입주하자는 회사 선배의 설득에 넘어가면서도 공동체에 대한 우려가 앙금처럼 남았다. 정작 그 선배는 개인 사정이 생겨 입주를 중도 포기했다.

위스테이별내는 491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다. 조합원은 크게 둘로 나뉜다. 조합의 설립 취지를 이해하고 협동조합의 발기인이 된 1차 조합원(123가구)과 공개 모집한 나머지 2차 조합원(368가구)이다. 2차 조합원 모집은 별내나 지축 모두 한 차례씩 미달됐다. 자산이 되지 않는, 공동체 아파트라는 생소함 탓이리라 짐작했다.

위스테이별내에선 연중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단오제를 맞아 연 씨름대회.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아파트 소유 방식과 건설 과정만 독특한 게 아니다. 진짜 주거공동체에 가깝다. 위스테이에선 공동체 시설을 모두 주민이 운영한다. 공간별로 위원회를 꾸렸다. 항상 사람이 있어야 하는 동네책방이나 동네카페는 주민들이 돌아가며 사서와 바리스타로 일한다. ‘동네지기’라고 부르는 관리소장과 공동체 시설 운영 담당인 커뮤니티센터장도 주민이다. 조합 사무국, 커뮤니티센터 직원도 주민이다. 아파트 내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돌봄교실이 두 곳 있다. 이름이 각각 ‘놀자람’ ‘스스로 깨치는 아이들’인데, 역시 주민이 돌봄교사나 돌봄활동가로 일한다. 주민들이 출자해 만든 생활협동조합인 ‘협동상회’에서 일하는 이도 모두 주민이다. 협동상회에서 무언가 사려고 손에 들면 “그거 아까 아내분이 사가셨다”고 알려준다. “요즘 술을 너무 자주 사시네요” 같은 장난 섞인 핀잔도 이따금 듣는다.

동네카페 내 무인세탁실과 카페의 운영 수익금은 공동체 예산으로 활용한다. 카페에 딸린 공유주방에선 반찬모임이나 요리교실이 곧잘 열리고 최근엔 1인가구끼리 함께 밥해 먹는 모임이 생겼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피자를 만드는 수업도 했다. 동네책방에선 인근 독립서점 ‘오롯이서재’와 연계한 저자 강연이나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행사가 열리고, 동네체육관이나 동네창작소에선 ‘백개의학교’를 통해 주민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 목공이나 한자, 필라테스, 피트니스, 탁구, 악기 같은 취미 수업이 대부분인데 관련 일을 직업으로 하거나 직업처럼 하는 이들이 강사로 나선다. 나도 목공 수업에 참여해 작은 화장품 정리함을 만들었는데, 옆동 어르신이 목공 선생님이었다. 막걸리 동아리는 수시로 술을 빚어 공유주방의 발효실에 쌓아둔다. 매달 여는 공동체의 날 ‘꽁날’을 포함해 각종 행사 때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나눠 마신다. 위스테이별내 자체 브랜드 막걸리도 준비 중이다.

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결혼식.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꽁날’은 그야말로 동네잔치다. 중고 물품이나 지역 먹거리를 사고파는 장터가 열리고 삼삼오오 모여 잔디밭에 돗자리를 편다. 영화를 함께 보거나 축구게임, 씨름대회를 연다. 아이들을 위해 단지 내 공터에 여름엔 물놀이장을, 겨울엔 썰매장을 만든다. 핼러윈이나 크리스마스엔 한구석에 포토존이 생기고 산타와 마녀, 공룡이 동네를 돌아다닌다. 모든 행사는 주민들이 기획하고, 판을 만든다. 입주 1주년인 2021년 7월 ‘꽁날’엔 동네꼬마 합창단의 공연이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밝은 것은, 즐거운 노래로 가득 찬 것은~”. 제법 잘하는 아이도 있고, 얼어서 엄마만 보는 아이도, 언니 따라 무대에 오른 걸음마쟁이도 있었다. 노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한 아기가 울면서 엄마한테 달려가자 지켜보던 어른들이 함께 웃었다. 아내는 “대학교 캠퍼스에서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주말에 쉬고 싶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민원도

물론 워낙 많은 사람이 모여 있다보니 모든 입주민이 한결같이 함께 즐기는 것만은 아니다. 입주 초기엔 ‘주말에 쉬고 싶으니 조용히 해달라’는 민원이 조합의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주민끼리 꾸린 갈등조정위원회를 두어 갈등을 중재하려 노력하지만, 언젠가는 층간소음으로 경찰이 찾아오는 일도 있었다. 잔디밭에 강아지 배변을 방치하는 이도 있고, 실내 흡연으로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이도 있다. 세월호 추모 공간을 아파트 안에 만들었다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른 아파트보다 자잘한 행사가 좀 많은 곳’ 정도로 생각하며 평범한 아파트 생활을 원하는 주민도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의 소유 구조나 관리 체계가 독특하다보니 주민들 사이에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아파트 전체 온라인 대화방에서 하자 보수와 관련한 성토가 이어지다 갑자기 오프라인 긴급 토론회가 평일 저녁에 열렸다. 입주 한두 달쯤 된 시점이었다. 불신을 해소해나가는 방식은 계속되는 토론과 설득이다. 이럴 땐 ‘같은 동네 주민’ ‘계속 같이 살아갈 이웃’이란 점이 크게 도움이 된다.

아파트에 입주한 것은 2020년이지만, 주민들끼리 교류를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다. 우리 가족도 모임에 몇 차례 나갔다. 조합원이라면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총회 같은 행사였다. 그러다 아내의 직장이 갑자기 세종시로 내려가면서, 우리 가족은 거처를 아예 세종시로 옮겼다. 더욱 조합 사정에 어두워졌다. 어떤 면에선 2차 조합원과 다를 바 없었다.

2020년 7월 입주 뒤에도 나는 주말에만 잠깐 동네생활을 경험했다. 491가구 가운데 아는 이는, 입주 전부터 알던 지인 가족뿐이었다. 세종시 아파트엔 아는 이가 전무했으니 그나마 나아졌달까. 입주 초기 아파트 잔디밭에서 가수 이한철이 콘서트를 했다. 우리 아파트 주제가도 만들어 불러줬다(아파트에 주제가라니). 나는 동네생활 여기저기에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막걸리 원데이클래스를 듣고, 밴드 동아리에도 가봤다. 모두 신기한 일이었지만 아무래도 구경꾼 같았다.

아파트의 공동체 생활과 친숙해진 건, 2021년 3월 1년여 육아휴직을 하면서부터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동네’로 부르는 데 익숙해졌다. 그동안은 몰랐는데, 우리 아기가 아파트에서 얼굴이 알려져 있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 아기를 통해 나를 알아보는 이가 많았다. “아, 아빠시구나.” 한데 우리 아기만 유명인사가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을 알아보는 어른이 많았다. 아이들도 걸핏하면 내게 인사했다. 아이들의 태도는 분명 동네 분위기에 영향받고 있었다. 동네 곳곳에 아는 어른이 있으니 아이들도 인사를 꾸벅 잘한다.

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결혼식.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결혼식.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대성황, 한 달에 한 번 ‘아빠 육아의 날’

‘아빠 육아모임’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내 일상에도 공동체적 변화가 시작됐다. 육아휴직을 하고 두어 달 뒤 다시 출근하면서 아내는 나를 엄마들이 모인 단체대화방에 집어넣었다. 2019년 태어난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 모임이었다. 단체대화방에는 엄마 17명이 있었는데, 모임 때마다 나만 홀로 아빠였다. 어느 날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을 ‘아빠 육아의 날’로 정해 아빠들이 아기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자는 것이었다. 엄마들은 “당장 남편을 만나달라”고 했다. 처음 아빠 넷이 만난 날은 꼭 대학 시절 소개팅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2021년 5월 마지막 토요일부터 모임을 했다. 지금은 아빠 13명이 단체대화방에 모여 있다. 아빠들은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 그러다 요즘은 주말마다 이곳저곳에서 함께 놀았다. 수목원이나 숲체험원, 박물관, 키즈카페, 계곡, 썰매장 등을 찾아다녔다. 아파트 잔디밭이나 동네체육관, 동네창작소 같은 곳에서도 어울렸다. 엄마들은 자기들끼리 놀았다. 2022년 1월엔 1박2일 일정으로 강원도 눈썰매장에 다녀왔다. 엄마들도 동네에서 1박2일을 보냈다. 엄마들이 아기와 가장 길게 떨어진 날이었다. 그 뒤에도 강원도 속초로 여행을 떠나고, 열다섯 가족이 모여 1박2일 캠핑을 했다. 만 3살 즈음인 아기들은 이젠 멀리서도 서로가 보이면 이름을 부른다.

아빠들은 서로 고민을 토로하는 친구로 지낸다. 어느 날 한 아빠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멀리 지역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이 관을 들겠다며 올라왔다. 안쓰러워서, 누군가 “다음부턴 우리가 들죠”라고 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일 땐 서로 돌아가며 확진돼 집에 갇혔는데, 누군가 반찬이나 아이들 놀잇감을 대문 손잡이에 걸어놓고 가곤 했다. 한 아기는 조금 큰 병으로 며칠 큰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와서는 ‘누가 제일 보고 싶어?’란 물음에 엉뚱하게도 다른 아빠 이름을 댔다. 다들 크게 웃었다. 2022년 3월엔 아이가 처음 어린이집에 갔는데, 원장 선생님이 다가와 신기해하며 물었다. “어떻게 부모님들끼리 서로 다 아세요?”

아파트 잔디밭에서 열린 결혼식. 위스테이별내사회적협동조합 제공

“어떻게 부모님끼리 다 아세요?”

이젠 집에서 나가 아파트 상가의 편의점에 다녀오는 길에도 꼭 한두 사람 아는 이를 만나게 된다. 옆집에 사는 이가 누군지, 그 집 아이가 몇 살이고 이름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마주칠 때마다 인사하고 음식 같은 걸 주고받고 안부를 묻는 일이 자연스러워졌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마침 코로나19에 확진돼 가족 모두가 자가격리 중이었다. 하루 간격으로 이웃들이 아기용 볶음밥, 애호박국, 협동상회에서 산 옥수수과자, 청포도, 주스, 사과, 멸치볶음, 콩나물무침, 잡채, 멜론 등을 문에 걸어놓고 갔다. 냉장고가 순식간에 가득 차버렸다.

“세상에 이런 아파트가 어디 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우리끼리 모여 있을 때도 그 말을 자주 한다. 어린 시절 이후 이런 마을공동체는 처음인 것 같다고 답한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릴 때의 아련한 느낌을 종종 떠올리게 된다. 그런 곳이 아직 여기 있고 거기서 살고 있어 다행이라고, 우리도 종종 그렇게 말한다. 공동체 아파트에서 자라난 우리 아기들이 우리처럼 이곳을 기억해주길 바라면서.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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