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R&D도 오징어게임처럼 중장기·자율성·글로벌 지향해야"
넷플릭스서 미리 투자부터 받고
충분한 기간동안 자율성도 확보
완성도 높여 세계정상 올랐는데
출연연·대학선 단기성과만 집착
"규제 최소화한 연구환경 조성을"
“‘오징어 게임’의 투자·제작·시장 환경처럼 국가 연구개발(R&D) 생태계도 중장기·자율성·글로벌을 지향해야 합니다.”
‘오겜’이 비영어권 드라마로는 처음으로 12일(미국 현지 시간) 드라마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가 있는 ‘에미상’을 받자 과학기술계에서 나온 반응이다. 이 드라마는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게임 참가자들이 유일한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넷플릭스 시리즈다. 에미상에서 감독상(황동혁)과 남우주연상(이정재)을 받았다.
◇국가 R&D 시스템도 오겜 투자·제작·시장 환경 참고해야=황동혁 감독은 당초 오겜의 투자자를 찾지 못해 10여 년간 이 작품을 내지 못했다가 넷플릭스라는 투자자를 만났다. 제작비를 미리 받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였다. 완벽하게 자율성을 부여받아 작품에 몰입했다. 물론 넷플릭스가 지식재산(IP) 성과를 다 차지하면서 불공정 계약 논란도 제기되지만 당초 흥행 여부를 장담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R&D 시스템에서도 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한다. 현재 독창적 연구에 대해 실패를 용인하지 않은 결과 정부가 연간 30조 원을 출연 연구원, 대학, 기업 등에 지원하고도 성과는 부족한 ‘코리아 R&D 패러독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제 공동 R&D도 부족하고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둔 기술사업화도 가야 할 길이 멀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장 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충분히 지원하되 자율성을 보장해 연구에 몰입하도록 해주는 게 핵심”이라며 “정부가 출연연과 대학 등 연구 현장에 단기 성과를 요구하며 간섭과 규제를 많이 한다. 연구자가 몰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연구자들도 현실에 안주하던 습성에서 벗어나 기업가정신을 갖고 도전하고 모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석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책임연구원(연총 회장)은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시절의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해 중장기적인 기초·원천 연구가 부족하다”며 “R&D와 기술사업화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크게 미흡한 산학연의 유기적인 협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은 오겜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자들이 다 죽어 나가야 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적 영화제인 아카데미상(오스카상)에서 우리가 잇따라 수상한 것처럼 과학기술 생태계도 글로벌하게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상 4관왕(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을 한 데 이어 2020년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오겜의 게임에 담긴 과학 원리=오겜에서 서바이벌게임으로 사용된 전통 놀이에 담긴 과학 원리도 재조명되고 있다.
우선 오겜에서 참가자를 모집하기 위해 ‘딱지치기’를 할 때는 물체가 힘을 받으면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탄성의 힘을 이용해 상대의 딱지를 뒤집는다. 딱지를 두툼하게 만들수록 탄성력을 키울 수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움직이는 물체가 그 방향대로 계속 움직이려고 하는 ‘관성의 법칙’으로 인해 쉽지 않다.
‘달고나 게임’은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섞어 부풀어 오르게 한 후 특정한 모양의 틀에 붓고 꾹 눌러준 뒤 그 모양대로 떼어내는 것이다. 잘 깨져 혀로 표면을 살살 녹이면서 바늘을 이용해 ‘응력집중(물체 표면의 홈에 힘이 집중되는 현상)’을 줄여야 한다.
‘줄다리기’를 할 때 드러눕는 자세를 취하는 것은 발바닥에서 어깨까지 회전 반경이 커지며 힘이 지렛대처럼 증폭되는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홀짝 게임’의 경우 10~20번 정도 하면 승패가 금방 판가름 날 수 있지만 아주 많이 하게 되면 확률이 반반으로 수렴한다. 마치 어느 집에는 딸이나 아들이 많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성비가 비슷한 것과 같은 이치다. ‘유리 다리 건너기 게임’에서는 일반 유리를 가열·급랭하면 약간 휘어지는 강화유리가 된다는 점에서 빛에 비춰보면 미세하게 구분할 수 있다.
◇오겜과 주식 투자심리도 비슷=‘퍼펙트스톰(복합 위기)’으로 증시가 극심한 침체를 겪는 가운데 오겜 참여자들의 심리가 주식시장에 희생되는 개인투자자(개미)를 닮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선 개미는 증시에 뛰어들 때 오겜처럼 실상 게임의 규칙과 함정을 잘 모른다. 그러다가 첫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서 총살을 피해 살아남으면 능력을 과신하게 된다. 마치 스포츠나 도박에서 초보자가 첫 행운을 실력으로 오인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러다가 줄다리기에서 군중심리에 휘말려 팀을 구성했다가 목숨을 잃은 것처럼 투기 종목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김세중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벤처투자융합처장은 아이작 뉴턴(1642~1727)이 주식 투자로 거액을 날린 사례를 들며 “당시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도저히 측정할 수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며 오겜과 주식 투자를 비교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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