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도사리는 낡은 산업단지][단독]시한폭탄 같은 일터로 출근합니다
낡은 산소배관은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깎이고 있었다. 2020년 11월24일 오전 8시, 전남 광양 포스코 광양제철소 산소공장에 모여 작업 계획을 공유하던 노동자들에게 그 사실을 경고한 사람은 없었다.
이날 작업은 산소공장 내 16개 플랜트 중 1~5번 플랜트를 철거하는 일이었다. 1985년 설치돼 35년 된 1~5번 플랜트는 낡아서 철거가 필요했다. 철거 중 폭발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1~5플랜트로 이어지는 산소배관을 곳곳에서 차단해야 했다. 오전 10시40분쯤 작업자 12명은 각자 배정된 배관의 밸브를 잠갔다. 이어 산소 배출을 위해 배출밸브를 열고 질소를 투입했다. 질소 퍼지(가연성 가스 등을 빼내는 작업)를 통해 산소농도를 18%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
점심을 먹고 돌아왔는데도 산소농도는 67%를 가리켰다. 어디선가 산소가 새어 들어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작업자들은 공장을 돌며 공기 새는 소리를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오후 3시30분. 정해진 시간에 작업을 마치지 못할 게 분명해지자 작업자들은 다음을 기약하고 밸브들을 다시 열기로 했다. 작업자 A씨가 ‘O-004’ 밸브를 열겠다고 조종실에 무전을 친 시간은 오후 3시58분이었다.
폭발음이 들리고 건물이 흔들렸다. 불기둥이 치솟았다. 검은 연기가 꿈틀대며 하늘로 솟아올랐다. A씨와 협력업체 직원 2명은 현장에서 숨졌다. 찢어진 배관과 밸브 조각들이 곳곳으로 날아가 박혔다.
조사반은 산소배관 화재·폭발의 주요 원인들을 하나씩 따져봤다. 낡은 산소배관은 안쪽에서부터 조금씩 깎이고 있었다. 터진 배관 안쪽에는 눈으로도 볼 수 있는 금속입자들이 가득했다. 제철소 측이 터진 배관의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전후비교는 어려웠지만, 다른 배관을 보니 두께가 52% 줄어들 정도로 공장 전체가 심각하게 노후돼 있었다. 낡은 배관 안벽에서 떨어진 금속입자들이 고압·고속으로 흐르는 산소를 따라 배관을 계속 갉으며 더 많은 금속입자를 만들었다.
보통 산소배관은 이 같은 ‘입자충돌’ 사고를 막기 위해 유속을 제한한다. 사고가 난 배관의 경우 19.56㎧가 제한속도였다. 사고 당시 밸브는 최대 306.5㎧ 속도로 산소가 흐를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 결과 금속입자들은 엄청난 속도로 낡은 배관 안쪽을 돌아다니며 벽을 긁어댔다. 그중 한 알갱이가 벽에 부딪혀 불티를 냈다. 작은 불티는 고농도의 산소와 만나 배관을 폭발시키고 3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2㎜ 덕트가 3.8㎜까지···그 위에서 발판도 없이
노후화된 산업단지 시설들이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대부분 1960~1970년대에 조성된 산단은 심각한 노후에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는다. 시설 안전관리를 관리·감독할 법적 제도가 없어서다. 부실한 안전관리는 사고로 이어진다. 특히 화학물질 등 위험물을 많이 다루는 산단 특성상 작은 결함도 대형 화재·폭발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노후산단에서 사고는 어떤 원인으로, 어떤 방식으로 일어날까. 경향신문은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2017년~2022년 한국산업단지공단 소속 산단 64곳에서 발생한 재해 133건 중 중대재해 조사·수사가 완료된 64건의 재해조사의견서(재해조사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재해조사서란 근로감독관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조사단이 중대재해(사망자 1인 이상·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동시에 2인 이상·부상자 또는 직업성질병자가 동시에 10인 이상)의 사고 원인을 즉시 조사해 작성하는 자료다. 재해조사서 작성 대상이 되려면 중대재해여야 한다. 실제 산단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다.
64건의 중대재해로 2017년 1월부터 2022년 1월까지 11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망자는 74명, 부상자는 41명이었다. 재해 유형은 끼임이 18건으로 가장 많았고 추락 13건, 폭발·화재가 13건, 깔림이 8건, 질식이 4건 등 순이었다. 안전사고 재해가 43건, 화학물질 관련 재해가 18건, 전기·전압 관련 재해가 3건이었다.
재해조사서에 기록된 재해 원인을 분석(복수 원인)해보니 사고는 대부분 기본적인 안전 관련 대비를 하지 않아서 일어났다. 추락방지장치나 작업 전 가스농도 측정 등 ‘안전조치 미비’가 30건으로 가장 많았다. 불량·심각한 노후화나 개조 등 ‘부적절한 설비 사용’이 21건, 작업지휘자나 감시인 등 ‘안전인력 미배치’가 10건이었다. ‘작업계획 미수립 또는 미비’가 9건, ‘작업기간 단축을 위한 무리한 작업’이 8건, ‘점검 미실시’가 7건 등이었다.
이 같은 ‘안전불감증’이 노후 설비와 만나면 재해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2020년 12월9일 경북 포항 포스코 공장에서 일어난 추락사고가 전형적인 예다. 당시 작업자들은 외부 배기장치 덕트에 보강판을 덧대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하도급업체 기계제관팀장 B씨가 노후로 부식된 부분에 올라섰다가 해당 부분이 파손되면서 덕트 내부로 추락했다. B씨는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덕트 안에서 자력으로 탈출하려다가 7m 높이의 굴곡부에서 한 차례 더 떨어져 숨졌다.
조사 결과 이 배기장치는 1978년 처음 설치됐고 사고 부분은 1996년 증설됐다. 가끔 부분적으로 보강작업이 이뤄질 뿐 전반적인 보강·교체는 없었다. 그동안 사고 부위 덕트의 탄소강 두께는 최초 설치 당시 12㎜였던 것이 3.8㎜까지 마모돼 있었다. B씨는 언제든 파손될 수 있는 덕트 위에서 작업발판 없이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정비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2020년 2월27일 포항 철강산단의 한 공장에서는 사내 동력실 변성기(MOF)가 폭발하는 사고가 일어나 1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부상자 1명은 전신에 화상을 입었다. 동력실에서 이상한 소음과 냄새가 나 관련 장비들을 점검해보던 중 MOF 캐비닛을 여는 순간 불길이 폭발하며 이들을 덮쳤다. 이 MOF는 2002년 7월 설치된 이후 한 번도 교체·정비이력이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낡은 MOF 내부 전선의 절연이 약화돼 전류가 흘렀고, 변성기 안에 있던 절연유 온도가 오르면서 변성기는 가스가 가득 찬 ‘시한폭탄’이 됐다.
점검할때 ‘펑’ 교체하다 ‘쾅’···예고 없는 화학사고
화재·폭발 위험이 큰 화학물질 등 위험물을 다루는 곳도 안전조치가 미비했다. 경향신문이 분석한 64건의 중대재해 중 화학물질 관련 중대재해는 18건으로 끼임·추락 등 안전사고(42건)보다 적었지만, 인명피해는 52명으로 안전사고(49명)보다 더 많았다. 화학물질 관련 중대재해 1건당 평균 인명피해는 2.88명으로 대부분 재해가 복수의 사상자를 낳았다. 화재·폭발이 11건(61.1%)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질식 4건, 매몰 2건, 광역 누출 1건 순이었다.
재해는 숨어 있다가 유지보수를 위한 정비·점검이 이뤄질 때 고개를 들었다. 평소에 제대로 된 점검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누적된 위험이 ‘터지는’ 것이다. 화학물질 관련 중대재해 절반(9건)이 점검·정비·청소 작업 중 일어났다. 설치·철거·교체 중 일어난 재해가 4건으로 뒤를 이었다.
2018년 10월4일 전남 여수 산업단지 발전소에서는 제대로 된 점검을 한 번만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화재·폭발 사고가 일어나 5명의 사상자를 냈다. 석탄저장 사일로 상부 집진기(공기 중의 분진 등을 빨아들여 제거하는 장치) 백필터 교체작업 중 연기가 발생했다. 작업자들이 화재 진압 준비를 마치고 집진기 내부 점검용 맨홀을 연 순간 석탄분진이 쏟아져 내리며 불길이 분출해 작업자들을 덮쳤다. 맨홀을 연 하청업체 기계정비직 노동자는 사망했고 다른 4명은 부상 당했다.
이 집진기는 사고 17일 전부터 운전이 정지돼 있었다. 그동안 석탄분진은 1.4m 높이로 쌓여 있었다. 석탄분진은 자연발화가 가능한 대표적인 물질인데, 두껍게 쌓일수록 자연발화가 더 쉽게 일어난다. 그러나 집진기 내부 온도관리 확인·경보장치는 없거나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분진 축적량을 경고하는 장치도 예전부터 울리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집진기는 사고 2년 전인 2016년 5월 설치됐는데, ‘백필터 연 2회 점검 및 1회 교체’가 권고사항이지만 점검기록은 없었다. 한 번만 점검했어도 석탄분진이 위험한 수준으로 쌓여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위험물 옆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도록 내버려 두는 업체의 ‘안전불감증’도 심각하다. 3명의 목숨을 앗아간 2021년 12월13일 여수 산업단지 이일산업 폭발사고는 안전 관련 절차가 총체적으로 마비된 상황에서 일어난 인재(人災)였다. 작업자들은 인화성액체인 이소파라핀C가 들어 있는 저장탱크 상부에서 배관 설치 작업을 하다가 재해를 당했다. 소방당국과 고용노동부는 용접 과정에서 튄 불씨가 제대로 비워지지 않은 위험물에 들어가며 사고가 난 것으로 봤다.
조사 결과 안전관리 허점이 수두룩하게 드러났다. 이일산업은 당일 작업사항을 검토하지 않고 위험물 제거 등 조치도 하지 않은 채로 작업허가서를 발급했다. 원청인 이일산업이 직접 현장에서 위험요인을 확인하지 않고 협력업체와 통화만 하며 작업 관리를 해 온 정황도 드러났다. 협력업체 직원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든 사실상 방치한 것이다.
탱크에 보관하는 위험물을 바꾸고 그에 걸맞은 관리를 하지 않은 사실도 밝혀졌다. 탱크는 2011년 7월 설치 당시 위험물안전관리법상 ‘제4류제3석유류’로 완공검사를 받았지만 2017년 11월 인화 가능성이 더 큰 ‘제4류제1석유류’로 품목을 바꿨다. 이처럼 취급하는 화학물질이 변경되면 그에 따라 필요한 설비를 새로 설치하는 등 ‘변경관리’를 해야 하는데 이일산업은 이를 빠뜨렸다. 그 결과 제4류제1석유류 보관 시 꼭 붙여야 할 화염방지기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 뒤, 같은 산단에 있는 여천NCC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 4명이 숨졌다.
생명을 ‘빨리빨리’ ‘대충대충’···이젠 법으로 막아야
현장 노동자들과 전문가들은 산단 특유의 공기 압박이 사고 위험을 키운다고 지적한다. 특히 정비·점검이나 공사는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해야 하는데도 공장이 오래 멈추면 손해라는 이유로 공기 단축을 강요받는다고 한다. 전국현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여수지부 노동안전1국장은 “배관라인 등 설비가 노후화돼 있는데 공정기간은 너무 짧다. 길어야 40일이고 짧으면 보름쯤”이라며 “그 안에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까 무리하거나 부적절한 작업을 하게 되고, 주야 2교대나 철야근무 등 노동강도도 강해져 더 위험하다”고 했다. 현재순 일과건강·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사무국장은 “건설현장처럼 산단도 최저가낙찰제가 있어 낮은 공사·정비비용을 낸 업체가 선정된다. 그러면 안전조치에 해당하는 비용이 적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하청·임시직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산단 특성상 사고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문제다. 산업재해로서 제대로 조명받아야 재발방지 대책도 마련할 수 있지만,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업체와 협의해 공상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전 국장은 “힘없는 (하청)노동자들은 다음 취업에 불이익 당할까 봐 공상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가 되면 사고경위 조사 등 안전 관리가 이뤄지지만 공상으로 처리하면 사고는 은폐되고 똑같은 사고를 반복해서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노후산단을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법은 있지만 정작 그 물질을 다루는 탱크·배관 등 설비의 안전을 규제하는 법은 없다. 현 국장은 “화학물질관리법에 설비·시설 관련 검사 조항이 있지만 자체점검이라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면 노후 설비에 대한 제도가 있어야 한다”며 “산단 사고의 주요원인이 설비관리 미흡이다. 교량과 댐을 특별법으로 관리하듯이, 사고가 이렇게 자주 일어나는 산단도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12년 9월27일 경북 구미 불산누출사고 이후 한국의 화학물질 안전관리 제도는 물질 자체의 관리와 감시를 강화하는 쪽으로 변화해 왔다. 노동자와 지역사회의 알 권리는 나아졌지만, 정작 화학물질이 ‘유출’되고 ‘폭발’하는 설비에 관한 관리 방안은 부족했다.
화학물질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2013년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기존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전부개정해 영업자의 책임 강화와 위해관리계획 수립, 사고 대응체계 개편 등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화학물질에 관한 정보 공개가 거의 이뤄지지 않아 제대로 된 감시가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시민사회는 화학물질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전 관리에 지역사회가 참여하게 해야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봤다. 2014년 발족한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현 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가 중심이 돼 정보공개청구소송과 간담회·토론회, 캠페인을 벌였다. 그 결과 2016년 5월 개정 화관법에는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화학사고 대비·대응을 위한 계획 수립, 물질 정보제공, 관련 위원회 구성·운영 등 사항을 지자체 조례로 둘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시민사회는 이 조례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캠페인을 벌여 2019년 8월 기준 47개 지자체에서 조례가 제정됐다.
그러나 2022년 여수산단 여천NCC 폭발사고 등 중대재해가 이어지면서 산단 설비 자체에 대한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노후설비특별법’ 제정 운동을 벌였다. 2022년 6~7월 진행한 국회 국민동의청원은 동의 수를 충족하지 못했지만 국회를 중심으로 법안 발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구미 불산가스 누출 사고 10주년인 오는 27일 노후설비특별법을 발의한다고 예고했다. 산업단지 노후설비의 관리·감독 책임을 사업주뿐 아니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는 내용이다. 강 의원은 “대형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산업단지 종사자와 주변 주민들의 피해를 막고자 발의하는 법안”이라며 “산재사고와 화학사고를 줄일 수 있기를 바라며 하반기 국회에서 법이 통과될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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