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상왕' 이름 휴지통에 버려버린 '꼭두각시 대통령'의 반전

최경민 기자 2022. 9. 1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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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 2019.06.10 (C) AFP=뉴스1 (C) News1 정윤미 기자

독재자는 가라. 중앙아시아 최대국 카자흐스탄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카자흐스탄 정부는 13일(현지시간) 수도 이름을 '누르술탄(Nursultan)'에서 다시 '아스타나(Astana)'로 바꾸기로 했다.

앞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은 2019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퇴임하자 마자 그의 공을 기리기 위해 수도명을 '아스타나'에서 '누르술탄'으로 변경했던 바 있다. 이 수도명을 불과 3년만에 '누르술탄'에서 '아스타나'로 복귀시킨다는 것이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이름이기도 한 누르술탄은 '빛의 군주'라는 뜻이다. 아스타나는 '수도'라는 뜻이다. 어째서 누르술탄이 수도의 이름이 됐다가 다시 폐기될 수 있었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맥락을 살펴야 한다.

카자흐스탄을 30년 철권통치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C)AFP=News1

원래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남부 최대도시 알마티였다. 인구 100만명이 넘는 중앙아시아 최대도시이며, 이 지역의 경제·금융 허브 역할을 하는 도시다.

1990년 구(舊)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의 대통령 자리에 오른 게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었다. '독재'를 원하는 그에게 경제력을 갖춘 알마티라는 도시는 '정적'과 같았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는 수도를 원했다. 그리고 국토 동남부에 치우친 알마티의 지정학적 위치를 이유로 천도를 결정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1998년 카자흐스탄 북부 '첼리노그라드' 혹은 '아크몰라'라고 불리던 작은 도시에 '아스타나'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수도로 삼는다. 아스타나는 '나자르바예프의 도시'였다. 시내에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거대 석상을 세웠다. 카자흐스탄의 손꼽히는 명문대인 나자르바예프 대학교도 이곳에 만들었다. 공항 이름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국제공항'이다.

아스타나 중심부에는 105m 높이의 바이테렉 타워를 세웠다. 이 타워 전망대의 가장 높은 곳, 대통령궁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금빛 핸드 프린팅을 뒀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분신과도 같은 도시였다는 점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카자흐스탄 아스타나 바이테렉 타워의 전망대에 위치한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황금색 핸드 프린팅. 핸드 프린팅은 대통령궁을 향하고 있다./사진=최경민 기자

그렇게 '독재자'로 군림해온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019년 돌연 사임을 결정했다. 고령의 나이(당시 79세)였고, 카자흐스탄 경제 성장 정체에 따른 전국민적 불만을 잠재울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30여년을 철권통치한 '빛의 군주'의 영향력이 줄 것이라 믿는 이들은 없었다. 임시 대통령으로 세운 토카예프 대통령부터가 '나자르바예프 충성파'로 분류됐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딸인 다리가 상원의장이 실질적 후계자가 될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퇴임 직후 수도의 이름을 '누르술탄'으로 바꾼 것 역시 이같은 시각에 힘을 줬다.

무엇보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에서 사퇴했지만,국가안보회의(NSC) 의장직을 유지했다. 헌법에는 '엘바시(국부)'라는 명칭을 넣고, 이 권한 역시 자신이 가졌다. 사실상 상왕(上王)이 됐고, 토카예프 대통령은 꼭두각시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런데 2019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임시' 딱지를 뗀 토카예프 대통령은 반전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집권 초 '개혁'을 앞세웠고, 다리가 상원의장을 비롯해 카자흐스탄 정·재계 곳곳에 이름을 올려놨던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가족들이 줄줄이 실각하기 시작했다.

(알마티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7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연료 값 폭등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C) AFP=뉴스1

특히 올해 초 카자흐스탄에서 강력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며 '반(反) 나자르바예프 정서'가 전국적으로 강해진 게 결정적이었다.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고질적 불평등의 원인을 '나자르바예프의 독재'에서 찾았고, 민심을 등에 업은 토카예프 대통령의 발걸음은 더욱 거침없어졌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엘바시'에 의존해 아주 큰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 있다"라며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 직격탄을 날리기에 이르렀다. 궁지에 몰린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NSC 의장직을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넘기고 각종 특혜 역시 모두 반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카자흐스탄의 수도 이름이 '누르술탄'에서 '아스타나'로 원상복귀된 것이다. '빛의 군주 시대'가 끝났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 가능한 사건으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외교가 관계자는 "이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권력은 거의 없는 수준"이라며 "카자흐스탄 국민들은 '누르술탄' 보다 '아스타나'란 이름을 더 선호했다. '아스타나' 수도 이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격렬한 시위가 일어났을 정도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국민이 원하는 수도의 이름을 다시 가져온 셈"이라고 평가했다.

(소치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AFP=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런 분위기 속에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미래를 위한 개혁에 착수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쳤고, 압도적 지지를 받아 통과시켰다. 전·현직 대통령은 집권당 대표를 겸할 수 없게 했고, 전·현직 대통령의 친인척이 고위 공직을 맡을 수 없게 했다. 헌법재판소를 신설해 3권 분립을 강화했다. 대통령제를 '5년 중임제'에서 '7년 단임제'로 바꾸는 것 역시 추진 중이다.

전통적인 '친러시아' 외교 정책에서도 변화의 기류가 읽힌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국제적 경험이 많은 인사로, 미국이나 대한민국 등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우호적인 인물이라는 평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런 기조가 더욱 심화됐다. 탈(脫)러시아 기조마저 읽힌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지난 4월 "카자흐스탄은 우크라이나의 영토보전을 존중한다"며 사실상 러시아의 침공에 반대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미승인국인 도네츠크공화국과 루한스크공화국을 두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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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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