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美 보호무역 장벽칠 때 복마전 얼룩진 韓 태양광
탄소중립이 선진국의 보호무역주의와 패권 경쟁을 ‘친환경’으로 치장하는 도구가 된 듯한 모습이다. 이 화장술(化粧術)의 정점엔 미국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IRA)’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IRA는 미국이 자국 내 친환경 에너지 공급망을 확대하기 위해 7400억달러(약 970조원)의 재원을 기후변화 대응 등에 쓰는 게 골자다. 설명은 그럴싸하지만, 실상은 녹색 포장지로 감싼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보호무역주의 강화 정책이다.
미국이 친 보호무역 장벽에 한국은 태양광 등 일부 산업의 수혜가 예상되지만, 자동차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은 중국을 제외한 주요 자동차 생산국 중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단 하나의 친환경차 모델도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유일한 국가다. 유럽은 6개, 일본은 2대의 친환경차 모델이 보조금 대상에 포함됐다. IRA가 그대로 시행되면 현대차·기아는 1대당 1000만원 상당의 보조금(세액공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배터리 산업도 위태하다. IRA에는 내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광물의 일정 비율을 미국 또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국가에서 조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 등 국내 기업은 배터리 소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맹국에 뒤통수 맞았다”는 반응이 나오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공공연히 밝힌 주요 공약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 핵심이었다. 이 공약은 ‘더 나은 재건법’으로 발의됐고, 이를 수정·보완한 것이 IRA다.
2년 가까이 대응할 시간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강 건너 불보듯했다. 법안 초안 공개부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기까지 20일밖에 안 걸린 ‘초고속 법안’이었음을 감안해도 정부의 대응은 외교 패착에 가깝다.
이미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의 탄소중립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보호무역주의로 흐르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몇년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국제 통상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천사의 탈을 쓴 악마’라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나 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국경세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이 제도 도입 계획을 발표하자 주변 국가들은 일제히 탄소 사다리를 걷어차는 신보호무역주의라고 비판했다.
한국에서도 탄소중립이 보호무역주의로 흐르고 있음을 경고하는 보고서들이 쏟아졌다. 국내 대표적 해외경제분석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도 문재인 정부 시절 보고서를 내고 “탄소국경세는 자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와 경제회복을 위한 재원 마련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보호무역주의, 일방주의적 정책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경고에도 전 정부는 자국 산업 보호는 뒷전이었고, 탄소중립 목표치를 세운 뒤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몰아붙였다. 보호무역주의와 신재생에너지 패권 다툼이라는 선진국의 치열한 전쟁터에 알몸으로 뛰어들었다. 원자력발전 없이 탄소중립은 불가능하단 전문가의 경고에 귀 닫고, 과도한 탄소중립 목표는 국내 산업을 고사시킨다는 경영계의 호소는 외면했다.
이런 와중에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태양광 사업이 복마전으로 얼룩졌다는 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이 작년 9월부터 태양광 등 전력산업기반기금 지원 사업 운영에 대한 점검을 벌인 결과 무려 2267건, 2616억원의 위법 부당 사례가 적발됐다. 전국 226개 지자체 가운데 5%만 점검한 일종의 표본조사에서 대규모 부당 사례가 발견된 것이다.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눈먼 돈으로 전락했다.
IRA가 주는 교훈은 ‘영원한 동맹은 없다’는 단순한 진리가 아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맞게 국익에 따라 사안별로 판단하고 각자 지혜롭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 난관은 결국 정부와 기업이 함께 풀어야 한다. 그전에 한국은 왜 맨몸으로 IRA와 같은 거대한 파고를 맞아야 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태양광 복마전이 대한민국의 미래보다 ‘우리 진영’ 사람들 챙기기에 급급했던 이유는 아니었는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
[산업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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