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내려도, 금리 올려도 안잡히는 美물가… “문제는 집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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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비가 전체 물가의 40% 차지
8월 주거비 40년만에 최고폭 뛰어
뉴욕 원룸 평균 월세 546만원
미국과 세계 경제에 연쇄 충격을 안기고 있는 미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은 떨어지지 않는 주거비 상승세, 그리고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따른 인건비 급등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13일 발표된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8.3% 상승해 시장 전망치(8.1%)를 웃돌았다. 변동성이 큰 유가·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달 전년 동월 대비 6.3%를 기록해 전월(5.9%)보다 높아졌다. 근원 소비자물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지표로 삼는 통계다.
올 상반기 바이든 행정부는 “현 인플레는 푸틴 인플레”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가 상승을 주범으로 지목했지만, 이번엔 휘발유 가격이 월간 10.6%나 떨어졌는데도 핵심 물가 상승률은 요지부동이었다. 지난해 인플레 초기에는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병목이 원인으로 지목됐는데, 이것이 대부분 해소된 지금도 물가 안정에는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물가를 끌어올린 건 전체 CPI의 40%를 차지하는 주거비였다. 전년 동월 대비 6.2%, 전월비로는 0.7% 올랐다. 이 같은 상승률은 1982년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방 1개짜리 주택의 월세 임대료 중앙값은 미국 내 1위인 뉴욕시에서 현재 3930달러(약 546만원)로 8월 기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39.9%나 올랐다. 에너지 하락분을 상쇄하는 수준의 상승 폭이다. 주거비가 오른 것은 팬데믹 이후 주택 수요가 급증한 반면 공급이 부족한 데다, 신규 건축 자재비부터 공사 인건비 등이 모두 올랐기 때문이다. 연준 금리 인상으로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오른 탓도 있다.
월세는 한번 오르면 웬만해선 잘 떨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어서 향후 인플레를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임대료 급등은 시차를 두고 서서히 소비자물가에 지속적으로 반영된다. 특히 가계에서 가장 큰 고정지출을 차지하는 주거 비용이 오르면 전반적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는데, 미국은 민간 소비가 경제의 70%를 차지해 향후 경제 전반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미국 가계의 전체 지출 중에서 주거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33.8%에 달했다.
또 하나의 근원적인 인플레 원인은 노동력 부족에 따른 인건비 상승이다. 지난달 제롬 파월 연준의장이 긴축 지속 의사를 밝힌 잭슨홀 심포지엄을 비롯, 최근 연준 고위 인사들은 인플레를 설명할 때 “노동 시장이 너무 빡빡하다(tight)”며 “침체를 감수하고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더 과감한 금리 인상으로 경기를 위축시켜 실업을 유도, 사람들이 싼 값에도 일하러 나오게 만들어 임금과 물가 상승의 연쇄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강경 긴축파가 힘을 얻고 있다.
현재 미 실업률은 3.7%의 완전 고용 수준인데,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 지난해 미 근로자 4700만명이 실직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취업하지 않아 시장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현재 미 구직자 한 명당 일자리는 2개꼴이다.
그 결과 대기업부터 동네 식당, 경찰서까지 구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미 전역에서 학교마다 교사부터 스쿨버스 기사까지 부족해 학사 운영이 파행하고 있다. 연방정부가 노후 교량과 도로 재건 예산을 풀어도 공사장 인부가 없어 작업을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뉴욕에선 1년 전 시급 15~20달러 수준이던 베이비시터 비용이 35~50달러로 뛰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선 패스트푸드점 직원 시급을 현 15달러에서 내년 초 22달러로 50% 올릴 예정이다. 미 기업 92%가 올해 임금을 인상했으며, 50개 주(州) 중 27곳과 워싱턴 DC가 최저 시급을 10% 이상 올렸다.
임금 인상은 생산성 향상을 동반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월스트리트저널은 “팬데믹 이후 생산성이 하락하는데 임금만 가파르게 오르면서, 기업들이 이윤 저하를 감내하거나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했다.
노동력 부족을 낳은 직접적인 원인은 ‘대사직(大辭職·Great Resignation)’ 현상이다. 미국에선 코로나 팬데믹으로 고령층 위주로 104만명이 사망한 데다, 코로나 장기 후유증과 감염 우려가 큰 중장년층의 은퇴 행렬이 이어졌다. 팬데믹 와중에 뉴욕 증시의 활황으로 퇴직연금(401k)이 크게 증가한 50~60대 노동 인구가 대거 조기 은퇴를 택했다.
문제는 ‘대사직’ 인파의 4명 중 1명은 은퇴 시점이 10년 이상 남은 젊은 층이다. 미국은 2020년부터 코로나 실업 급여와 경기 부양금을 동시에 풀었다. 바이든 정부는 고용을 유지하는 기업이 아니라 해고된 노동자를 직접 지원했다. 가처분 소득이 증가하자 노동 욕구가 급감했다.
인력난은 또 다른 인력난을 부채질한다. 대표적 집단이 워킹맘들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일자리를 잃어버린 젊은 노동자 3명 중 1명은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자녀를 남에게 맡기는 비용이 너무 올라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20~40대 여성이다.
트럼프 정부가 2017년부터 불법 이민을 막으려 이민을 전반적으로 규제하면서 외국의 두뇌와 일손 확보를 위한 합법적 이민까지 급감한 것도 노동력 부족을 낳은 요인이다. JP모건은 지난 5년 새 신규 이민 근로자 풀이 320만명 급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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