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비아 페라타
일행은 모두 눈을 의심했다. ‘돌로미테 대자연 산책’ 일정표에는 ‘비아 페라타(Via Ferrata)’가 세 번이나 예정되어 있었다. 아무도 이 다섯 글자에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행을 준비한 원로 산악인 임덕용과 백승기는 빼도 박도 못하도록 일정표에 이 ‘어른의 모험’을 박아 놓았다.
‘철로 만든 길’을 뜻하는 비아 페라타는 클라이밍(암벽 등반)과 다르게 전문 산악인이 아닌 일반인이 가파른 암벽에 오를 수 있도록 해주는 등산로 혹은 등반기술을 말한다. 가파른 암벽에 굵은 와이어를 고정시켜 놓고 Y자형 고정줄의 카라비너(등반용 고리) 두 개를 번갈아 끼워가면서 오르게 한다.
비아 페라타의 경험은 첫 키스의 기억처럼 날카로웠다. 안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네스(등반용 고정벨트)가 단단히 채워졌다는 점이었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발을 받치는 발판은 따로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직 내 발로 치고 올라야 오를 수 있었다. 당황한 일행의 발이 걸리지 않는 바닥을 찾아 허공에서 바둥거렸다.
두 원로 산악인 덕분에 일행은 여행에서 뜻하지 않은 ‘장밋빛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바위와의 진한 스킨십을 경험한 사람들은 산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 ‘계산된 모험’이 끝나자 그들은 왜 일정에 비아 페라타를 세 번이나 넣어 두었는지 설명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의 격전지였던 돌로미테에서 전문적인 산악 훈련을 받지 않은 군인들이 암벽에 포대나 저격용 굴을 팔 수 있게 설치한 장치가 바로 비아 페라타였다. 수직의 비아 페라타를 오른 일행은 꼭대기에 설치된 십자가에 참배하며 그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비아 페라타는 이제 등반가들이 등반의 즐거움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보게 해주기 위해서 데려가는 곳이 되었다.
이처럼 돌로미테는 수평이 아니라 수직이고 비아 페라타는 이를 경험하게 해준다. 그런데 한국의 트레커들은 오직 수평으로 가로지를 뿐이다. 돌로미테를 찾는 대부분의 한국 트레커들은 알타비아(하늘길) 1코스를 종주하는 코스를 선택한다. 한국의 여행사들이 히말라야 트레킹처럼 돌로미테 트레킹도 종주 방식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와 돌로미테는 조건이 다르다. 히말라야는 워낙 고산이고 오지라 탈출로가 없어 단일코스를 종주 방식으로 다녀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돌로미테는 다르다. 수많은 산책로가 도로와 곤돌라와 케이블카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굳이 한 길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알타비아는 총 12코스가 있는데 산군별로 권장 등산로를 설정한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이나 제주올레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종주하는 길이 아니다.
성취 지향의 한국 트레커들은 알타비아1 종주를 돌로미테의 유일한 여행법처럼 알고 있다. 수직의 돌로미테를 온몸으로 경험할 수 있는 비아 페라타도 그냥 지나칠 뿐이다. 비유하자면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샐러드와 수프와 파스타와 디저트를 생략하고 그냥 메인 요리만 먹는 것이라 할 수 있다. 30년 넘게 돌로미테 지역에서 전문 알파인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는 임덕용 선생은 이를 ‘코끼리를 보러 와서 코만 만지고 가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고재열 여행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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