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형의 느낌의 세계] 전은 '셀프'입니다
성균관서 "전 부칠 필요 없다" 해도 전 부쳐 먹어야 하는 날인가
다음 추석엔 각자 원하는 만큼 '셀프'로 부쳐 먹으면 어떨까
추석이란 무엇인가. 추석 전후로 나는 궁금해진다. 주위에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와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 창에 빼곡한 추석을 원망하는 글들을 보면서. 추석으로 인한 가정불화와 사연도 다양해서 몰입해서 읽게 된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맞아. 저 러시아의 톨스토이 선생께서 그러셨지.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게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르게 불행하다고.
추석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음력 팔월 보름날로,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내는 날. ‘교통지옥을 뚫고 가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하므로 가정불화가 증폭되는 날’ 정도가 현실적 의미에 가까울 듯하다. 누군들 먼 거리를 달려가서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 듣기 싫은 말을 듣고 싶을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고향을 ‘버리고’ 자발적 실향민이 되는 것이다.
우리라고 왜 그리움이 없겠는가. 왜 사랑이 없겠는가. 표현력만 된다면 백석이 그랬던 것처럼 ‘여우난골족’을 쓸 수도 있었다. 명절날 나는 엄마 아빠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가면 친척들이 그득히 앉아 있는 방안에서는 새 옷 냄새와 떡과 나물 냄새가 났다는 백석처럼. 지금과 백 년 전의 추석은 다르겠으나 우리가 있게 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날이라는 의미는 우리도 알고 있다. 그리움과 사랑을 말살시키는 적대적 환경이 문제지. 하루 종일 전을 굽고, 나물을 무치고, 설거지를 한다. 듣기 싫은 이야기를 듣지만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이러니 그리움과 사랑 대신 미움과 화가 자라난다.
전이란 무엇인가. 이번 추석에 나는 이 문제에 골몰했다. 성균관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부터였다. 추석을 앞두고 성균관 의례정립위원회는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송편과 나물, 적과 김치, 과일과 술, 이렇게 6가지 정도가 기본이고 원한다면 육류와 생선과 떡을 놓을 수 있다고. 전이 필요 없다는 발표였다. 심지어 사계 김장생이라는 분이 ‘사계전서’에 남겼다며, 기름진 음식으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예가 아니라는 말이 결정타였다.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열렬한 환호도 있었고, 그걸 왜 이제야 발표하냐는 원망도 있었고, ‘제사에는 전 금지’라는 법을 만들자는 의견도 있었다.
전이란 무엇인가. 추석 전날 창문을 열었다가 한숨을 쉬며 나는 자문했다. 역한 기름 냄새가 집안으로 훅 끼쳤다. 아파트 전체가 전을 굽고 있었다. 그렇다. 그건 정말이지 아파트가 전을 굽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 이 세련과는 거리가 먼 동네 주민들이시여. 아무리 성균관이 ‘제사에 전은 도리가 아님’이라고 대국민 기자회견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문해력 문제일까? 아니다. 구울 사람은 구워야지. 여기는 민주주의 국가고,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에게는 저마다 의사결정권이 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다들 이렇게 전을 좋아하셨나? 그렇지, 전이 맛있기는 하지.
전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 나는 여기에 의미를 하나 추가하고 싶다. ‘한때 제사상의 필수 음식이었으나 더 이상 제사상에서 볼 수 없게 되어버린 과거의 제사 음식’. 나는 전을 참 좋아하지만 하고 싶은 건 하고 싶은 거다.
전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로 시대착오적이다. 전을 부치는 사람은 기름을 흠뻑 머금을 수밖에 없어 전이 먹고 싶지 않다. 폐에도 좋지 않다. 화가 쌓이니 마음에도 좋지 않다. 기름에 구웠으므로 칼로리 폭탄인 이 음식은 작금의 자기 관리 시대에도 맞지 않다. 쌀밥을 배부르게 먹는 게 행복의 척도였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바야흐로 저탄수, 저칼로리의 시대인 것이다. 탄수화물과 칼로리를 줄여야 당이 떨어지고, 혈압도 떨어지고, 건강에 좋다는 건 상식이 되었다.
그래도 전이 먹고 싶을 수 있다. 제사상에는 안 올려도 전을 먹어야 잔칫집 분위기가 나고, 명절 같고 그러지 않느냐고 하시는 분이 계실 수 있다. 한때 서울에 셀프 튀김집이 있었다. 셀프로 구워 드시면 어떨까 싶다. 추석에 모여 각자가 원하는 재료를 각자가 원하는 굽기로 굽는다. 캠핑 갈 때 가져가는 버너와 프라이팬을 지참해서. ‘전은 셀프입니다’를 써 붙여도 상큼하겠다.
술과 사랑은 취해야 제맛, 전은 갓 구운 게 제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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