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부족 美, 여행객 폭증에 결항 속출.. 승객들 "취소 몰랐다" 분통[글로벌 현장을 가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022. 9.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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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버지니아주 덜레스 공항에서 탑승 수속을 하기 위해 여행객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미국 전역에선 5일까지 노동절 연휴를 맞아 항공편 346건이 취소되는 등 항공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2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주 덜레스 공항 곳곳은 길게 늘어선 여행객들로 혼잡했다. 노동절(9월 5일) 연휴를 앞두고 휴양지나 가족 친지를 찾기 위해 비행기를 타려는 이들이 공항에 몰렸다. 파나마로 향하는 항공편 발권 창구 앞에는 탑승 수속을 기다리는 여행객 줄이 공항 입구까지 100m가량 늘어섰다. 기다리다 지쳐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
한편에선 실랑이가 벌어졌다. 여행객이 몰려 일부 운항이 취소된 걸 모르고 온 승객들이 항공사 직원들에게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유럽을 방문하려던 개릿 씨는 “공항으로 오는 도중에 항공편이 취소됐다는 이메일이 왔지만 확인하지 못했다”며 “원래 구입한 항공편이 취소돼 이틀 전에 새로운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이마저도 취소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항공기 추적 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노동절 연휴 2∼5일 미국에서 취소된 항공편은 모두 346편, 지연은 8228건에 이른다.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누그러져 여행 제한이 완화되면서 여행객이 폭증해 생긴 항공 대란(大亂)이 수개월째다.

미 정부와 정치권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무더기 결항 사태에 소비자 피해도 크게 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때 인력을 감축한 일부 항공사는 항공편 취소에도 환불을 늦추는 등 ‘꼼수 보상’에 나서면서 여행객 불만은 커졌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항공업계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인력난이 길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저가항공 10대 중 4대는 지연-취소

미국 워싱턴 덜레스 공항 전광판에 떠 있는 출발 항공편 일정. 운항이 취소된 항공편들이 주황색으로 표시돼 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미 CNBC방송에 따르면 올 1월 취소된 항공편은 전체의 5.6%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2.8%의 두 배로 급증했다. 항공 대란은 여름 휴가철에도 이어져 7월까지 미국 내 항공편 12만8934편이 취소돼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1% 증가했다.

항공기 지연 운항도 급증했다. 미 교통부에 따르면 6월까지 항공기 정시 도착률은 75.9%로 지난해 같은 기간 84.3%보다 9%포인트 정도 하락했다. 일부 저가항공사의 정시 도착률은 60%대에 그쳤다. 10대 중 4대가 취소되거나 당초 비행 일정보다 지연됐다는 의미다.

항공 대란 장기화로 여행객 불만도 많이 늘었다. 미 교통부에 따르면 6월까지 접수된 미 항공사에 대한 여행객 불만은 15만95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6827건보다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 환불 불만 접수 건수는 3456건으로 전체 불만 건수의 21.7%에 달했다.

독립기념일(7월 4일) 연휴에 맞춰 뉴욕에서 버지니아로 가는 항공편을 예약했다가 취소된 J D 존슨 씨는 CNBC에 “두 달 가까이 항공사와 전화, e메일을 주고받은 끝에야 352달러를 환불받을 수 있었다”며 “수십억 달러를 버는 기업에 두 달가량 이자도 받지 않고 대출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비행편이 취소되면 7일 이내 환불을 해주도록 한 항공사 규정이 유명무실해진 셈이다.

환불을 받지 못한 여행객도 적지 않다. 7월 세인트루이스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했다가 취소된 애슐리 야닉 씨는 항공사 환불 약속을 받고 1700달러짜리 항공편을 급히 구매했지만 아직 300달러밖에 돌려받지 못했다. 야닉 씨는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당초 예약한 비행기가 취소되면서 항공사 안내를 받아 현장에서 급히 원래 금액보다 3배나 비싼 항공편을 구입했다”며 “항공사는 차액을 보상해주겠다고 했지만 지난달에야 300달러 가치의 크레디트를 줬을 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인력난에 2024년까지 항공 대란”

미 교통부는 항공편 지연, 취소 배경으로 항공사 인력 부족을 꼽고 있다. 코로나19로 여행 수요가 감소하자 인력 감축에 나섰던 항공사들이 올 들어 여행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데도 신규 인력 채용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조종사 정비사 같은 핵심 인력 부족과 이로 인한 항공기 관리 지연으로 항공편을 제때 편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부터 대규모 감원을 한 항공사들은 인력 채용을 다시 확대하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은 지난달 수백 명 규모의 신규 채용 계획을 발표했고 사우스웨스트항공 역시 최근 인력 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항공기 취소와 지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항공사들이 매년 새 직원 1만∼1만2000명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급속히 늘어나는 여행 수요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 인력을 단기간에 충원하기 어려운 데다 통상 13주인 교육 기간을 감안하면 항공 대란이 빠른 시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헨리 하트벨트 애트모스피어리서치그룹 회장은 비즈니스인사이더에 “항공사는 2024년 말까지는 인력난이 정상화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간호사도 인력난

문제는 항공업계 외에도 의료와 교육 운송업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구조적인 인력난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 교육감협회는 지난달 8∼24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미 전역 각급 학교 3분의 2 이상이 교사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고 12일 밝혔다. 이 때문에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을 줄이거나 학부모 일일교사를 동원할 정도다.

필라델피아 델라웨어카운티 각급 학교는 개학한 지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교사 30여 명을 새로 채용하지 못한 상황이다. 맥 게리 델라웨어카운티 교육감은 지역 매체에 “교사 채용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며 “채용하려던 교사를 다음 날 연봉 4000달러 이상을 추가로 제안한 다른 카운티에 빼앗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플로리다주 일부 지역에서는 교사 부족 사태가 이어지자 교사 자격증 취득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퇴직 군인들을 임시 교사로 채용하고 나섰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 인력 부족도 미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 병원협회는 올 3월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올해 말까지 미 전역 의료기관에서 부족한 간호사 인력이 11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때문에 플로리다를 비롯한 일부 지역 병원들은 상대적으로 영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필리핀 같은 동남아시아 출신 간호사를 채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인력난 악화에 대해 전문가들은 인구 고령화로 인한 노동인구 감소 현상이 심화되는 데 더해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발적으로 퇴직을 선택하는 이른바 대사직(大辭職·Great Resignation) 현상이 겹친 것을 꼽고 있다. 미 노동시장을 떠받치던 베이비붐 세대(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부터 1964년까지 태어난 사람들)가 매일 1만 명씩 퇴직 연령인 65세를 맞으면서 인력 부족 현상이 구조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또 1995년 이후 태어난 이른바 Z세대가 숙련되기 위해서는 장기 교육이 필요하지만 임금 수준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고 근로시간이 긴 직업을 꺼리는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주(州)상공회의소연합(NASC)은 7일 보고서에서 “인구구조 변화와 숙련도 미스매치(불일치), 자동화, 이민 같은 문제로 현재 미국 기업 고용 상황은 매우 벅찬 상황”이라며 “노동력 문제가 경제 성장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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