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줌인]힘주지 않는 영화의 힘 '육사오'
손효주 문화부 기자 2022. 9. 15. 03:01
올해 한국 영화계에서 최대 이변의 주인공을 꼽으라면 단연 ‘육사오’일 것이다. 제작비 50억 원의 이 저예산 코미디 영화는 개봉 전까지만 해도 관심 밖의 비주류였다. 여름 극장가의 관심은 한국 영화 ‘빅4’로 불리는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 ‘외계+인’ ‘헌트’에 쏠려 있었다. 호평도 혹평도 ‘빅4’에 집중됐다. ‘빅4’ 대전의 격랑 속에 작디작은 ‘육사오’는 본의 아니게 ‘은밀하게’ 개봉했다. 이 영화가 갈 길은 분명해 보였다. ‘요절복통’ ‘웃음폭탄’ 등의 단어로 관객들을 유혹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개봉과 동시에 사라지는, 수많은 코미디 영화가 걸었던 그 길 말이다. 감독 지인들 정도만 “영화 정말 재밌던데?”라며 어색한 표정으로 위로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기 전까진 그랬다.
그런 ‘육사오’가 일을 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는 12일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육사오’를 포함해 ‘범죄도시2’ ‘마녀2’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 ‘헌트’ ‘공조2’가 전부. ‘육사오’는 이 중 유일하게 제작비가 100억 원이 안 되는 영화다.
‘육사오’가 대작 범람 국면에서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만 파고든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 꼽힌다. 그간 코미디 영화가 숱하게 나왔지만 코미디 한길에만 집중한 영화는 드물었다. 슬로 모션을 더한 신파를 남발하며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일부 영화들은 웃으려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당황케 했다. ‘육사오’처럼 남북 분단이 소재라면 말미에 통일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등 거창하게 보이려는 유혹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육사오’는 그런 면에서 영리하다. 관객들이 코미디 영화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는다.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의 1등 당첨 로또 복권이 바람에 날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손에 들어간다는 코믹한 설정을 위해 남북 분단을 활용할 뿐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다.
남북 군인들이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1등 당첨금 분배 협상을 진행한다는 설정은 일부 관객들에게 또 뻔한 방향으로 빠지겠다는 우려를 하게 했을 것이다. 남북 군인들이 자주 만나며 돈독해지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눈물의 이별 장면이 나올 것이란 우려 말이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애통해하며 오랜 대결을 종식시키고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자는 식의, 이른바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마저 생기게 하기 딱 좋은 설정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코미디 외에 다른 길을 엿보지도, 섣불리 대의를 논하지도 않는다. 남북 군인들은 비교적 쿨하게 헤어진다. 분단의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분위기가 진중해질라치면 영화 속 로또처럼 가볍게 날아가며 코미디의 정체성을 되새긴다. 신파로 흐를 조짐이 보일 땐 담담함을 앞세우는 식으로 원천 봉쇄한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조금도 황당하지 않다는 듯 연기하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움이 더해지면서 관객들은 끝까지 웃다가 영화관을 나설 수 있다.
‘육사오’의 흥행은 영화관과 작은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팬데믹 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고 영화 관람료가 크게 오르면서 큰 스크린에서 볼 가치가 있는 장면들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나 액션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을 찾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저예산 코미디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할 이유가 없는 대표적인 장르로 여겨졌다.
반면 ‘육사오’를 본 이들은 ‘육사오’를 영화관에서 봐야 가치가 더 높아지는 영화로 평가한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함께 어우러져 웃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나는 별로 안 웃겼는데 다른 사람들이 크게 웃어서 같이 웃었다. 관객이 최대한 많은 영화관으로 가시라”는 관람 팁을 내놓기도 한다. 팬데믹 시대 고립을 겪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던 예년의 영화관 풍경을 그리워했고, 이런 갈증이 높아진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육사오’였다는 이야기다.
쓸데없는 힘을 빼며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보여주는 데 충실했던 ‘육사오’는 흥행에 성공했다. 힘주지 않은 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진중한 이야기를 다룬 ‘빅4’ 영화나 OTT가 쏟아내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콘텐츠로 피로감이 누적된 시기에 나온 이 영화는 원초적이고 가벼운 웃음으로 관객들의 복잡하고 심각해진 머리를 비우는 데도 일조했다. 관객들은 어쩌면 영화관에서나마 현실을 망각하게 해주는 소임에 충실한 영화라면 그 스케일을 넘어 기꺼이 지갑을 여는지도 모른다.
그런 ‘육사오’가 일을 냈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영화는 12일 누적 관객 수 160만 명을 기록하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육사오’를 포함해 ‘범죄도시2’ ‘마녀2’ ‘헤어질 결심’ ‘한산: 용의 출현’ ‘헌트’ ‘공조2’가 전부. ‘육사오’는 이 중 유일하게 제작비가 100억 원이 안 되는 영화다.
‘육사오’가 대작 범람 국면에서 명확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아이러니하게도 코미디만 파고든 코미디 영화라는 점이 꼽힌다. 그간 코미디 영화가 숱하게 나왔지만 코미디 한길에만 집중한 영화는 드물었다. 슬로 모션을 더한 신파를 남발하며 웃음으로 시작해 눈물로 끝나는 일부 영화들은 웃으려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을 당황케 했다. ‘육사오’처럼 남북 분단이 소재라면 말미에 통일의 당위성을 설파하는 등 거창하게 보이려는 유혹에 빠져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육사오’는 그런 면에서 영리하다. 관객들이 코미디 영화에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는다. 말년 병장 천우(고경표)의 1등 당첨 로또 복권이 바람에 날려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손에 들어간다는 코믹한 설정을 위해 남북 분단을 활용할 뿐 어떠한 정치적 메시지도 던지지 않는다.
남북 군인들이 비무장지대(DMZ) 내에서 1등 당첨금 분배 협상을 진행한다는 설정은 일부 관객들에게 또 뻔한 방향으로 빠지겠다는 우려를 하게 했을 것이다. 남북 군인들이 자주 만나며 돈독해지는 장면이 나오는 만큼 눈물의 이별 장면이 나올 것이란 우려 말이다. 분단된 조국의 현실을 애통해하며 오랜 대결을 종식시키고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겨 나가자는 식의, 이른바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던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마저 생기게 하기 딱 좋은 설정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코미디 외에 다른 길을 엿보지도, 섣불리 대의를 논하지도 않는다. 남북 군인들은 비교적 쿨하게 헤어진다. 분단의 현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영화는 분위기가 진중해질라치면 영화 속 로또처럼 가볍게 날아가며 코미디의 정체성을 되새긴다. 신파로 흐를 조짐이 보일 땐 담담함을 앞세우는 식으로 원천 봉쇄한다. 황당하기 그지없는 상황임에도 조금도 황당하지 않다는 듯 연기하는 배우들의 능청스러움이 더해지면서 관객들은 끝까지 웃다가 영화관을 나설 수 있다.
‘육사오’의 흥행은 영화관과 작은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데서도 의미가 있다. 팬데믹 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확산되고 영화 관람료가 크게 오르면서 큰 스크린에서 볼 가치가 있는 장면들로 무장한 블록버스터나 액션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을 찾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저예산 코미디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 할 이유가 없는 대표적인 장르로 여겨졌다.
반면 ‘육사오’를 본 이들은 ‘육사오’를 영화관에서 봐야 가치가 더 높아지는 영화로 평가한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함께 어우러져 웃는 분위기가 좋았다고 입을 모은다. “나는 별로 안 웃겼는데 다른 사람들이 크게 웃어서 같이 웃었다. 관객이 최대한 많은 영화관으로 가시라”는 관람 팁을 내놓기도 한다. 팬데믹 시대 고립을 겪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웃던 예년의 영화관 풍경을 그리워했고, 이런 갈증이 높아진 시기에 개봉한 영화가 ‘육사오’였다는 이야기다.
쓸데없는 힘을 빼며 코미디 영화의 미덕을 보여주는 데 충실했던 ‘육사오’는 흥행에 성공했다. 힘주지 않은 영화의 힘을 보여줬다. 진중한 이야기를 다룬 ‘빅4’ 영화나 OTT가 쏟아내는 디스토피아를 다룬 콘텐츠로 피로감이 누적된 시기에 나온 이 영화는 원초적이고 가벼운 웃음으로 관객들의 복잡하고 심각해진 머리를 비우는 데도 일조했다. 관객들은 어쩌면 영화관에서나마 현실을 망각하게 해주는 소임에 충실한 영화라면 그 스케일을 넘어 기꺼이 지갑을 여는지도 모른다.
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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