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준의 옆집물리학] 절대성을 반영하는 시공간의 상대성
앞에서 본 내 모습은 뒤에서 본 모습과 다르다. 나는 나라서 변하지 않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내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누가 어디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 상대(相對)라면, 절대(絶對)는 보이는 겉모습은 달라도 늘 변함없이 유지되는 동일성이다.
물리학의 상대성이론은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시공간의 상대성을 알려준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찰 결과의 상대성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절대성이다. 움직이는 시계가 더 느리게 간다는 시간의 상대성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누구에게나 빛의 속도가 같다는 더 근본적인 절대성의 결과다. 다르게 보이는 이유는 그 근간에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햇빛은 막대 그림자를 땅에 드리운다. 우리는 막대의 길이가 정해져 있지만 해의 방향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질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면 위에서 살아가는 2차원 존재를 상상해 평면인(平面人)이라 부르자. ‘위’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면인은 우리 3차원 공간인(空間人)과 달리 막대의 그림자를 실체로 여긴다. 동굴 속에서 살아가면서 벽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로 믿는 플라톤 우화 속 존재와 같다.
평면인에게 막대의 길이는 불변이 아니다. 막대 그림자는 3차원 막대의 절대적 속성을 일부 반영한 가변적인 상대적 속성일 뿐인데, 평면인은 막대의 진정한 실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가련한 평면인이 낯설다면 다시 생각하길. 평면인은 상대성이론 이전 물리학자에 대한 비유다.
세 좌표 x, y, z로 기술되는 3차원 공간에서 막대의 길이 L은 x²+y²+z²=L²을 만족하는 불변량이다. 3차원 공간인에게 L은 절대고, x, y, z는 상대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은 자연현상의 무대가 시간에 독립적인 3차원 공간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이 서로 얽혀 있는 4차원 시공간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3차원 공간의 회전에 불변량 L이 있다면, 4차원 시공간에는 불변량 D가 있다. 시간 t와 빛의 속도 c를 써서, x²+y²+z²-c²t²=D²으로 적는 양이다. 특수상대론으로 인간은 3차원 공간인에서 4차원 시공간인으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4차원 시공간인으로 탈바꿈한 우리가 돌아본 3차원 공간인은, 3차원 공간인이 가련히 여긴 2차원 평면인을 닮았다. 특수상대론 이전 3차원 공간인도 실체의 그림자를 실체로 잘못 보고 있던 셈이다. 거리 L을 시간 t로 나누면 속력이다. 빛의 속도 c로 움직이는 물체의 경우 L=c·t고, 따라서 D²=x²+y²+z²-c²t²=L²-c²t²=0을 만족한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모든 관찰자에게 D²의 값이 같다는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에 따르면, 한 관찰자의 눈에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D²=0)은 등속으로 움직이는 다른 관찰자에게도 빛의 속도로(D²=0) 움직인다.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전조등에서 뻗어나간 빛의 속도는 도로 옆에 정지한 사람이 봐도 똑같은 빛의 속도라는 결론이다. 특수상대론 이전 3차원 공간인은 전조등의 빛의 속도로 c+c=2·c를 예측하지만, 특수상대론을 깨달은 4차원 시공간인은 c에 c를 더하면 c가 된다고 말한다. 아무리 이상한 결과라도 자연에서 여러 번 옳다고 확인되면 그게 맞는 거다. 옳고 그름을 가르는 최종의 판관은 인간의 익숙한 믿음이 아니라 자연이기 때문이다.
상대성이론을 간혹 그르게 해석하는 이들이 있다. 인간의 인식은 제각각이어서 절대적인 잣대가 없고, 옳고 그름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얘기로 상대성이론의 의미를 왜곡하는 식이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에서 시공간의 상대성은 엄연히 존재하는 자연법칙의 절대성의 반영일 뿐이다.
등속으로 움직이는 두 관찰자는 누가 움직이고 누가 정지해 있는지를 말할 수 없고, 내가 속한 시공간에서의 물체의 운동을 관찰하는 것만으로 내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절대적인 속도를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도 상대성이론의 중요한 결과다.
톨스토이 <인생독본>에서 상대성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읽었다. “움직이는 배 안에서 어떤 물체를 볼 때는 우리 자신의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는다. … 인생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올바르게 살고 있지 않을 때는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떤 것이 올바른 삶인지 알기 어려울 때는 평면에서 벗어나 눈을 들어 곁이 아닌 위를 볼 일이다. 생각의 차원을 높여 상황이 변해도 바뀌지 않을 불변의 가치를 고민할 일이다. 햇빛에 반짝이는 진리는 동굴 밖에 있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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