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배의 공간과 스타일] [152] 향수의 수도 그라스
프랑스의 그라스(Grasse)는 인구 5만 명의 작은 도시다. 16세기까지 가죽공예로 유명했지만 그로 인해 마을에는 늘 동물 냄새가 진동했다. 이를 없애려고 꽃을 심고, 냄새 제거를 위해서 꽃으로 포마드를 만들어 가죽 장갑에 발랐다. 이 제품이 인기를 끌면서 18세기부터 본격적으로 향수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현재 프랑스 향수 산업의 절반 이상이 이곳을 기반으로 한다. 세계 49개 언어로 번역되고 2천만부가 팔린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1985년 소설 ‘향수’, 그리고 2019년 영화 ‘향수(Perfumes)’에서도 그라스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프랑스의 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가 숨을 거둔 곳이기도 하다.
향수를 만드는 데는 어마어마한 양의 꽃잎이 필요하다. 온화한 지중해 기후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해발 350m 언덕, 물이 풍부한 그라스의 토양은 장미, 라벤더, 아이리스가 자라는 최적의 환경이다. 특히 16세기 무어인들이 가져온 재스민은 향수의 핵심 재료로 매년 27t이 여기서 재배된다. 샤넬의 넘버5 향수는 물론 그라스의 재스민과 장미만을 사용한다. 이 지역의 테루아(terroir·토양 등 자연조건)가 훨씬 더 고급스러운 꽃의 향을 만들기 때문이다.
전 세계의 조향사들은 이 마을에서 2천여 종류의 향을 분류하고 조합하는 훈련을 받는다. 조향은 원초적인 향, 머리에서 인지하는 향, 그리고 마음이 끌리는 향의 복잡함을 다루는 과정이다. 음악의 작곡과 같은 심오한 세계다. 프로방스의 꽃밭은 자연의 연구실이다. 그래서 그라스에서는 정원사가 조향사만큼 중요하다.
300년 조향 역사의 그라스에 진입할 때면 멀리서부터 향기가 난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 가로수 그늘의 광장 변으로 지역의 향수를 파는 상점들이 배경을 이룬다. 가을이 시작되는 무렵, 봄여름에 채집한 꽃으로 향수 만들기의 기초 작업이 시작된다. 추억을 기록하는 향, 그리고 궁극의 ‘유혹의 향’을 만들기 위해서 그라스의 조향사들이 바빠지는 계절이다. 2018년 유네스코는 그라스의 조향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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