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채가 더 눈에 띄는 이유 [최경선 칼럼]
인재를 육성하는 것만큼
큰 사회 기여가 뭔가
ESG경영 왜 멀리서 찾나
요즘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지배구조를 투명화하겠다'면서 너도나도 ESG 경영을 외친다. 알맹이는 쏙 빠졌다. 패기만만한 청년들을 뽑아 국가 인재로 길러내던 대기업 공채가 속속 사라지고 있다. 당장 실적에 기여할 경력직원을 뽑아 쓰는 데 급급하다.
하반기 기업 채용 시즌이 돌아왔건만 싸늘하다. 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움츠러들고 고용절벽이란 말이 절로 나온다. 사회초년생들의 설 자리는 더 좁디좁다. SK, 현대차, LG 등이 2019년부터 신입사원 공채를 폐지하면서 심화되는 일이다. 경영 환경이 급변하고 있으니 유연하게 수시로 인재를 뽑겠다는데 할 말이 없다.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무너지고 있는 판이니 신입사원 교육에 오랫동안 큰 비용을 쏟아부으라고 닦달할 수도 없다. 공무원 사회까지 경력직 수시채용을 늘리고 있으니 좁아지는 공채 관문 뚫기가 갈수록 하늘의 별 따기다. 어떤 경력을 갖추고 어떻게 채용 정보를 챙겨야 하는지 몰라 사회초년생들은 허둥댄다. 그걸 보는 국민은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아빠·엄마 찬스 없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발 절차가 진행될까 하는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오죽하면 정부가 '공정채용법'을 만들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겠는가.
삼성은 이런 분위기에도 이달 6일부터 꿋꿋하게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하고 있다. 5대 그룹 중 유일한 올해 하반기 공채다. 1957년 국내 기업 중 최초로 공채를 도입한 삼성은 앞으로도 공채를 지켜 나갈 것이라고 한다. 최근 3년간 공채로 4만명을 뽑은 데 이어 앞으로 5년간 8만명을 공채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병철 창업 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정신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지다. 삼성의 공채는 학연·지연에 따른 연고주의 부작용을 막는 데 크게 기여했다. 삼성의 인사혁신은 그후에도 1993년 국내 최초 대졸 여성 공채, 1995년 학력 제한 없는 '열린 채용' 도입으로 이어져 왔다. 인사와 교육의 차별화는 곧 기업 경쟁력 차이로 나타났다.
양향자 국민의힘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위 위원장은 그런 삼성의 인사제도에서 배출된 대표적 인재다. 상업고교를 졸업하고 공채로 삼성반도체에 입사한 그는 유리천장을 뚫고 임원에 올랐다. 지금은 국회의원으로서 우리나라를 반도체 강국으로 이끌기 위한 틀을 짜고 있다. 이런 걸출한 인물과 파격적인 성과급은 삼성의 인사제도를 더욱 빛나게 한다. 공채는 절차적 공정성도 분명하다. 누구나 공개된 일정에 따라 기회를 갖는다. 공채시험은 인사청탁을 막는 훌륭한 방패막이 역할도 한다. 계층 간 사다리가 무너지고 불공정한 경쟁에 대한 의심이 커지는 이때 삼성의 공채 사다리가 더 주목받는 까닭이다.
중요한 건 이 소중한 사다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일이다. 지난달 삼성전자는 창사 53년 만에 처음으로 노동조합과 임금협약을 체결했다. 올해 임금 인상률은 9%라고 한다. 능력과 실력은 서로 다른데 입사 동기들끼리 똘똘 뭉쳐 똑같은 연봉과 직위를 사수하려고 한다면 공채는 기업 발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순혈주의와 배타주의도 공채 방식에서 임직원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ESG 경영을 외치면서 공채를 폐지하는 기업들에도 묻는다. 인재를 길러내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기업이 대체 무슨 ESG 경영을 한단 말인가.
[최경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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