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감미료로 맛낸 소주가 K소주?
희석식 소주가 95% 이상을 차지한 한국 소주시장에도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됐다. 코로나19로 '혼술' '홈술'을 즐긴 MZ세대 소비자들이 쌀을 증류해 만든 증류식 소주를 마시며 소주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었다. 참이슬, 처음처럼 등 희석식 소주는 값싼 '서민의 술'로, '박재범 원소주' '화요' '일품진로' 등 증류식 소주는 원재료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 술로 시장이 다양해진 것이다.
MZ 소비자가 원재료의 '맛'을 찾아 증류식 소주를 마신다고 하니 희석식 소주의 '맛'은 뭐냐는 주당 아저씨들의 질문이 많았다. 희석식 소주의 맛은 엄밀히 말하면 '감미료'의 맛이다.
희석식 소주는 주정(에탄올)을 물에 희석해 소주를 만든다. 주정은 베트남산 타피오카나 브라질산 사탕수수 등 그때그때 가장 싼 수입 곡물을 사용한다.
희석식 소주의 특징은 제조 과정에서 원재료의 맛과 향이 모두 사라진다는 점이다. 비싼 원재료를 쓸 필요가 없다. 소주회사는 '감미료'를 첨가해 서로 다른 소주 맛을 낸다.
반면 증류식 소주는 원재료로 맛과 향을 낸다. 비싸도 쌀을 쓰는 이유다.
한국 소주가 술의 원료로 '쌀'을 포기하게 된 건 1965년 박정희 정권의 양곡관리법 때문이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쌀을 사용한 술 제조를 금지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전통 소주의 부활과 함께 쌀을 증류해 소주를 만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미 '값싼' 희석식 소주가 대량생산되면서 증류식 소주는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한국 소주산업도 이제 1965년 체제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쌀이 풍년이라 쌀 값 하락을 걱정하는 세상이다.
수출하는 K소주를 무엇으로 만들어야 할지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감미료로 맛을 낸 소주를 'K소주'라 부를 수 있나. 소주는 음식이다. K소주를 해외에 판다는 건 음식 문화를 수출하는 거다. 사명감을 가지고 할 일이다. 쉽게 돈 벌 궁리만 해선 안 된다.
[유통경제부 = 김기정 기자 kim.kijung@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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