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예술가와 과학자

2022. 9. 14.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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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도 과학자도 '창의' 갈구
열린 질문·생산적인 논쟁 즐겨
어쩌면 뇌의 관점에서 보기엔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혹시 여러분은 우리나라 남해 바닷속에 해양생물을 연구하는 ‘수리솔’이란 연구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이는 2019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참여 작가인 김아영 작가의 2021년도 작품 ‘수리솔 수중연구소 관광 안내’에 등장하는 가상현실 속 공간이다. 김 작가는 ‘사변적 픽션’(speculative fiction)을 창작 방법론으로 활용하는데, 이는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SF와 달리 온전히 작가의 상상력이 그 한계가 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나 다르다. 그런 점에서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 창의적이길 바라나, 그 방법론에선 다소 결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8월 말 국립현대미술관 주관으로 김 작가와 염지혜 작가, 그리고 뇌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 박사와 뇌과학자인 필자가 모여 예술과 뇌과학을 주제로 대담할 기회가 있었다. 사실 현대미술, 특히 사변적 픽션을 바탕으로 풀어가는 작가들의 무한한 상상력은 늘 무언가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학자들에겐 불편할 수도 있어, 대담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대담이 시작된 지 5분도 안 돼 기분 좋게 어긋나 버렸다. 현대미술 작품 감상이 너무 어렵다는 말에 ‘당신에게 좋으면 좋은 것입니다’란 답은 생소한 분야를 접하며 뇌를 팽팽하게 조이던 긴장 고무줄을 탁 하고 끊어버렸다. 이후 필자는 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작가들 역시 스스로 상상한 사변적 픽션 세상의 실현 가능성에 대해 자유롭게 질의했다. 방법론적 차이는 있으나 창의적인 것을 갈구한다는 점은 예술가나 과학자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더불어 예술가와도 이런 즐거운 대화가 가능함을 경험한 아주 행복한 날이었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뇌과학과 교수
대담을 준비하며 현대미술과 뇌과학의 통섭을 다룬 에릭 캔들 교수의 저서 ‘통찰의 시대’, 그리고 ‘예술과 뇌과학에서의 환원주의’가 떠올랐다. 20세기 초, 뇌가 인간의 지성과 감정을 조절하는 기관이란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며 예술 창작 등 모든 정신활동이 뇌에서 유래한다는 이론이 서서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통찰의 시대’에서 캔들 교수는 이 시기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다루며, 인간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경험을 뇌과학자의 시선으로 관찰한다. ‘예술과 뇌과학에서의 환원주의’에서는 인간 시지각(視知覺)의 두 경로인 ‘상향처리’(감각기관을 통해 뇌로 전달되는 정보의 처리)와 ‘하향처리’(주의·연상·기억 등이 동반된 고차원적 정신 기능)를 상기시키고, 현대미술 작가들이 의도적으로 하향처리를 요구하는 정보를 강조하여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에게 다양성과 모호함이란 ‘감상자의 몫’을 제공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자신만의 아주 주관적인 감상이 가능하다.

2011년 미국 UC버클리 잭 갤런트 교수는 사람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기능성 자기공명장치(MRI)를 이용해 그들의 뇌신호를 측정한 다음 이 신호를 역으로 해석해 그가 영화 속 무슨 장면을 보고 있는지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영화를 보는 것은 상향처리, 이를 재현하는 것은 하향처리가 각각 요구된다. 그런데 뇌신호를 재현한 논문 속 영상은 원본 영상과 달리 초점이 맞지 않는 그림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당시에는 이를 기술적 한계라고 했지만, 어쩌면 이는 사람들마다 다른 경험과 학습, 그리고 기억을 바탕으로 형성된 주관적 하향처리 회로가 제공한 다양성과 모호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의 마리아 발쇼 관장은 미술관을 ‘열린 질문을 하는 곳’, ‘생산적 논쟁을 위한 안전지대’ 등으로 표현했다. 한 작품을 놓고 느낌과 해석에 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미술관에서의 한 장면은, 과거 신경세포가 염색된 슬라이드를 놓고 카밀로 골지 교수와 라몬 카할 교수가 ‘신경 그물설’과 ‘신경 연접설’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던 연구실의 한 장면과 똑 닮아 있다. 이처럼 열린 질문을 하며 생산적 논쟁을 즐긴다는 점에서 어쩌면 뇌가 보기에는 예술가와 과학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해본다.

문제일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대학원장·뇌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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