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축구를 좋아하는 '우리'가 있습니다"
2019년 3명으로 창단, 9명 활동
“남성 중심 한국 동호인 축구에선
나의 모습 온전히 드러내지 못해”
“국제축구연맹(FIFA)은 성별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특히 젠더 불평등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FIFA 인권 정책 제4조)
축구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들이 모여 만든 축구팀 ‘FC아기오리’는 ‘축구장 위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소수자·여성 스포츠 대회인 ‘퀴어여성게임즈’ 풋살 종목에 참여하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임은 계속 유지해 왔는데, 대회를 나간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초심자답게 귀여운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FC아기오리 주장 다리미씨(29·활동명)가 독특한 팀명의 유래를 설명했다.
2019년, 창단 멤버는 3명뿐이었다. 현재 FC아기오리의 회원은 총 9명. 아직 축구 경기 인원인 11명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5명의 스쿼드로 풋살에 출전할 순 있다. 지난 12일, FC아기오리 팀원 다리미와 존(29), 하이도(35·이상 활동명)씨를 서울 이촌한강공원 풋살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다음달 열리는 제3회 퀴어여성게임즈 출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동호인 축구가 활성화된 한국에서, 남성은 마음만 먹으면 지역·직장·학교 축구팀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동호인 축구팀 수는 3101개이며, 이 중 2964개가 남성팀이다. 그런데도 ‘게이 축구팀’을 따로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씨는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선수들은 남학생이고 여학생은 매니저나 치어리딩을 했다. 운동 끝나고 술을 마시면서 여학생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삼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면서 “프로스포츠 선수들도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남성 중심의 동호인 축구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들은 LGBTQ(성소수자) 권리 수호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각 팀 주장들이 무지갯빛 완장을 차고 경기에 나섰고, 프랑스프로축구연맹(LFP)에 가입된 축구팀의 선수들은 지난 시즌부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17일)마다 무지갯빛 등번호를 마킹한 유니폼을 착용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EPL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남자 축구선수는 단 두 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축구계는 성소수자에게 폐쇄적인 공간이다.
여성학자 수잔 칸은 2019년 영국 ‘BBC 스포츠’ 인터뷰에서 “남자 축구계에는 게이들이 스포츠에 필요한 수준만큼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커밍아웃한 축구선수인 로비 로저스는 2013년 영국 일간지 ‘더가디언’ 인터뷰에서 “축구에서 ‘게이’라는 단어는 종종 욕으로 사용된다”면서 축구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게이로서 축구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퀴어여성게임즈 주최 단체인 퀴어여성네트워크는 2017년 동대문구에 동대문구체육관 대관 신청을 했다가 ‘민원이 들어온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17일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서울 동대문구청과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FC아기오리 팀원들은 “축구하는 게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축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우리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주류 남성성을 추구하려고 일부러 축구하는 척을 하는 게 아니냐’라고 했어요. 우리가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이도씨가 말했다.
퀴어여성게임즈 풋살 출전 계기
더 많은 분이 들어와 주길 희망
다리미씨는 “이번 퀴어여성게임즈 출전을 계기로 더 많은 분이 우리 팀을 알아봐 주고, 들어오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팀원들은 입을 모아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다. FC아기오리는 골을 넣고, 이기기 위해 그라운드에 선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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