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위기 이겨낸 日 당구 여제, 코리안 드림 이뤘다
프로대회 없는 日서 알바하며 활동
망막 박리로 실명 위기 겪기도
지난해 프로당구 있는 한국으로 와
여자 챔피언십대회서 개인 첫 우승
"한국서 톱 레벨 선수로 남고 싶어"
히다 오리에(47)는 일본 여자 당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다. 세계캐롬연맹 3쿠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네 차례(2004·2006·2008·2017년)나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 정상급 선수이지만 그는 고향 도쿄에서 카페 서빙을 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팔아야만 했다. 아마추어 대회라는 한계 탓에 상금만으로 선수 활동과 생계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하기엔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업 프로 선수를 꿈꾼 히다는 지난해 5월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로 세계 유일의 프로 대회가 있는 한국에 건너왔다. 소속팀(SK렌터카) 주장 강동궁의 훈련장이 있는 경기도 화성시 서동탄에 작은 오피스텔 월세방을 구했다. 팀 부단장인 이장희 전 당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운영하는 서울 삼성동 당구장을 오가며 훈련에 매진했고, 결국 지난 11일 LPBA(여자프로당구) 개인 3차 대회 TS샴푸·푸라닭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프로당구에 데뷔한 지 1년 3개월 만에 7번째 출전 대회에서 이룬 쾌거였다. 14일 만난 히다는 “이미 나이가 많은 내게 한국행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며 “당구에만 매진하면 내가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히다는 유년 시절 자연스레 큐를 잡았다. 부모가 모두 당구 선수 출신으로 도쿄에서 40년 넘게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히다 아키라씨는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일본 당구 대표팀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히다는 “당구를 처음 쳐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어릴 때부터 쳤다”며 “부모님의 권유로 여덟 살 때 처음 작은 4구 대회에 나갔다”고 했다.
재능을 보였지만 당구에만 전념할 수는 없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카페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고, 백화점에서 10여 년간 가방과 옷을 팔았다. 한국에 오기 직전 5년간은 인쇄 회사에서 타이핑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에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엔 당구 연습을 했다. 히다는 “대회 기간엔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런 히다에게 2019년 한국 프로당구(PBA) 출범은 희소식이었다. 그는 “돈만 보고 한국에 온 것은 아니다. 당구에 집중하고 싶었고, 한국에 모인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겨룰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히다가 출전했던 대회들과 다른 PBA 룰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아 그동안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모든 득점에 1점을 부여하는 세계선수권대회와 달리 PBA에선 뱅크샷(쿠션을 먼저 맞추고 올리는 득점)에 2점을 부여하고, 스트로크 한 번에 주어진 시간도 30~35초로 5~10초 더 짧다.
실명(失明)할 뻔한 위기도 있었다. 왼쪽 눈에 망막 박리라는 병이 생겼는데 이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그의 아버지도 앓았던 병이다. 일본에서 수술을 하려 했지만 비행기를 타면 안압에 문제가 생겨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받은 눈의 시력이 1.0에서 0.1까지 떨어졌다. 공의 두께를 조절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고 스트로크 자세도 바꿔야 했지만, 회복 중 당구를 포함한 모든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까지 어겨가며 연습에 매진해 기량을 회복했다.
히다는 관록을 바탕으로 프로당구 톱 레벨의 선수로 남는 게 한국에서의 자신의 목표라고 했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젊은 선수들만큼 힘 있는 스트로크와 정교한 기술을 펼치기는 힘들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집중력과 저만의 경기 방식이 있어요. 몸이 허락할 때까지 오래 선수를 하면서 최고의 실력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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