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장뤼크 고다르의 조력자살
‘누벨바그’ 사조를 이끈 프랑스의 거장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91)가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불치 질환을 앓던 고다르는 스위스에서 의료진이 제공한 약물을 스스로 투약했다. 1960년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네 멋대로 해라>의 “영원불멸의 존재가 되고 나서 죽는 것이 야망”이라는 대사를 실제로 구현한 셈이 됐다. 자신만의 영화 문법을 만든 거장다운 선택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노인 간병의 비극을 다룬 2012년 영화 <아무르>, 딸에게 존엄사를 부탁하는 80대 아버지가 나오는 <다 잘될 거야>처럼 프랑스에서 조력자살 논의는 전에도 있었다. 프랑스의 대표 미남 알랭 들롱도 올해 초 안락사를 택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고다르의 선택은 프랑스에서 조력자살을 합법화하자는 논의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이 내년쯤 관련 법 개정을 모색할 방침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히포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의사들은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극약을 처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죽음을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 유교사회에서 때가 왔음을 느낀 노인들은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안락사는 기대수명 100세 시대를 맞아 재논의되고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 덕분에 장수하게 됐지만, 생과 사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욕구가 강해졌다. 2025년 초고령사회가 되는 한국에서도 조력자살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6월 조력존엄사법안이 발의되고, 10명 중 8명이 조력자살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한 말기암 환자의 이야기를 비롯해 ‘죽음학’에 대한 신간도 늘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를 “비참한 죽음의 현실에 대한 국민의 절망감”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가족의 돌봄을 기대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서 조력자살은 오히려 가난한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세계 최초 안락사 합법국가인 네덜란드에서는 알코올중독자도 조력자살해 논란이 됐다. 신만이 삶과 죽음을 결정한다는 믿음은 흔들리고 있다. 좋은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지는 결국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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