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재심특례법' 제정으로 전도된 사법정의 바로 세워야

한겨레 2022. 9. 1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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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오후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뒤 피해자 단체인 ‘긴급조치사람들’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왜냐면] 장정수 | 사단법인 긴급조치사람들 이사

긴급조치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나온 뒤, 어떤 방식으로 원고청구 기각된 이들의 권리를 회복(구제)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람들은 이번에 변경된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권리를 회복할 수 있는 반면, 이미 청구기각으로 판결이 확정된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는 권리회복의 길이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30일 전원합의체 판결을 일제히 보도한 언론들은 예외 없이 이 문제를 지적하면서 이들의 권리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도 9월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패소 확정된 피해자들에 대한 입법적인 권리회복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이날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불구하고, 긴급조치9호 피해자 전체의 절반 이상 되는 사람이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막혀 있는 상황에서, 패소 확정자들의 피해구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행했던 어둠의 역사를 정리할 수 없다. 또 피해자들의 상처 치유도 불가능하고 화해의 길도 제대로 열리기 어렵다.

패소 확정된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문제의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르게 된 경과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헌법재판소가 2013년 3월 대통령긴급조치 제1, 4, 9호가 모두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어 대법원도 그해 4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유신헌법에 대한 비판이나 개정 시도를 금지했던 긴급조치 제9호 관련자의 형사보상금 청구를 인용하며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도 위반된다”고 판시했고, 이어 5월에는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하며 민청학련 관련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고 학교 안팎 집회를 금지한 긴급조치 제4호도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후 유신시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으로 영장도 없이 구속되고 학교에서 쫓겨났던 수많은 대학생과 유신독재체제에서 정치적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는 이유로 탄압받은 다수 시민이 무죄를 선고받고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1심과 2심 재판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원고들은 당연히 승소판결을 받았다. 승소판결에서 판사들은 긴급조치9호의 발령 행위가 고의 또는 과실에 의한 불법행위이고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 개개인에 대하여 고의에 의한 불법행위를 구성하기 때문에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었다.

그런데 대법원 상고심에서 실로 얼토당토 않은 판례가 나오면서 상황은 거꾸로 뒤집혔다. 즉, 2015년3월 대법원 제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대통령긴급조치가 사후적으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 해도 … 대통령은 정치적인 책임만 질 뿐이고 법적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불법행위가 될 수 없다”며 국가배상 책임을 부정하였다. 대통령 긴급조치는 위헌인데, 긴급조치를 발령한 대통령은 법적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전대미문의 위헌적인 엉터리 판례가 나온 것이다. 이후 거의 대부분의 재판에서 원고패소 판결이 줄줄이 이어졌다. 심지어 대법원은 상고한 대다수의 긴급조치 소송을 심리불속행 결정으로 심리조차도 하지 않고 기각했다.

또 대법원은 이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긴급조치9호 발령을 불법행위로 보고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한 양심적인 판사에 대해 징계를 검토하도록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대법원은 나아가서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를 벌여 그 결과를 파일로 작성해 관리하기도 했다. 사법농단은 법원행정처의 기획심의관으로 발령받은 이탄희 판사(현재 민주당 국회의원)가 이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촉발되었다.

이후 대법원의 자체 조사와 검찰의 수사를 통해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 간의 재판거래 진상이 하나하나 밝혀졌으며 , 긴급조치 피해자의 국가배상 청구를 기각한 위 대법원 판례도 그 배경에 이 재판거래가 있었음이 확인됐다.

만약 사법농단이 없었더라면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벌써 오래전에 모두 승소해 국가배상을 받고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사법농단 때문에 판결이 뒤집힌 결과, 지난 7년동안 수많은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패소로 판결이 확정되어, 권리를 구제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동일한 긴급조치9호 위반 사건으로 구속·기소돼 옥고를 치른 긴급조치피해자들(이른바 공범들)이 어떤 사람은 승소해서 국가배상을 받고, 어떤 사람은 재판이 진행중이고, 또 어떤 사람은 사법농단 때문에 패소해서 배상길이 막혀 있다. 이는 긴급조치9호 국가배상 소송에서 법적 안정성과 사법적 형평성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적 안정성의 유지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사법부가 정치권력과 결탁해 마구잡이로 판결해 법적 안정성을 무너뜨렸던 것이다.

이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계기로 국회에서 재심 특례법을 제정하는 방법이 사법농단으로 판결이 뒤집힌 긴급조치 피해자들에게 가장 신속하고 쉽게 권리회복 절차를 마련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미 법원에서 재판절차를 거친 상태이므로 재심 특례법을 통해 기존 판결에 대한 재심사유로 특정한다면, 피해자의 재심청구를 받은 각각의 재판부에서 기존의 판결을 취소하고 변론과 재판을 이어서 진행하여 재심판결을 내리면, 여러 문제가 일거에 종합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이 길이 사법농단에 의한 사법정의의 훼손을 치유하고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이고 또 구체적 타당성을 갖는 방안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전원일치 판결로 판례가 변경된 이후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 셈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재심특례법을 제정함으로써 사법농단에 의해 공정하게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당한 긴급조치9호 소송 패소자들의 권리를 회복해주길 기대한다. 그럼으로써 사법농단 피해자들의 상처를 진정으로 치유하고 법적 형평성을 회복하고 나아가 사법농단으로 전도된 사법정의도 바로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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