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남북관계, 새로운 국면 대비하자
1999년 개봉한 영화 '쉬리'는 남북관계를 배경으로 다룬 액션, 로맨스 영화다. '쉬리'가 한국 영화사 최초로 북 한 출신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 영화였다고 학계에서 평가받는다고 한다. 쉬리는 당시 함께 개봉했던 영화 타이타닉을 제치고 국내 영화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그렇게 쉬리를 시작으로 JSA 공동경비구역,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 동막골, 실미도, 포화속으로, 인천상륙작전, 고지전, 의형제, 연평해전, 국제시장, 공작, 공조, 전우, 강철비, 위대하게 은밀하게, 사랑의 불시착, 그리고 가장 최근에 개봉한 육사오까지, 그 이외에도 수많은 필름과 드라마들이 남북관계를 주제로 다루며 분단의 파도 속에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들을 조명해 왔다.
현재까지의 영화와 드라마들의 흐름을 분석해 보면, 물론 정치적 요소들이 포함되었다고 평가받는 작품들도 많지만, 시간과 작품의 흐름에 따라 남북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또한 변화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적어도 남쪽에서는, 단순한 체제 경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그 속에서 살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대중들 또한 남북에 대해서 조금씩 더 알아가기 시작했다.
북쪽의 영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체제 선전용 영화와 북의 수뇌부인 김씨 일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외의 작품들에서 역시 김씨 일가와 체제에 대한 선전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북 내부에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국경지역 밀수를 통해 들어온 DVD와 USB, SD카드를 통해 한국 및 해외 드라마와 영화를 시청해왔다. 매체를 통한 전파 자체가 물리적 이동이 불필요해질 만큼 발전하면서 북한 당국 역시 정보의 유입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강력한 검열 지시를 내렸다는 소식이다. 결국 지난달 말부터 청년들이 소지하고 있는 휴대전화, 노트, 수첩 등 개인 소지품들을 무작위로 검열하고 있다고 북한 전문매체가 보도했다.
이러한 북한 당국의 조치는 북한 내부 변화에 대한 유무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서 역으로 청년들로부터 체제 위협을 다각적으로 느끼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북한 청년들의 사이에서의 변화가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으니, 그로 인해 북한 내부에 대대적인 변화나 체제의 전환이 있을 것이다"와 같은 희망적인 사고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본질적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단순히 정치적인 접근뿐만이 아니라 사회, 심리, 인문학적 관점에서 미시적인 분석이 이뤄져야 하며, 분석에 멈출 게 아니라 국제적 영향력 및 대북 접촉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이념을 기반으로 한 방법론들 속에 고립되어 있지는 않은지, 세포 단위처럼 뻗어있는 북한 내부의 체제를 제대로 파악하며 대비해 나가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은 장기화되었고, 이제 북한의 포탄과 무기들이 러시아로 유입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는 한국전쟁 때 스탈린이 김일성에게 내준 전쟁 허가와 전투기 및 무기 지원을 떠올리게 한다. 미중 패권 경쟁 속 서방 세계와 대립한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신냉전의 형성, 중국과 대만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대한민국은 을지훈련을 실시했고, 새로운 정부는 북을 대규모 지원할 수 있는 '담대한 구상'을 밝혔다.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한 회담을 제의했다.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고 말하며, 7차 핵실험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긴박한 세계정세 속에서 화약고로 불리고 있는 동북아,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대한민국은 비극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제 '진보는 친북, 보수는 반북'과 같은 발상은 너무도 단순하고,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안보 및 통일 교육이 정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새롭고 견고히 재정립돼야 한다. 국민들 또한 북한 수뇌부의 신뢰성 없는 대남정책과 행태에 대한 일시적 반응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를 세부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판단할 수 있는,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 지도부의 정책을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서 우리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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