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등의 김건희 여사 인권침해 사건
[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김남일 | 사회부장
이것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등, 그러니까 그의 날렵한 슈트 핏을 돋보이게 하는, 가슴과 배의 반대쪽 신체 부위를 말하는 것이 아님은 이론의 여지 없이 문언상 명백하다 할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신체 부위가 아닌 의존명사 ‘등’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 밖에도 같은 종류의 것이 더 있음을 나타내는 말’ ‘두개 이상의 대상을 열거한 다음에 쓰여, 대상을 그것만으로 한정함을 나타내는 말’. 전자의 활용 예로는 ‘기러기·토마토 등’이라고 했을 때, 스위스·인도인·별똥별·역삼역·우영우는 같은 종류여서 ‘등’에 포함될 수 있지만 서초동·수사권·한동훈은 끼어들 틈이 없다. 후자는 ‘검찰 출신이 모여 있는 용산·서초·여의도 등 3곳’ 같은 용례가 가능하다. 즉 어떤 뜻을 가져다 써도 ‘등’의 의미를 자기 마음대로 확장·유추해석하는 것은 제한된다.
일상의 낱말이 법률용어로 쓰이면 난해해지는 경우가 있다지만, ‘등’은 편차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한 장관이 이론의 여지 없이 명백하다며 정당성을 강변했던 법무부 시행령 개정안이 10일 시행에 들어갔다. ‘부패범죄·경제범죄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 범죄’라는 개정 검찰청법 조항에서 ‘등’의 의미를 한껏 잡아 늘려 논란이 됐다. 한 장관은 부패범죄·경제범죄는 그저 예시일 뿐이며, 그 외에 법무부 자체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한 범죄를 검사 직접수사 대상에 포함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폈다. 법률 해석의 일차적 기준은 문언이라는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는데, 왜 본인이 법률 해석의 전능한 주체가 됐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문언적 해석 외에 반문언적, 목적론적 해석 등 여러 법해석방법론을 필요에 따라 가져다 쓴다.
입법 과정과 결과물을 둘러싼 이견·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보통 다른 행정부처는 국회와 이해관계자를 설득해 재개정하려 하지, 한 장관처럼 대뜸 우리식 법치주의를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검찰 정권 실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행태다. 각 부처와 기관이 너도나도 자기 권한을 확대하는 쪽으로 ‘등’을 해석하기 시작하면 나라 꼴이 어찌 될지 뻔하다. 그 물꼬를 한 나라의 법령 해석·적용을 관장하는 법무부가 앞장서 텄다. “국회에서 부르시면 언제든 성실히 설명하겠다”던 한 장관은 정작 국회에 나와선 “질문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은 “동훈이가 화가 많이 난 거 같다”고 했다.
한 장관은 ‘왜 검찰의 범죄수사를 막느냐’며, 검찰청법 개정 의도와 속마음을 국민은 알고 있다고 했다. 범보수진영 차기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정치인다운 화법이다. 여기 다른 피의자가 모두 재판에 넘겨진 뒤에도 9개월 넘게 홀로 남겨진 피의자가 있다. 제발 수사를 하라고 등을 떠밀어도 검찰은 요지부동이다. 죄가 안 되면 수사를 종결하는 것이 원칙인데 그러지도 않는다. 도통 모를 일이다. 검찰총장 부인, 야당 대선후보 부인, 대통령 당선자 부인, 현직 대통령 부인이자 여사로 위치가 바뀐 2년 내내 피의자 신분이었으니 세상에 이런 인권침해가 없다.
한 장관이 당당히 밝힌 ‘등’의 마법은 쓰임새가 다양하다. 한동훈 등의 김건희 여사 인권침해를 말할 때, ‘한동훈 등’에 배우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 고형곤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 김영철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 등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윤석열 사단을 언급하더라도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장관 딸의 가짜 스펙 논란이 도마 위에 올랐을 때, 법조계에서는 ‘한동훈이 한동훈을 수사했다면 한동훈을 기소했을 것’이라는 우스개가 돌았다. 그가 기소하려고 작정하면 기소 못할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검찰이 수사를 개시했다고 반드시 기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 배우자를 다른 이들과 공범으로 기소하는 것이 힘들다면 합당한 이유를 설명하고 무혐의 처분하면 그만인데, 한 장관과 그가 인사를 낸 윤석열 사단 검사들은 그저 사건을 쥐고만 있다. 그 의도와 속마음 등은 무엇인가.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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