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을 조문하기 전에 이곳을
[숨&결]
[숨&결] 양창모 | 강원도의 왕진의사
‘돌아가실 것 같습니다.’ 한밤중 병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그는 잠결에 옷을 정신없이 챙겨 입고 급히 나갔다. 하지만 결국 도중에 도로 위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코로나로 인해 병실 가족 출입은 엄격히 제한돼 있었다. ‘금쪽같은 내 새끼, 보고 싶어서 어떡해….’ 돌아가시기 며칠 전 허락된 면회에서 그의 손을 붙들고 어머니가 했던 이 말이 결국 유언이 돼버렸다.
“어머니 돌아가시는 걸 못 봤어요. 돌아가시면 우리만 어머니를 못 본다고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어머니도 우리를 못 보는 거잖아요. 자식들인 우리 마음만 생각했지 떠나는 어머니 마음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그는 조문 온 내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어머니의 임종을 함께하지 못한 것이 그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지 않을까 걱정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한해 사망자 수는 30만4900명이었다. 이 중 15.6%가 집에서 숨졌다. 의료기관과 요양원에서 사망한 사람들이 어림잡아도 25만명 정도 된다. 이분들 중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돌봄 속에서 임종을 맞은 사람, 죽음의 두려움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도록 가족들이 격려하고 손잡아주며 끝까지 함께한 ‘운 좋은’ 이가 몇이나 될까. 알 수 없지만 엄중한 코로나 상황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있는 것은 고사하고 임종을 지켜보는 것도 불가능했던 분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누구나 고독사는 피하고 싶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에 숨지는 많은 분은, 가족이 있어도 혼자서 고독하게 돌아가신다. 요양병원은 입소 뒤 면회가 어렵고 일반병원은 코로나 검사가 음성이라는 게 확인이 안 된 보호자는 아예 출입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용기 있게 집에서의 임종을 선택했다. 멀리 타지에 사는 지인이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그도 아버님의 임종 며칠 전에는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아버지 산소포화도가 떨어지는데 산소 용량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를 물어온 것이다. 집으로 찾아오는 의료진이 없으니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싶은’ 극심한 불안 속에서 죽음의 강을 함께 건너는 중이었다.
한국 사회는, 들어가는 입구는 온갖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치장돼 있지만 출구는 어두컴컴한 뒤쪽으로 어떻게 나가는지 모르게 돼 있는 기이한 건축물이다. 세상에 올 때 혼자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다들 떠날 때는 외로이 떠난다. 임종이 가까운 분들이 집에서 방문진료 의료진의 돌봄과 조언을 들으면서 돌아가실 수 있다면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코로나 시기에 방문진료가 불가능한 나라는 결국 고독사의 나라다.
집안일이 모두 그렇다. 고개 들고 먼 곳만 바라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설거지를 하려 해도 청소를 하려 해도 고개를 숙여야 한다. 아래를 봐야 한다. 한 나라의 살림을 맡는 정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 먼 섬나라의 누군가를 조문하러 간다며 먼 곳만 바라보는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여 먼저 이곳을 보라 말한다면 너무 순진한 것일까. 아니다. 여왕의 죽음만큼 중요한 죽음이 바로 이곳에 있다.
왕진 가서 뵈었던 할머니의 안방 벽에는 오래된 흑백사진이 하나 있었다. 일가친척들이 다 모인 듯한 사진이었다. 내 어림짐작으로 한 여성을 가리키며 “이분이 할머님이세요?” 물었는데 할머니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분은 우리 엄마야. (6·25) 사변 전에 찍은 사진이거든. 그 옆에 작대기 들고 서 있는 애가 나야.” 엄마 옆구리에 숨어 있는 앳된 얼굴의 아이가 바로 할머니였다.
‘내 아이가 혼자서 외롭게 죽었어요. 6인실 병실에서 함께 병실을 쓰는 사람들이 저녁 먹고 있을 때…. 가족들 얼굴도 못 보고 병원 천장만 바라보다가 그렇게…. 마지막으로 손잡아주는 이 하나 없이 하얀 침대보만 붙들고 죽었어요.’ 할머니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돌아오는 내 등 뒤에서는 그때 사진 속에서 보았던 아이의 엄마가 서서 그리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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