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없는 세상
[세상읽기]
[세상읽기] 손아람 | 작가
극장이 모두 문을 닫았던 몇년 전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 영화가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극장이 아예 사라진다거나 심지어 영화산업이 사라질 거라는 예언까지는 와닿지 않았지만, 영화 창작자들이 파국의 세계를 어떻게 끌어안을 것인지가 아주 궁금했다. 모든 배우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영화의 종말보다 훨씬 못한 사태니까. 하지만 관객은 전부 마스크를 쓰는 세상에서 영화 속 인물들만이 마스크를 벗고 천연덕스럽게 생활한다면, 납득할 만한 세계관이 주어져야 할 것 같았다. 그런 세계관이 뭘까. 전염병이 없는 세계? 결국 영화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코로나 바이러스를 지워버릴까? 온 세상이 병으로 물들고 마스크가 신체의 일부처럼 여겨지는 때가 와도 그런 고집이 가능할까?
결국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그런 고집을 부렸다. 전염병을 이야기 속에 직접 끌어들이지 않는 한, 지난 몇년간 내가 본 어떤 영화와 드라마에도 마스크는 등장하지 않았다. 마스크 없는 세상에는 당연히 팬데믹도 없다. 바이러스는 언급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그랬다간 세계관에 균열이 일어나고 말 테니까. 마스크 착용은 스태프의 일이다. 배우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하고, 작가와 연출자는 묘한 죄책감과 함께 지난 몇년을 꽁꽁 얼려야 한다. 관객과의 유대를 놓치지 않으려는 비장한 시도 때문에 오히려 영화 바깥 세계와의 당황스러운 거리가 확인되기도 한다.
영화 <비상선언>이 그런 경우다. 다른 모든 영화처럼, 배경은 마스크 없는 세상이다. 비행기 한대가 이륙한다. 기내에서 바이러스를 이용한 생화학적 테러가 벌어진다. 승객들이 피를 토하면서 픽픽 쓰러지기 시작하고, 공포에 질린 다른 승객들은 옷가지, 손수건, 안대까지 동원해 입과 코를 틀어막지만 소용없다. 영화는 마스크라는 간단한 방어수단을 차마 주머니에서 꺼내지 못한다. 영화 속 이야기가 허구란 걸 잘 알면서도 모든 관객들의 머릿속에 비슷한 질문이 맴돌지 않았을까. ‘극장에 앉아 있는 우리도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비행기를 탄 승객이 아무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고? 그러게 마스크를 쓰셔야지!’
현행 방역수칙상 실내 마스크 착용은 의무지만, 공연과 촬영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어떤 공연과 어떤 촬영이 예외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애초에 명확할 수 없다. 방역은 과학이라 해도 예외는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예외는 받아들여지지만 또 다른 예외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 판단이 반드시 개입한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이미 시청자에 대한 예의로 보여주던 투명가림막마저 은근슬쩍 사라졌다. 독립영화 촬영이 방역수칙 위반 신고로 중단되는 일은 아직도 벌어진다. 개인방송 촬영이나 경조사 기념사진 촬영 중 마스크를 함부로 벗었다간 떠들썩한 사건이 되지만, 스타들은 카메라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마스크를 벗어 내리곤 한다. 식당을 가보라. 음식을 입에 집어넣을 때마다 마스크를 올려 쓰는 손님이 어디 있는가? 서빙하는 종업원만이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입과 코를 가릴 뿐이다. 기업의 방역수칙 준수는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서비스직 종사자만의 몫이 된 지 오래다. 사무직 종사자들은 출근하자마자 마스크를 벗어던지기 일쑤다. 독립된 업무 공간을 갖는 관리직은 애초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조차 없다.
취약계층 보호를 위해 방역수칙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방역수칙이 사라질 날까지 마지막으로 마스크를 착용할 사람들, 방역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가장 크게 떠안을 사람들이 바로 사회적 취약계층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재난이 세상을 공평하게 휩쓸고 가지 않듯이, 재난이 요구하는 희생의 크기도 공평하지 않다. 방역을 당장 공평하게 포기할 수도 없고 방역의 예외와 치러야 하는 희생마저 공평하게 정할 수 없다면, 적어도 ‘마스크 없는 세상’이 오는 날까지 보상이라도 달라야 공평하지 않을까? 소득 비례 재난세 도입이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이미 지난해 장혜영 의원이 특별재난 연대세 법안을 발의했고, 일본에서는 동일본대지진 뒤 부흥특별소득세를 도입했다. 사회주의적 접근이라는 반발은 넘어야 할 산이지만, 국가적 방역조처를 선뜻 받아들인 우리 사회라면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 그 어떤 접근도 방역보다 사회주의적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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