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묻힌 진실
13일 발표된 고 이예람 중사의 특검 수사 결과는 이런 일이 드라마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근무했던 이 중사는 지난해 3월 직속 상관의 성추행을 상부에 보고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군검사는 2차 피해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제때 조사를 하지 않았다. 비행단 대대장과 중대장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축소하기에 급급했다.
이 중사가 절망에 빠져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도 군의 행태는 바뀌지 않았다. 공군의 초동 수사가 부실했다는 이유로 시작한 국방부 재수사도 알맹이가 없었다.
사건 발생 1년 만에 출범한 특검은 100일간의 수사를 통해 군의 부실수사와 2차 가해 사실을 확인했고 관련자 8명을 기소했다. 유족들이 보기에는 미진한 점이 있겠지만 묻힐 뻔한 진실을 어느 정도 밝힌 셈이다. 하지만 범죄자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고 해도 모든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어디 이 중사 사건뿐이겠나.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 억울한 죽음 뒤에는 누군가에 의해 묻힌 진실이 있을 수 있다.
이대철 사건 조작에 관여했던 경찰서장은 왜 그랬냐는 후배 경찰의 추궁에 이렇게 고백한다. "그래, 나 살자고 그랬다." 이 중사의 성추행 피해를 보고받은 상관들도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책임자가 이기심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는 순간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고 진실은 묻히고 만다.
[장박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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