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과제' 오독하는 오만과 독선의 정당정치, 어떻게 풀까
박권일 "촛불, 개혁 열망 아닌 체제 수호"
강우진 "한국 민주주의의 카르텔 체제화"
이광일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형제정당'"
더불어민주당은 통념처럼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개혁과 진보 정책을 입법하는 정당이었나. 민주화 서사를 내세우는 민주당, 산업화 서사를 내세우는 국민의힘에 맞서는 정의당의 서사는 무엇인가.
계간 ‘황해문화’ 가을호 특집 제목은 ‘늪에 빠진 한국 정치에 관한 다섯 개의 질문’이다. 학자와 정당인 5명이 민주당과 정의당 문제를 다룬다.
박권일(미디어사회학자)은 ‘민주당은 왜 그럴까, 그들이 촛불을 배신한 이유’를 썼다. 민주당이 재벌 개혁, 선거제도 개혁 등 공약 대부분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흐지부지 축소했는지” “오만과 독선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를 차별금지법 중심으로 살핀다. 자기 당 출신 대통령 두 명이 공약한 차별금지법을 민주당은 왜 제정하지 않았는가? 우파와 개신교 단체들이 개별 정치인에게 줄 수 있는 타격 등을 예로 들며 “민주당을 사사로운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사당(私黨)으로 본다면? 내집단(in-group) 이익을 공익보다 중시하는 이익단체 내지 부족(tribe)이라면? 그렇다면 이들 행태는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이어 ‘촛불의 성격’을 규정한다.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민주당의 ‘배신’에 대한 비판도 공회전”하기 쉽기 때문이다. “민주당에게 ‘촛불의 개혁 열망을 배신했다’고 말하는 것은 다소 과녁을 비껴간 비판”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박권일이 보기에 2016년 촛불집회의 메시지는 ‘박근혜 사퇴’ 또는 ‘박근혜 하야’였다. ‘체제의 질서에 균열을 내고 깨뜨리며 개입하는 사건’(알랭 바디우)이나 급진적 운동이 아니라 “몇몇 권력자가 ‘국기를 문란케 했’기에 시민이 직접 나서서 이를 다시 본래의 질서로 되돌리려 했던 사태”였다. “박근혜와 최순실 등 부패한 권력 집단이 체제의 위기를 일으키자 이를 진압하기 위한 체제 수호 운동”이자 “체제를 뒤엎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키기 위해 나선 시민의 ‘질서 회복 운동’ ”이라고 말한다.
당시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글 중 가장 호응을 얻은 내용은 ‘집회의 순수성을 해칠 만한 행위를 자제하자’는 호소였다. 참여 시민 다수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석방을 촛불의 이름으로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정치적 발언을 하는 이들을 ‘프락치’라 낙인찍었다. 사회 전반의 격차와 차별을 해소할 진보적 정책을 바란 것도 아니다. 박권일은 이 같은 ‘촛불의 본질적 보수성’을 사례들로 들며 “민주당이 사회 개혁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게 만든 암묵의 알리바이였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강우진(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은 ‘민주당 계열 정당과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적 대표’에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다수 시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체제라기보다는 정치 엘리트들이 경쟁적 선거를 통해서 정치 권력을 획득하는 엘리트 버전의 민주주의에 더 근접한다”고 진단했다. 민주화 과정은 “정치적 대표체계의 시각에서 볼 때 위계적인 카르텔 체제가 강화되는 과정”이었다. 강우진은 “한국 사회를 지배한 보수 엘리트 지배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보수 헤게모니 체제에 대한 대항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근본적인 전략보다는, (개별 정치인을 흡수·통합하는) 분자적 변형주의를 통해서 선거에서 단기적 승리의 기술에 집중했다. 이 결과는 편향된 정치적 대표의 유지와 강화였다.” 카르텔 체제화된 한국 민주주의에서 과소대표된 대표적인 집단은 청년 세대와 비정규직 노동자다.
강우진은 경북대 민주주의 연구팀이 분석한 통계를 제시한다. 민주화 이후(제13대~21대 국회) 최근까지 민주당 초선 의원이 가장 많이 대표한 집단은 정당인(정치인)으로 전체 502명 중 124명(24.65%)이다. 다음이 법조인 13.72%(69명), 대학교수(연구원 포함)로 10.54%(53명), 언론계 출신 8.35%(42명)이다. 사회운동, 시민단체, 노동조합 출신은 각각 4.17%(21명), 3.98%(20명), 1.38%(7명)이다.
정당을 구분하지 않으면, ‘교수/의사/기타 전문직’ 16.95%, 정당인 16.71%, 법조인 12.69% 순이다. 강우진은 “민주당이 분자적 변형주의 방식으로 주기적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을 영입했지만 기술적 대표 차원에서 보수 정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가장 많이 대표된 세대는 50대로 전체 국회의원의 절반(49.78%, 1328명) 가량이다. 민주당은 절반에 근접하는 비율(44.14%, 222명)로 50대가 가장 많다. 두 집단 모두 석사 이상의 고학력자가 각각 56.71%와 60.44%, 고졸 이하는 각각 1.99%와 2.19%다. 출신 대학은 서울 소재가 전체 집단 76.68%, 지방 대학 출신은 16.08%인데, 민주당 초선은 각각 75.56%, 18.89%로 큰 차이가 없다.
강우진은 “민주당은 권위주의 시절부터 누적된 편향된 정치적 대표체계를 민주화하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오히려 민주화 과정에서 제도화된 카르텔 체제의 한 축이었다”고 말했다.
“평균연령 약 53세에 전원 남성이니 ‘50대 중년 남성’ ”. 지난 8월 민주당 당대표 선거 예비 경선에 나온 후보 8명의 나이와 성별 평균이다. 김은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는 ‘청년 여성, 새로운 정치 주체로서 민주당 개혁의 추동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이 평균치를 제시하며 1970년대 신민당 ‘40대 기수론’부터 2000년대 전후로 새정치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진 ‘젊은 피 수혈론’ 같은 역사를 거론한다.
1999년 국민회의에선 “마치 대가집에서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또 손자를 낳는 것처럼 젊은 피는 계속 공급될 것” 같은 말이 나왔다. 김은희는 “공공연한 가부장적 인식이 옮겨 적기에도 무색하지만, ‘86세대 청년 정치인’들은 그렇게 해서 정치에 진입하고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2011년 민주통합당이 창당하고, 이후 진행된 공천 과정 때 ‘15% 여성의무공천’은 “ ‘꼴페미-잘난여자-기득권 여성’의 범주로 격리”됐다. 김은희는 “현재진행형인 극우 정당 여성 혐오정치가 말하는 레토릭의 씨앗과도 같다”고 말한다. “이어진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대한민국 남자 문재인’에 이어 ‘그 남자, 문재인’을 걸고 나와 ‘맏형’을 강조하면서 ‘젠더가 삭제된 민주주의’라는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한다.
열린우리당 당시 청년 기준은 만 39세,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는 35세였다. 새정치민주연합 초기 만 42세의 청년비례대표 나이 기준은 2015년에 45세 이하로 상향 조정왰다. 2020년 청년 당원 기준을 39세로 조정하는 방안은 당 지도부의 반대에 가로막혔다.
김은희는 “민주당이 청년 정치 대표성 그리고 젠더 균형 확보를 위한 정당으로서 기본적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를 먼저 숙고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지난 대선 결과에서 확인한 건 “민주당의 ‘졌잘싸’가 아니라 보수정당 ‘반(反)페미니즘’이 실패한 선거 전략이었다는 점이다. 역설적이지만, 2022년 대선은 한국 ‘남성 정치’의 실패”라고 규정한다. “청년 여성들은 제도정치가 대선에서 내놓은 최악과 차악 모두를 ‘손절’해야 하는 답 없는 상황 앞에서 ‘팔을 자르는 심정으로’(장혜영)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선택했고, 선거가 끝나자 다시 정치인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고 했다. 김은희는 “계급과 불평등 문제를 풀기 위해서라도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세대와 젠더라는 이슈는 간과할 수 없고, 정치는 이것을 ‘시대의 과제’로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나경채(전 정의당 공동대표)는 ‘진보정치 아포리아,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결과를 두고 “정의당의 몰락은 ‘아포리아’ 상태에 빠졌다고 표현할 만하다”고 지적한다. 아포리아는 ‘난관이나 미궁에 갇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킨다. 정의당이 진보정치의 역사적 토대에서 벗어났다고도 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이런 평가의 근거로 드는 게 이른바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 동의안’을 당론으로 찬성한 사건이다. 그는 정의당이 정치적 격랑에 빠질 때마다 이 문제를 사과한 사실을 거론하며 “조국 국면을 지나면서 이제 누구나 알게 되었다. 국민의힘(당시 자유한국당)의 가치관에 경기를 일으키지만, 더불어민주당이 약속하는 민주화된 세상의 결과에 강한 의심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고 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나경채는 ‘제7공화국 서사’를 제안한다. 민주당은 민주화 서사, 국민의힘은 산업화 서사다. 정의당은? 사회 양극화 해소, 강력한 증세와 복지 제도 도입,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후위기 보호대책 마련에다 “여성과 성소수자, 장애인과 난민, 외국인 노동자와 여러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바로잡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시민의 권리라는 것을 분명히 선언”해야 한다. 나경채는 “이 모든 것들을 새로운 나라, 제7공화국의 비전에 포섭하고, 개별 영역들에서 왕성한 사회운동이 일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당과 진보정치의 임무이며, 서사여야 한다”고 했다.
김형철(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은 ‘늪에 빠진 한국 정치 구하기, 민주적 정치 개혁은 가능한가?’에서 한국 정치의 개혁 과제로 “대표성 왜곡, 책임정치 실종, 정치 양극화 그리고 인물 중심 정치를 해소”하는 것을 꼽았다. “양당 독점에 의한 정치적 대표성 왜곡과 정치적 양극화에 의한 적대적 대결 정치” 극복을 위한 정치 개혁 방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활동에 초점을 맞춰 제안한다.
이광일(‘황해문화’ 편집위원)의 ‘권두언’에서 민주당이 윤석열 정권의 퇴행적인 정치 행보에 대해 “의미 있는 대응”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광일은 “구조적으로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보수-수구 독점의 정당 체제’가 ‘진보-보수 독점의 정당 체제’라는 얼굴로 재생산되면서 그들이 아무리 잘못해도 절반의 집권 가능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보기엔 “민주당은 수구 세력, 지금 ‘국민의힘’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형제 정당’”이다. “신자유주의 좌파 노선으로 갈아타면서 더욱 심화한 ‘자본의 벗’이라는 그들의 성격으로 말미암아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는 모토를 내걸고 ‘국민의힘’과 다툴 이유도 현저히 줄어들었다”고도 했다.
한 예로 제시한 게 “글로벌 자본 삼성의 대표인 이재용을 재판 중임에도 해외 순방에 동행시킨 문재인 정권의 초유 행보”다. “바통을 이어받아 그(이재용)를 복권”시킨 게 윤석열 정권이다. “민주당이 말하는 ‘국민의 입장’, ‘자신들을 지지하는 당원의 입장’이 아니라 크고 작은 자본들에 착취·수탈당하는 이들, 이런저런 차별에 고통받고 배제당하는 소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민주당은 이미 그 역사적 생명을 다한 정당”이라고 했다.
이광일은 기획 이유를 두고 “윤석열 정권의 수구적인 행태가 노골화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민주당이 수구 ‘국민의힘’보다는 낫다는 인식에 닿은 오래된 미련, 그에 근거한 ‘그들에 대한 실체 없는 정치적 믿음·기대들’과 결별해야 하는 정치적 국면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의 헤게모니 반경 안에서 허우적대는 정의당의 현재 모습이 어떤지를 다시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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