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경기도 '왕복 300km 3시간' 무료 통근버스 누가 타나 봤더니

김현주 2022. 9. 14.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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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직원들이네"
쿠팡 제공
 
이달 초 오전 6시45분 강원도 강릉시 터미널 오거리 앞에 선 45인승 통근버스에 김모(23)씨가 올라탔다.

김씨의 버스 행선지는 강릉 도심이나 강원도가 아니고 152㎞ 떨어진 경기도 여주시 인근 물류센터다.

왕복 300㎞ 3시간이 소요되는 장거리 노선인데 물류센터 주간조로 포장, 반품 업무를 하는 김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2017년부터 카페,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일하다 지난해 쿠팡 물류센터에 취업했다.

단기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상시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배경은 일을 가능하게 한 장거리 통근버스 덕분이다. 그는 “출퇴근 거리가 다소 있지만 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잠을 자고 깨면 도착해 있다”며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를 떠나 안정적인 소득을 만드는데 뿌듯함을 느낀다”고 소회를 전했다.

◆전북 전주-충남 목천, 여주-강릉 오가는 장거리 통근 버스…’삼성 통근버스급’ 거리 운행

쿠팡이 집이 물류센터에서 먼 직원들을 위해 최대 왕복 300km 거리로 시-도를 뛰어넘는 무료 장거리 통근버스 노선을 운영해 주목받고 있다.

수도권과 경기·경상·충청·전라도 등 전국 수십 곳 이상 물류센터에서 4만1288명(국민연금 가입자 기준·지난해 말 기준)을 고용하고 있는 쿠팡 풀필먼트서비스(CFS)는 국내에서 가장 활발히 통근버스를 운영하는 기업 중 한 곳이다.

연중 365일 대형버스 1400여대가 전국에서 매일 1만5000여명의 주간 오후조 직원들을 실어 나른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주간조는 새벽 6시, 오후조는 오후 5시부터 운행한다. 지난해 기준 연 760억원 가량 비용을 들여 통근버스를 운영한다.

이 가운데 편도 50~150km 사이로 시도를 넘나드는 주간 오후조 장거리 노선은 7개이며 일일 170여명 이상이 매일 출퇴근하고 있다.

가장 노선이 긴 경기도 여주 물류센터-강원도 강릉(편도 152km)과 전북 전주-충남 목천(목천 물류센터·143km), 전북 익산-목천(113km), 대구 물류센터-포항시(101km)는 편도 100km 이상의 왕복 200~300km짜리 노선이다.

경기도 여주-춘천(85km), 경남 진주-창원(85km)는 왕복 160km 수준이다. 매일 30~40명씩 탑승하는 노선도 있지만, 10명 이하 3~7명씩 타고 있다.

전세버스 업계에 따르면 그간 국내에서 매일 왕복 100~200km를 운행하는 통근버스는 존재했지만, 300km대는 드문 편이다.

현대엘리베이터(인천·부천-충주 공장) 등 소수 기업들만 왕복 300km 노선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의 경우 왕복 기준 서울역-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220km), 서울역-삼성전자 온양캠퍼스(220km), 고양시-삼성전자 기흥사업장(150km) 노선을 제공한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직원들은 왕복 100~150km 거리의 경기도-서울 일대를 오가는 버스를 이용한다. 쿠팡에서 전주-목천 노선을 운영 중인 버스업체 제로쿨 홍정석 대표는 “쿠팡처럼 매일 300km 이상 통근버스를 활발하게 운행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때그때 일자리 필요한 알바·취준생들이 주로 이용…코로나 시기 운행대수 크게 늘려  

쿠팡의 장거리 통근버스는 2030대 아르바이트생, 취업준비생 등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쉰다”는 최근 급부상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경제 흐름에 맞춰 장거리 통근버스를 이용해 물류센터에서 근무한다.

물류센터 장점은 월~금 출근, 아침~저녁까지 근무시간이 고정된 다른 아르바이트 일자리와 달리, 본인이 일하고 싶을 때마다 지원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류센터가 집 근처에 없더라도 장거리 통근버스는 시도를 넘어 물류센터 근무를 가능하게 한다.

홍 대표는 “처음 전주-목천 노선을 만들었을 땐 ‘누가 이 먼 장거리 버스를 타겠냐’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운행을 시작하니 단기 학생 아르바이트생이나 주부 사원들이 매일 10명 이상씩 타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에 부족한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큰 편이다.

실제 쿠팡은 강릉-춘천 노선은 해당 지역 내 기업이 적어 일자리가 부족한 점을 조사한 끝에 노선을 신설했고, 현재 매일 40여명이 이용하고 있다.

전주에 사는 단기 아르바이트 사원 오모(30)씨는 전주 전북대-목천 센터를 오가는 통근버스를 이용하며 출퇴근한다.

그는 “일주일에 ‘월·수·토’ ‘화·목·일’ 등 내가 근무하고 싶을 때 일하는 아르바이트는 쿠팡밖에 없다”며 “1주에 3일은 매일 8~9시간씩 공부하고 3일은 출근한다. 임금수준은 근무 시간 대비 카페보다 훨씬 높아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전주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생과 점장을 거치면서 2년간 주6일간 일한 그는 불안정한 직업과 근무 환경에 불안해했고 2020년부터 카페를 관두고 공기업 시험 준비와 물류센터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또 다른 단기 아르바이트생 임모씨는 “주5일제, 무료식사 같은 복지혜택이 마음에 들어 계약직 전환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쿠팡은 코로나 위기를 맞은 2020년부터 통근버스를 대대적으로 늘렸다.

비대면 경제 시대에 고객 주문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물류센터 일자리 수요가 늘어난 한편, 코로나 여파로 일자리가 절실한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

실제 통근버스 이용 인원은 2019년 8624명에서 2021년 말 1만6345명으로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운영하는 통근버스도 479대에서 1280대로 급증했다. 오는 2024년까지 전국 여러 지역에 추가 물류센터를 촘촘히 건립함에 따라 통근버스 이용 인원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쿠팡측은 “앞으로도 여러 지역의 출퇴근 접근성을 높여 경기 침체 속에서도 더 많은 사람들이 편리하게 물류센터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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