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실 재산 39조원..상속세는 한 푼도 안 내
영국 왕실의 유산은 얼마나 되고 누가 어떻게 물려받을까. 찰스 3세가 엘리자베스 2세의 왕위를 물려받음에 따라 왕실의 재산 향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 왕실은 전통적으로 구체적인 재정 상태를 공개하지 않았고 유언도 왕실 가족 간 비밀로 유지해왔다. 그러나 대략적인 왕실 재산 규모는 알려져 있다.
지난해 미국의 <포브스>는 엘리자베스 2세의 순수 개인재산을 5억 달러(6954억원)로,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는 4억3천만 파운드(6883억원)로 평가했으며, 영국 왕실 전문가 데이비드 매클루어는 2020년 출판한 책 ‘여왕의 진짜 가치’에서 4억6800만 달러(6507억원)로 추산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13일(현지시각) 인용 보도했다. 여기에는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한테 물려받은 스코틀랜드의 밸모럴 성과 노폭에 있는 저택 샌드링엄 하우스를 비롯한 부동산과 보석, 소장 예술품, 각종 투자 자산 등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포브스>는 재산의 범위를 왕실로 넓히면, 액수가 280억 달러(38조9400억원)로 껑충 늘어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왕실재산기관’(Crown Estate)이 영국 각지에 보유한 부동산으로 액수가 199억 달러(27조66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 왕실재산기관이 보유한 각종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은 1760년 협약에 따라 정부로 귀속된다. 왕실은 대신 그 일부를 정부로부터 ‘왕실 교부금’(Sovereign Grant) 명목으로 돌려받는다.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왕실재산기관은 3억1300만 파운드(5005억원)의 순수익을 올렸고, 정부는 이 수익금 중 8600만 파운드(137억원)를 여왕에게 왕실 교부금으로 돌려주었다. 왕실교부금은 통상 수익의 15%였지만, 2017년 25%로 늘어났다. 왕실교부금 대부분은 주로 왕궁 관리와 직원들 급여 등에 쓰인다.
이밖에 왕은 이른바 ‘랭커스터 공작 영지’도 소유하고 있다. 184㎢ 면적으로 자산가치가 9억5천만 달러(1조3210억원)에 이른다. 이 영지 소유는 1399년 확립된 것으로 지난해 2700만 달러(375억원)의 수익을 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 영지를 아버지 조지 6세로부터 물려받았으며, 이제 찰스 3세가 물려받게 된다. 찰스 3세의 맏아들로 왕세자가 된 윌리엄은 ‘콘월 공작 영지’를 물려받는다. 영국 전 국토의 0.2%를 차지할 정도로 방대한 규모로 자산가치는 7억6400만달러(1조62억원)에 달한다.
이들 여왕 개인 및 왕실 재산은 모두 새 왕이 된 찰스 3세와 그 가족이 물려받지만, 1993년 왕실과 정부의 협약에 따라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는다. 반면 일반인은 영국에서 38만 달러(5억289만원) 이상의 재산을 상속하면 40%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영국 정부는 왕실의 면세 이유에 대해 2012년 “제도로서 왕실은 전통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충분한 개인 자원이 필요하며, 일정 정도 정부로부터 재정적 독립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왕실 재산을 관리하는 ‘왕실재산기관’도 소득세나 자본이득세를 면제받고 있다. 그러나 여왕은 1993년 협약에서 개인 자산과 관련한 자본이득세와 소득세를 납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찰스 3세는 지난해 왕세자 시절 콘월 공작 영지에서 나온 소득에 대해 45%의 소득세를 자진 납세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납부 내역은 공개하지 않아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왕실 재산을 둘러싼 투명성 부족에 대한 비판은 군주제 폐지론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이다. 영국 학자 출신 상원의원 프렘 시카는 왕실의 불투명한 재산 현황과 사업 관계에 대해 “지나간 봉건시대의 유물”이라고 꼬집었다.
비밀에 가려진 왕실 재산의 실태는 2017년 이른바 ‘파나마 문서’ 사건으로 일부 드러난 적이 있다. 당시 자료에는 ‘랭커스터 공작 영지’가 역외 금융계좌에 1300만 달러(181억원)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나마 문서 사건은 각종 세금이 면제되는 조세회피처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법률회사의 문서가 언론에 유출된 사건으로, 당시 세계 각국의 고위관료, 유명인 등 부유층이 어떻게 세무조사를 피해 재산을 은닉하는지가 폭로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올해 초에는 찰스 3세가 왕세자 시절 사우디 사람에게 기사 작위 수여를 주선하는 대가로 자신의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대해 당시 찰스 3세는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또 그의 동생 앤드루 왕자는 미국 여성이 17살 때 성적으로 공격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하자 그녀와 합의했지만, 그가 얼마의 합의금을 어떻게 조달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성자일스 대성당에 이틀간 안치됐던 여왕의 관은 13일 공군기에 실려 오후 7시께 런던 노솔트 군공항에 도착했고, 이후 버킹엄궁으로 옮겨져 왕실 근위대 의장대의 사열을 받았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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