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가 인사이드] '내돈내찾'인데 '월급 1년치 증명'?..한도제한계좌 곳곳 갈등

최나리 기자 2022. 9. 14.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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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보이스 피싱이 날로 지능화된 형태로 기승을 부리고 있죠. 보이스 피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막기 위해 은행들은 한도제한계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융거래 목적이 확인이 안 되면 출금 등이 제한되는 계좌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런데, 은행들이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다 보니 소비자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합니다.

최나리 기자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도제한계좌가 정확히 뭐죠?

[기자]

'한도제한계좌'란 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거래 목적을 확인하는 제도입니다.

신규 계좌의 인출이나 하루 이체 한도는 ATM 등이 30만 원, 창구를 이용할 경우 100만 원으로 제한되고 거래 목적이 확인돼야 비로소 이런 제한이 풀립니다.

보이스피싱 통로로 활용되는 대포통장 근절 대책의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10년 전 제도 도입 당시에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계좌를 만든 사람 등만 해당됐지만 2015년 이후 모든 계좌 개설자로 확대됐습니다.

[앵커]

좋은 취지로 도입된 것 같은데, 왜 문제가 되는 거죠?

[기자]

거래목적 확인에 필요한 증빙자료나 절차가 각 은행별 자율로 까다롭기 때문입니다.

최근 보이스피싱 피해가 늘면서 은행들은 점점 더 엄격한 조건을 붙이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신한은행입니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직장인은 '급여계좌' 증빙을 하도록 완화 조건을 더 강화했습니다.

실제 급여 이체 실적이 1년 동안 증명돼야 하고요, 함께 신용카드도 만들어야 해서 이른바 '끼워팔기' 소지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시적으로 큰돈을 덜컥 넣었다가 막상 빼려고 할 땐 한도에 걸려 불편을 겪어 보면 '보호'가 아니라 '상술'에 가깝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실제 전세자금 마련 당시 낭패를 겪었다는 사례자를 만나봤습니다.

[사례자 A씨 : 일단 다른 계좌에 있는 금액으로 90% 정도 하고요. 한도제한계좌에서 10% 정도 했거든요. 지점 방문하면 100만 원까지 인출이 된다고 해서… (제한을 풀려면) 급여 이체 조건이 있었고요. 신용카드를 얼마 이상 써야 한다는 기준이 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계좌로 주식거래를 할 수 있는데 한 번에 1천만 원이 입금은 돼요. 빼려고 하면 30만 원을 걸어버리니까 그게 좀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앵커]

최 기자, 지나치게 엄격하게 운영하다 보면 소비자들과 마찰이 불가피할 것 같은데, 다른 은행들은 어떻습니까?

[기자]

주요 5대 은행 중 신한은행처럼 증빙 조건을 '급여'로만 제한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공과금 납부나 연금 수령 등 다양한 방법으로 증빙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빙자료나 절차를 개별 은행마다, 내부에선 직원 재량에 맡기다 보니 은행과 소비자 간 갈등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약 2년 전 국민권익위원회가 금융당국에 개선을 권고했지만 당국은 여전히 개별 은행에 맡기고 있습니다.

이주민 등 외국인 계좌와 관련해서는 은행들도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만큼 이같은 갈등이 더 큰 상황입니다.

[이진혜 변호사 : 권익위 권고 내용은 만약 이런 제한의 공익적 필요성이 있다면 법적 근거를 만들고 은행별로 어떤 경우에 한도 제한 해지가 되는지, 그리고 기준도 은행마다 제각각이니까 통일하라는 내용이었어요. 최소한 한도 제한을 할 때는 합리적인 정도에서 제한해야 하는 것이니까.]

[앵커]

권익위 권고까지 있었는데도 왜 제도 개선 움직임이 없는 것인가요?

[기자]

보이스피싱 피해가 여전히 큰 상황이라 아직 은행권 지침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한편으로는 보이스피싱 피해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불편해도 감수해야 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어 보이는데요.

어떻게 봐야 하나요?

[기자]

요구불 예금의 계좌 특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요구불 예금이란 은행에 사전 예고 없이도 예금자가 인출할 수 있는 은행 예치금입니다.

대신 이자가 약 0.1% 수준으로 업계에선 거의 이자를 주지 않는, 이른바 '공짜 예금'으로 통합니다.

지난달 기준으로 5대 은행 예·적금 규모가 758조 원인데요.

요구불예금 규모도 670조 원을 웃돌 정도로 버금갑니다.

은행 입장에서는 조달 비용이 적게 드는 수익성 좋은 영업 수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요구불 예금의 본질을 고려할 때 현재의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전성인 /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 과도한 제약이고 요구불예금의 본질을 어기고 있다. 본인임을 확인할 수 있고 거래가 특별히 범죄와 연루됐다는 심증이 없으면 고객의 인출 요구에 응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게 본질인 것이에요. 그 금융계약의… 그것을 '내가 정한 기준에 합당하지 않으면 너는 일정 금액 이상은 인출할 수 없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소비자 권리를 은행이 부당하게 제약하는 것이고…]

보이스피싱 피해 방지와 소비자 편익 보호 사이에서 더 합리적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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