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야유, 여왕 추모엔 침묵..리버풀의 '1분'은 왜 주목받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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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가 열린 14일(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안필드 경기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양 팀은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를 위해 이날 경기 직전 1분 동안 묵념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이 시간 동안 리버풀 팬들이 침묵을 지키는 대신 야유를 보낼 수 있다는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리버풀 팬들은 지난 5월 열린 축구협회(FA)컵 결승전 첼시와 경기 때도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가 나오자 야유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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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전 정부의 산업개편 정책으로
공업도시 경쟁력 잃고 고립..몰락 내몰려
시위에도 왕실은 묵묵부답..반왕실 성향 짙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가 열린 14일(한국시각) 영국 리버풀 안필드 경기장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승부 향방을 가를 페널티킥이나 종료 직전 얻은 득점 기회 때문이 아니었다. 이날 리버풀은 아약스를 2-1로 꺾었지만, 언론과 팬의 관심은 경기 승패가 아닌 다른 곳에 쏠렸다.
이날 시선을 사로잡은 건, 전후반 90분이 아닌 킥 오프 직전 ‘1분’이었다. 양 팀은 최근 서거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추모를 위해 이날 경기 직전 1분 동안 묵념 시간을 갖기로 했는데, 이 시간 동안 리버풀 팬들이 침묵을 지키는 대신 야유를 보낼 수 있다는 논란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전례가 있다. 리버풀 팬들은 지난 5월 열린 축구협회(FA)컵 결승전 첼시와 경기 때도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가 나오자 야유를 퍼부었다. 윌리엄 왕자가 우승 트로피를 리버풀에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리버풀 팬 대부분은 신이 여왕을 구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촌평했다.
왕실에 대한 이런 반감을 이해하려면, 리버풀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머지사이드주에 있는, 런던과 350㎞ 떨어진 이 도시는 산업화 초기 성장한 공업도시이자 항구도시다. 생산과 무역을 동시에 담당했던 리버풀은 영국 산업 발전을 이끄는 선봉이기도 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리버풀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정부 대응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치던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는 철저하게 리버풀을 고립시켰고, 산업 개편으로 도시 몰락을 촉진했다. 1981년 결국 폭동이 일어났지만, 대처는 군대 배치를 고려할 정도로 강경 일변도로 대응했다. 리버풀 사람들은 왕실이 이 모든 일에 침묵, 혹은 공조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비틀스와 축구를 내세워 관광도시로 재탄생했지만,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지금도 리버풀은 노동당 초강세지역이다. 시장은 물론, 시의원 90명 중 70명이 노동당 소속이다. 반면 집권당인 보수당 시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왕실에 비판적이면서 좌파적인 이런 정치 성향 때문에 리버풀은 속칭 ‘머지사이드 인민 공화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왕실과 중앙 정부에 대한 반감 만큼이나, 지역에 대한 소속감도 강하다. 흔히 리버풀 사람들은 자신을 “잉글랜드인이 아니라 스카우스”(Scouse, not English)라고 부른다. 스카우스는 스튜의 일종으로 주로 선원들이 즐기던 요리다. ‘리버풀인’이란 정체성이 더욱 뚜렷한 셈이다.
그래서, 이날 리버풀 팬들은 어떻게 했을까? 대다수 리버풀 팬은 침묵을 지켰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구단의 전설적 공격수 케니 달글리시 등이 나서 묵념 시간을 존중하자고 독려한 영향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리버풀 지역지 <리버풀 에코>는 이렇게 썼다.
“머지사이드 인민 공화국이 애국심 넘치는 왕당파 신봉자가 될 것 같진 않다. 다만, 클럽의 위대한 왕 케니 달글리시 경은 ‘존중은 비용이 들지 않고, 양쪽으로 향한다’고 말씀하셨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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