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빚 세계 1위' 日, 빠듯한 살림에 방위비 증액 고민 커져

도쿄=이상훈 특파원 2022. 9. 1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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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내 방위비 2배 증액 日, 재원 마련 대책 마땅찮아
장기 경기침체-저출산 고령화 심화로 살림 빠듯
대규모 방위예산 日 나라살림 악화 '뇌관' 될 수도
스즈키 슌이치 일본 재무상. 뉴시스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세출과 세입 둘 다 검토를 진행하겠다.”
일본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스즈키 슌이치(鈴木俊一) 일본 재무상은 13일 국무회의 후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변했다고 아사히신문이 14일 보도했다.

당연한 말로 보이는 일본 재무상 발언의 행간에는 일본 정부의 깊은 딜레마가 담겨 있다. 러시아, 중국, 북한 등의 위협에 대응하고 동아시아의 안보 주도권을 쥐겠다는 야심찬 포부 하에 대폭적인 방위력 증강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나랏빚을 짊어진 상황에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를 두고 고민이 크다.

30년째 이어지는 경기 침체와 저출산 고령화로 가뜩이나 나라 살림이 빠듯한 일본에서는 방위비 증액이 자칫 나라 살림을 더욱 악화시키는 뇌관이 되지 않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 방위비 증강에 “나라 살림도 생각해야”

일본은 ‘근본적인 방위력 강화’을 국가적 목표로 내걸며 대대적인 방위비 증액을 단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 수준인 방위비를 5년 내 2%까지 늘리겠다는 게 일본 정부의 목표다. 방위성은 내년 방위예산으로 역대 최다인 5조5947억 엔(55조 원)을 요구했다. 일본 정부 목표대로라면 5년 뒤 일본 방위비는 10조 엔(100조 엔)을 훌쩍 넘으며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방위비 지출국에 오른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대. 뉴시스
정부와 자민당 내에서는 사상 유례없는 안보 위기인 만큼 빚을 내서라도 방위예산 증액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 힘을 얻고 있다. 기하라 세이지 일본 관방부장관은 “장기간에 걸쳐 조달하는 것은 국채도 있을 수 있다”며 국채 발행을 통한 방위비 조달 의지를 내비쳤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경제안보상은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인 6월 “단기적으로 국채 발행이 된다”며 빚을 더 낼 뜻을 밝혔다.

나라 살림을 관장하는 재정당국은 신중하다. 올 4월 일본 재무성은 재정제도 심의회에서 방위비 문제를 검토했다. 독일이 방위비를 증액하면서 재원 대책을 세트로 마련하고 스웨덴이 국방비 증액을 위해 담배세, 주세를 인상했다는 내용이 회의에서 거론됐다. “나랏빚이 늘어나는 건 좋지 않다” “경제력이 없으면 어떤 무기가 있어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까지 나왔다.

● 세계 최대 국가채무 일본의 그늘

일본 재정당국 우려는 엄살이 아니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올 6월 기준 1255조 엔(1경2000조 원)을 기록했다. 개인의 금융자산은 2005조 엔으로 역시 사상 최대다.

한때 일본에는 ‘가난한 국민, 부자 국가’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과거 ‘원조 토목국가’로 도로, 철도 등 대규모 공사를 벌이며 늘기 시작한 국가부채는 2013년 아베 신조 전 총리 2차 취임 이후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재정 확대와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으로 나랏빚이 늘어났다. 저출산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전체 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증가하면서 유연하게 예산을 편성할 여지가 사라졌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등으로 재정 여력이 더 약해졌다.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닛케이평균주가가 표시된 전광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뉴시스


일본의 지난해 연말 기준 국가채무비율은 256.9%로 한국(50.1%) 미국(133.3%) 독일(72.5%) 등을 앞서며 세계 1위다. 2000년 이후 연간 경제성장률이 2%를 초과한 적이 세 차례에 그칠 정도로 저성장이 고착화되면서 세수가 증가하지 않은 반면 지출은 늘어났다. 방위비를 2배로 증액하려면 지출을 줄이거나 세금을 올려야 한다. 가장 큰 지출 항목인 복지비를 줄이는 것, 소비세율을 높이는 것 정도가 대안으로 꼽히지만 국민들의 반발을 감안하면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이런 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4일 방위성이 쓰는 직접적 방위비 외에 인프라 정비, 사이버 관련 예산, 과학기술 연구비 등까지 합쳐 ‘국방 관계 예산’의 틀을 만드는 검토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유사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부처간 장벽을 낮춘다는 취지이지만 국방 예산으로 인정하는 폭을 확대해 방위비 지출을 억제하자는 속내도 담겼다. 닛케이는 “정부 내에서는 예산 팽창을 막겠다는 목표가 있지만, 자민당에서는 방위 필요 예산이 억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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