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에 홍어와 김치 냄새 섞은 '수리남', 이 톡 쏘는 한국의 맛이라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2. 9. 1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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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수리남', 하정우·황정민이 완성한 한국적 마피아 느와르

[엔터미디어=정덕현] 마약, 총기, 마피아... 이런 단어들은 우리네 콘텐츠에서는 다소 낯설다. 물론 마약이야 <마약왕> 같은 작품도 있었고, 형사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지만, <나르코스>나 <브레이킹 배드> 같은 마약을 제조하고 판매하는 마피아가 등장하고, 총기로 무장한 느와르는 낯설다. 우리 이야기라기보다는 미국이나 남미에서나 현실감이 느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수리남>은 시작부터 이런 선입견을 깨버린다. 끝없이 펼쳐진 정글 속을 달리는 트럭. 현지인들이 타고 있어 외국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싶은데, 카메라가 움직이면 거기 다소 생뚱맞게도 하정우가 앉아 있다. 그가 연기하는 극중 인물은 강인구다. 그리고 그가 타고 있는 트럭이 달리는 곳은 남미의 이름도 생소한 나라 수리남의 정글이다.

이쯤 되면 왜 거기 생뚱맞게 한국인 강인구가 앉아 있는가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수리남>은 여기서 인구의 내레이션으로 수리남이라는 낯선 나라에 대해 설명한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마약 산업에 관련되어 있는 나라. 그 설명에는 마치 실제 상황을 찍어낸 듯한 마약을 둘러싼 범죄 현장의 살풍경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나르코스>를 본 시청자들이라면 그런 장면이 익숙하게 느껴질 게다.

"그런 곳에 왜 조선놈이 가 있냐고? 지금부터 내가 들려줄 이야기가 바로 그 이야기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 이야기는 전부 내가 직접 경험한 일들이다. 물론 듣고 나서 이게 진짜냐고 물어볼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직접 듣고 판단하길 바란다." 강인구의 내레이션은 지금부터 <수리남>이 펼쳐나갈 이야기가 진짜 벌어졌던 사실과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뻥이 뒤섞인 이야기라는 걸 암시한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과거 전도연이 주연으로 나왔던 <집으로 가는 길>의 실제 모티브가 됐던 마약왕 조봉행 사건에 허구적 상상력을 더한 작품이다.

강인구의 내레이션은 자신의 어린 시절, 베트남 참전 후 다리를 절며 돌아온 아버지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잠도 못자고 트럭을 몰다 사망하고, 야쿠르트를 배달하는 일을 하던 어머니마저 죽게 된 후 두 동생을 떠맡게 된 이야기를 풀어낸다. 공짜 빵을 먹기 위해 유도를 배우고, 살기 위해 미군들 상대로 장사를 하며, 단란주점에서 술장사로 적당히 돈을 찔러주는 영업을 배우고, 동생들이 커서 나간 자리에 결혼해 생긴 아이들을 다시 부양하기 위해 자동차 정비일도 배운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베트남까지 갔다 온 아버지가 그 힘겨운 나날들 속에서 홍어를 즐겼다는 대목이다. 그 홍어는 강인구를 수리남으로 가게 만드는 중요한 오브제다. 이렇게 살다간 부모님들처럼 죽어라 일만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비명횡사할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의 친구 박응수(현봉식)가 한 홍어 사업 이야기가 그를 수리남으로 향하게 하기 때문이다. 홍어가 지천이지만 먹지 않고 버린다는 수리남.

그렇게 수리남에서 술술 사업이 풀려나갈 것처럼 보였지만, 어딘가 조금씩 이들의 비즈니스에 암운이 드리워진다. 갑자기 나타난 군인이 보호를 명목으로 상납을 요구하고, 중국 마피아까지 돈을 요구한다. 놀라운 건 강인구가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결코 쉽게 겁을 먹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딜을 하려고 하는 '비즈니스' 본능을 발휘하고 이건 향후 그가 수리남에서 겪게 될 어마어마한 사건들 속에서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된다.

하지만 그의 홍어 사업은 교회를 꼭 나가라는 아내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갔던 교회에서 목사 전요한(황정민)을 만나면서 종지부를 찍게 된다. 실상은 마약왕이었던 전요한이 홍어에 마약을 숨겨 한국에 판매하려던 사실이 발각되고 그는 감옥에 가게 되며, 전요한을 추적하는 국정원 요원 최창호(박해수)로부터 이들을 검거하기 위한 언더커버를 제안 받는다.

결코 만만찮은 이 서사를 단 1회 만에 속도감 있게 전개한 <수리남>은 강인구와 전요한 그리고 최창호라는 세 인물의 팽팽한 심리전과 대결구도를 이어간다. 언더커버로 홍어 사업에서 이제 마약 장사를 하는 것처럼 꾸민 강인구와 겉으론 목사인 척 하지만 실제로는 마약왕인 전요환 그리고 그를 검거하기 위해 강인구와 형 동생하는 마약 비즈니스 파트너 역할을 연기하게 된 최창호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

<수리남>이 흥미로운 건 <나르코스> 같은 작품의 영향을 받았고 수리남이라는 낯선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마약을 둘러싼 전쟁을 다루고 있지만, 너무나 한국적인 맛을 섞었다는 점이다. 일단 마약을 숨기기 위해 홍어나 김치 같은 걸 활용하는 대목이 그렇고, 믹스 커피 하나로 비즈니스를 성사하는 내용에 담긴 한국인 특유의 유머가 그렇다. 무엇보다 강인구라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가득한 인물에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던 1970~80년대 가장들의 무거운 어깨가 겹쳐진다.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무얼 했는가를 궁금해하던 소년은 어느덧 수리남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 자신을 통해 그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공감한다.

배포가 남다르고, 때론 죽을 위기 앞에서도 비즈니스를 이야기하며, 마피아들과 격투도 벌이지만 이역만리에서 들리는 가족들의 목소리에 한없이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까지 한 강인구는 그래서 <수리남>이라는 마피아 느와르에 독특한 색깔을 만든다. 이것은 마약왕이지만 교회 목사 행세를 하면서 신도들을 마약에 중독시켜 수족처럼 부리는 전요환이라는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종교에 대한 서사가 마약왕이라는 캐릭터와 연결되어 독특한 토속적(?)인 색깔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르코스>의 한국판처럼 느껴졌지만, 보면 볼수록 홍어 냄새, 김치 냄새 가득한 한국적인 맛이 느껴지는 차별성이 있어서인지, <수리남>에 대한 글로벌 반응은 조금씩 수직상승하는 중이다. OTT 순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서 <수리남>은 TV쇼 부문 글로벌 차트에서 3위까지 오르며(9월 13일 기준) 심상찮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잘 만든 웰메이드 느와르에 더해진 한국적인 톡 쏘는 맛이 힘을 발휘하는 중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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