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은 압박하면서..멕시코에 러브콜 보내는 이유

이은택 기자 2022. 9. 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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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매장국이자 美최대 교역국인 멕시코
"반도체 장악해야" 말했던 러몬도 장관도 "멕시코에 기회, 멕시코에 일자리 창출 기대"
美, '기술공급망 장악-자국 이익에 중요' 판단..전기차 보조금 제외된 한국과는 다른 접근
미국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이 멕시코를 방문해 양국의 대규모 경제협력 계획을 밝혔다. 양국은 멕시코 북부의 리튬 매장지에 생산 시설을 구축하는 방안도 논의했다. 미국은 미국 반도체 기업의 멕시코 내 연구 및 생산시설에 인센티브를 강화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한국 등을 향해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에서 생산하라”고 압박 중인 미국이 국경을 맞댄 접경국이자 최대 교역국인 멕시코를 향해선 러브콜을 보내는 모양새다.

13일(현지 시간) 미국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전날 미국은 멕시코와 반도체, 전기차 분야 등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경제협력 계획을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과 러몬도 장관은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무장관, 타티아나 클루티에르 경제장관과 고위급 경제대화를 열었다.

미국은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자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에 멕시코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번 방문도 그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 자리에서 블링컨 장관은 “반도체 공급망의 주요 부문이 이미 멕시코에 잘 확립돼있고 인텔, 스카이웍스 등 미국 기업들이 멕시코에서도 연구개발, 설계, 조립, 테스트 제조 등을 진행하고 있다”며 “반도체 지원법은 이런 유형의 작업에 더 많은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 중부 과달라하라에 있는 미국 기업 인텔의 디자인센터. 인텔 홈페이지
러몬도 장관의 발언도 주목됐다. 그는 “멕시코는 반도체 제조 시설뿐만 아니라 테스트, 포장 및 조립 분야 등에도 기회를 갖고 있다. 중국과 대만에는 관련 기업 60여 곳이 있고, 이 분야 산업 규모는 600억 달러(약 83조 원), 그 중 북미가 차지하는 것은 30억 달러(약 4조 원)”라고 말했다. 이어 “멕시코와 미국에서 일자리 창출의 기회에 대해 매우 흥분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얼마 전 반도체 등 미래 분야를 ‘미국이 장악해야 한다’고 말했던 인물이다.

미국은 한국 등을 향해선 미국에 생산 시설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할 것을 압박하며 한국산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전방위적 ‘미래 기술 공급망 장악’을 추진 중이다. 이런 미국이 멕시코에 대해선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멕시코의 특별한 지위 때문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는 미국의 최대 교역국이다. 2020년 8월 기준으로 미국 대외 무역의 14.1%를 차지한다. 미국의 5대 상위 교역국은 멕시코, 캐나다, 중국, 일본, 독일 순이다.

미국 애리조나(왼쪽)와 멕시코 소노라(오른쪽)의 국경지대. 가운데 벽이 국경이다. 위키피디아
게다가 멕시코는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이 다량 매장된 국가다. 아직까지는 상업용 생산을 안 하고 있지만 5월 멕시코 정부는 리튬을 전면 국유화하며 리튬 산업을 국가가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멕시코의 리튬이 본격적으로 채굴되면 전 세계 공급량의 2%를 차지하는 세계 10위의 리튬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IRA도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등 '북미 3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멕시코는 지리적으로는 북미에 있지만 관례상 보통 '북미'를 칭할 때는 영어권 국가인 캐나다와 미국만을 지칭해왔다. 멕시코는 스페인어를 쓴다. 하지만 멕시코의 국내총생산(GDP)는 세계 16위이고 남미 이민자들이 멕시코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등 이민자 문제도 얽혀 있다. 게다가 멕시코는 산유국이고 미국 에너지 기업들도 상당 수 멕시코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때문에 2018년 미국은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nited States-Mexico-Canada AgreementㆍUSMCA)'를 출범 시켰다. 이는 1994년 체결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대체하는 무역 협정이다.

게다가 멕시코는 남미의 일명 ‘리튬 삼각지대(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와 리튬 생산 연합체 구성을 추진 중이다. 리튬 삼각지대 3국은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58%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잠재력이 큰 곳이다. 현재 세계 최대 리튬 매장국은 칠레, 최대 생산국은 호주다. 멕시코가 리튬 삼각지대 국가들과 손을 잡는다면 세계 리튬 공급의 ‘맹주’가 될 수도 있다. 때문이 미국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멕시코는 여러모로 '미국의 이익'과 밀접한 국가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과는 대우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멕시코는 멕시코 북부의 미국 접경지역인 ‘노소라’를 리튬 배터리, 전기차, 태양광 에너지의 핵심 거점으로 만들 계획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에브라르드 장관은 미국 측에 이를 설명했다고 밝혔고,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도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이 계획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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