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에는 성소수자도 있다" 게이 축구팀 'FC아기오리'가 공을 차는 이유

이두리 기자 2022. 9. 1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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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 축구팀 ‘FC아기오리’ 회원들이 지난 12일 서울 이촌한강공원 풋살장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국제축구연맹(FIFA)은 성별과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며, 특히 젠더 불평등을 인식하고 해결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FIFA 인권 정책 제4조)

축구는 ‘평등’을 표방하지만, 동시에 ‘정상 남성’을 기본값으로 하는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에서 남자 축구대표팀은 목숨을 바쳐 싸우는 ‘태극 전사’로 묘사되지만, 여성 축구대표팀은 ‘태극 낭자’로 일컬어진다. 한글로 풀어 쓰면 ‘태극 아가씨’다. ‘남성적인 육체’의 소유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축구장에 성소수자가 설 공간은 매우 좁거나 아예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축구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들이 모여 만든 축구팀 ‘FC아기오리’는 ‘축구장 위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성소수자·여성 스포츠 대회인 ‘퀴어여성게임즈’ 풋살 종목에 참여하려고 만든 모임이에요.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들끼리 모임은 계속 유지해 왔었는데, 대회를 나간 건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초심자답게 귀여운 이름을 붙이고 싶었어요.” FC아기오리 주장 다리미씨(29·활동명)가 독특한 팀명의 유래를 설명했다.

2019년, 창단 멤버는 3명뿐이었다. 현재 FC아기오리의 회원은 총 9명. 아직 축구 경기 인원인 11명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5명의 스쿼드로 풋살에 출전할 순 있다. 지난 12일, FC아기오리 팀원 다리미와 존(29), 하이도(35·이하 활동명)를 서울 이촌한강공원 풋살장에서 만났다. 이들은 다음 달 열리는 제3회 퀴어여성게임즈 출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동호인 축구가 활성화된 한국에서, 남성은 마음만 먹으면 지역·직장·학교 축구팀에 가입할 수 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에 등록된 동호인축구팀 수는 3101팀이며, 이 중 2964팀이 남성팀이다. 그런데도 ‘게이 축구팀’을 따로 만들어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동호인 축구에 내재된 남성 중심 문화의 폭력성을 지적했다.

존씨는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선수들은 남학생이고 여학생은 매니저나 치어리딩을 했다. 운동 끝나고 술을 마시면서 여학생 이야기를 안줏거리로 삼는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면서 “프로스포츠 선수들도 성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 남성 중심의 동호인 축구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서는 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파리 생제르맹의 리오넬 메시와 킬리언 음바페, 디 마리아, 바이날둠이 지난 5월 14일 프랑스 몽펠리에 스타드 다 르 모송에서 열린 리그1 37라운드 몽펠리에와의 경기에서 LGBTQ를 상징하는 무지갯빛 등번호가 들어간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고 있다. 몽펠리에 | AFP연합뉴스



아스널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구단들은 LGBTQ(성소수자) 권리 수호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각 팀 주장들이 무지갯빛 완장을 차고 경기에 올랐고, 프랑스프로축구연맹(LFP)에 가입된 축구팀의 선수들은 지난 시즌부터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5월 17일)마다 무지갯빛 등번호를 마킹한 유니폼을 착용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EPL에서 공식적으로 커밍아웃한 남자 축구선수는 단 두 명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축구계는 성소수자에게 폐쇄적인 공간이다.

여성학자 수잔 칸은 지난 2019년 영국 ‘BBC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남자 축구계에는 게이들이 스포츠에 필요한 수준만큼 남성적이지 못하다는 편견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커밍아웃한 축구선수인 로비 로저스는 2013년 영국 일간지 ‘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축구에서 ‘게이’라는 단어는 종종 욕으로 사용된다”면서 축구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 문화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커밍아웃 이후 내가 축구를 잘하면 ‘게이 축구 선수가 활약한다’, 못하면 ‘게이이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라고 이야기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게이로서 축구하기’는 한층 더 어렵다. 퀴어여성게임즈 주최단체인 퀴어여성네트워크는 2017년 동대문구에 동대문구체육관 대관 신청을 했다가 ‘민원이 들어온다,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대관을 거절당했다. 존씨는 “평등하지 않은, 일부에게만 허용된 스포츠의 모습을 보여준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운동하는 게 ‘항의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고 폭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달 17일 퀴어여성네트워크 활동가들이 서울 동대문구청과 동대문구 시설관리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 관련기사 : ‘이기는 경험’을 쌓다···성소수자 여성들, ‘체육관 대관 차별’ 동대문구에 승소하기까지

FC아기오리 다리미(활동명)씨가 12일 이촌한강공원 풋살장에서 슈팅하고 있다. 이두리 기자



FC아기오리 팀원들은 “축구하는 게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가 진짜 축구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우리의 성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들조차 ‘주류 남성성을 추구하려고 일부러 축구하는 척을 하는 게 아니냐’라고 했어요. 우리가 정말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하이도씨가 말했다.

“(성소수자 축구팀에 대한) 진입 장벽이 낮았으면 좋겠다”는 하이도씨는 “축구를 좋아하기만 하면 누구든 들어올 수 있으니, 들어와서 함께 연습하고 즐기면서 성장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리미씨는 “이번 퀴어여성게임즈 출전을 계기로 더 많은 분이 우리 팀을 알아봐 주고, 들어오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팀원들은 입을 모아 “목표는 우승”이라고 말했다. FC아기오리는 골을 넣고, 이기기 위해 그라운드에 선다.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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