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준의 안보 레이더] 김정은, 시진핑, 푸틴과 ‘사마천의 함정’

2022. 9. 14.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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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 역사가이자 장군 투키디데스가 저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서양 역사학의 바이블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던 스파르타 간 전쟁 원인을 "아테네의 권력 성장이 스파르타의 두려움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서술하면서 강대국 간 패권전쟁 요인을 갈파했다면, 사마천은 춘추전국시대와 그 이후 역사를 서술하면서 각 분야 인재의 고른 활용과 포용적인 정치 여부를 제국의 흥망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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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아테네 역사가이자 장군 투키디데스가 저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서양 역사학의 바이블 같은 위상을 갖고 있다. 투키디데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이끌던 스파르타 간 전쟁 원인을 “아테네의 권력 성장이 스파르타의 두려움을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이는 현대의 많은 국제정치학자들에 의해 패권전쟁의 주요 원인으로 해석돼왔다. 그레이엄 엘리슨 하버드대 교수는 이 구절을 토대로 소위 ‘투키디데스 함정’ 이론을 제시하면서 역사상 기존 강대국과 신흥 강국이 대립한 16가지 사례 가운데 12차례가 전쟁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투키디데스 함정과 같은 전쟁원인론이 지나치게 구조결정론에 치우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영미권 학자들이 2000여년 전 역사서에서 현대 국제정치에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 법칙을 찾으려는 노력을 경주한 점은 경의를 표할 만하다.

동양 고전역사서들, 특히 전한(前漢)시대 사마천의 ‘사기’에도 투키디데스 이상의 통찰이 담겨 있다. 본기, 세가, 열전 등으로 구성된 사기는 춘추전국시대 전후 여러 제후국가의 역사와 주요 인물을 다루면서 변방의 진나라가 어떻게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시황제에 의해 통일을 이뤘는가를 다룬다. 또 어렵게 천하를 통일해 제국을 건설한 진시황의 치세가 왜 단명으로 끝났고, 유방의 한나라는 그렇지 않았는가 정치학적 성찰도 담겨 있다. 천하통일 후 진시황은 전국 행정조직을 재편하고 법률과 도량형을 통일하는 등 정책을 펼쳤지만 “자신에게 만족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고 잘못을 하고도 끝내 변화하지 않았다”고 사마천은 평가한다. 이 때문에 제자백가의 서적들이 불태워지고 아방궁 건축에 국가재정이 투입되는 동안 언로가 막히면서 깊은 생각을 가진 신하들이 간언하지 않고 지혜로운 자들이 계책을 내지 않으면서 천하가 다시 어지러워졌다고 설명한다.

반면 진나라 말 혼란을 수습하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에 대한 사마천의 서술은 다르다. 유방은 자신이 어떤 연유로 강력한 도전자 항우를 이기고 천하를 얻게 됐는가를 자문자답하면서 전략가 장자방, 경제정책의 전문가 소하, 필승의 장수 한신 등을 고루 등용했지만 항우는 그러하지 못했다고 자평한다. 요컨대 사마천은 진시황과 유방을 대비하면서 널리 현명한 신하들을 모아 그들의 다양한 식견을 경청하면서 국가를 다스리고 있는지가 제국의 흥망을 좌우하는 요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점이 ‘사마천의 함정’으로 명명할 수 있는 정치학적 통찰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서술하면서 강대국 간 패권전쟁 요인을 갈파했다면, 사마천은 춘추전국시대와 그 이후 역사를 서술하면서 각 분야 인재의 고른 활용과 포용적인 정치 여부를 제국의 흥망 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통찰을 21세기에 적용해보면 사마천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국내에서 일인통치 정치 체제를 강화하면서 각각 대만과 우크라이나 등 주변 국가에 대한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는 투키디데스의 함정보다는 사마천이 경계한 함정에 먼저 빠지지 않았는가 우려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핵 통제권을 포함한 국가권력의 전권을 집중시키고 있는 북한의 장래도 사마천의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널리 다양한 분야의 인재를 모아 기탄 없이 의견을 수렴하고 소통하면서 민주적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있는가, 아니면 강압적인 정치 체제하에서 자유로운 사상과 의견들을 억누르는 국가의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차이가 국가의 존망을 가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마천의 통찰은 21세기 국제정치에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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