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양건의 '하산 길'

기자 2022. 9. 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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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오징어 장사꾼으로 위장한 아버지는 큰 아이 손을 잡고, 어머니는 작은 아이를 업고 청진을 떠나 원산을 거쳐 연천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초가을 비가 부슬거리던 밤 안내꾼을 따라 한탄강을 건넌 뒤 밤새도록 걷고 또 걸었다. 먼동이 틀 무렵 '이제 이남이오'라는 말에 어머니는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양건 전 감사원장이 최근 펴낸 문집 '하산 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가 양 전 원장인데 한탄강을 넘던 1948년 9월 9일은 마침 돌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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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숙 논설위원

“마른오징어 장사꾼으로 위장한 아버지는 큰 아이 손을 잡고, 어머니는 작은 아이를 업고 청진을 떠나 원산을 거쳐 연천의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초가을 비가 부슬거리던 밤 안내꾼을 따라 한탄강을 건넌 뒤 밤새도록 걷고 또 걸었다. 먼동이 틀 무렵 ‘이제 이남이오’라는 말에 어머니는 맥이 풀려 주저앉았다.” 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양건 전 감사원장이 최근 펴낸 문집 ‘하산 길’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연천은 당시 38선 이북에 위치해 월남행 인파가 몰리던 접경 마을이었다. 어머니 등에 업힌 아이가 양 전 원장인데 한탄강을 넘던 1948년 9월 9일은 마침 돌날이었다. 남행자들은 우는 아이 입을 틀어막아 아이를 잃는 일이 많았는데 돌배기는 신통하게도 잠에서 깨지 않았다. 양 전 원장은 말대로 ‘천우신조(天佑神助)’였다.

‘하산 길’에는 양 전 원장 가족이 서울에 정착한 뒤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란을 떠난 얘기, 경기중·고 및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의 교유기를 비롯해 한양대 법대 교수 시절 1987년 민주화 시위 때 포니 자동차를 몰고 서울시청 앞 경적 시위에 참여한 일화, 그리고 이명박 정부 때 국민권익위원장·감사원장을 지낸 일 등이 소개된다. 특히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 박세일 교수에 대해선 “신념의 정립에 주저함이 없었던 지사이자 행동가”로, 43세에 세상을 떠난 조영래 변호사에 대해선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을 연상시키는, 짧지만 명작인 인생”이라고 회고했다. 2013년 8월 감사원장 퇴임 후 은퇴 모드로 전환한 그는 법철학·법 사회학 및 헌법 관련 저서를 연속 펴내며 “평생 사랑하지 않았다”고 여긴 법학과도 “화해했다”고 썼다. 그 자체로 남북분단 이후 70여 년에 걸친 한 지식인의 성장사라 할 만하다.

74년 전 북한 정권이 출범한 날 북을 벗어난 양 전 원장은 “나를 키운 8할은 어머니”라고 했다. 가족의 탈북 결심은 김일성 폭압 체제 본질을 꿰뚫어본 어머니의 혜안 덕분이었다. 어머니가 없었으면 아마도 추상미 감독의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과 같은 운명이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어머니 사금자(1921∼2015) 여사 덕분에 돌배기는 대한민국의 대표적 헌법학자가 됐고 이제 하산 길에 접어들었다. ‘엄마보다 강한 사람은 없다’는 평범한 격언을 되새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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